“20살, 감기인 줄 알고 병원 갔는데 암이라고 하더라고요”

5203

20살에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받아
투병 생활 이후 식생활에 관심 생겨
미국 뉴욕에서 요리 배우기 시작해
이태리서 투어 가이드 스타트업 운영하기도
요리할 때 가장 행복…한국에서 쌀국수 가게 운영중

20살,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혈액암 환자가 됐다. 독한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은 빠지고 몸은 앙상해져 갔다. 무균실에 누워만 있는 아들을 보다 못한 아버지는 병원을 나와 식이요법으로 병을 이겨내 보자고 했다. 2년간의 철저한 식단 관리로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 자연스레 음식에 관심이 생겼다. 이후 미국 뉴욕으로 가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투어 가이드 스타트업을 창업해 월매출 6000만원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발걸음이 다시 향한 곳은 주방이었다. 현재 울산에서 쌀국수 가게 ‘미미옥’을 운영 중인 박재현(31) 대표의 이야기다.


‘미미옥’의 박재현 대표./본인 제공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쌀국수 가게 ‘미미옥’을 운영하는 박재현입니다. 최근 책 ‘나는 이탈리아에서 행복한 인생을 배웠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태권도 선수를 꿈꾸면서 학창 시절 내내 운동을 해온 박씨는 20살 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풍생중고등학교 태권도부에 이어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에 입학해 학창 시절 내내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열이 심하게 났어요. ‘감기에 걸렸구나’ 싶어서 동네 병원에 갔는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종합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혈액이나 골수 속에 종양세포가 생기는 혈액암입니다. 하루아침에 백혈병 환자가 됐다니 믿을 수 없었어요.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도 없이 바로 1차 항암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독한 약물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항암제를 맞고 나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어요. 자고 일어나면 베개 위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뽑혀 있었습니다. 무균실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날들이 반복됐습니다. 1차 항암 기간이 끝난 후 70kg였던 몸무게가 58kg까지 줄어 있었어요. 가족들 모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으셨는지 ‘식이요법으로 자연 치유를 해보자’고 권하셨어요. 병원에서도 원인을 모른다고 하니 답답한 마음이었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버지 말을 따랐습니다. 본가인 경주로 내려가서 식이요법을 시작했어요. 자연치유와 식이요법을 30여 년간 연구한 허봉수 박사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식품영양학 박사이기도 한 허 교수님은 ‘음식으로 못 고치는 병은 약으로도 못 고친다’고 하셨어요.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에 2년간 철저한 식이요법을 했습니다. 체질에 맞는 식단을 시작했고 운동도 꾸준히 했습니다. 이후 항암 치료를 받았던 병원을 다시 찾아 검사했고 정상이라는 의사 소견을 받았습니다. 5년 뒤 한 번 더 피검사를 했고 그때도 정상 수치가 나왔습니다.”


미국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한 박씨./본인 제공

-투병 생활 이후는 어땠나요.

“몸이 회복된 후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미국 뉴욕에 있는 브루클린 컬리지의 스포츠 매니지먼트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식생활에 관심이 생긴 터라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음식에 더 흥미를 느꼈습니다. 직접 요리를 배우고 싶어서 맨해튼 헬스 키친에 있는 프렌치 코리안 퓨전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식 식자재를 가지고 프랑스식 조리법으로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어요. 뉴욕 미슐랭 스타 셰프 출신인 데이비드 셰프 밑에서 주방 막내로 1년간 일을 배웠습니다. 당근, 양파, 새우 등 재료 손질부터 여러 소스를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오픈 키친에서 음식을 만들기도 했어요.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주방에서 일해야 했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이 재밌어서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집 거실을 식당처럼 만들어서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주변 유학생 친구들에게 음식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박씨는 미국 유학 시절 미국 대통령 자원봉사상(The President’s Volunteer Service Award)을 받았다./본인 제공

-학창 시절 이후 태권도는 하지 않으신 건가요.

“태권도 공인 4단으로 대학 시절 사범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오랜 시간 운동을 했기 때문에 전공을 살려 뉴욕 맨해튼에서 태권도 사범으로도 일했습니다. 태권도를 알리고 싶어서 2014년 태권도 대회 행사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맨해튼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태권도 대회였어요. 당시 400~500명이 참가했고, 그때 시작한 대회가 지금까지도 매년 열리고 있습니다. 지역 내 문화 행사 유치에 도움을 준 점을 인정받아 미국 대통령 자원봉사상(The President’s Volunteer Service Award)을 받기도 했습니다. 상장과 함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사인이 들어간 백악관의 축하 서신도 받았어요.”


이탈리아에서 ‘트립아이’를 창업하기도 했다./본인 제공

-이탈리아는 왜 갔나요.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미국 생활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갔습니다. 2016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플로렌스 예술 대학교(FUA : Florence University of the Arts)에서 요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용돈 벌이로 투어 가이드 일을 시작했어요. 이탈리아를 찾은 여행객 대부분이 정형화된 여행 코스를 다니더라고요. 여행 기간 동안 패키지 투어가 아닌 콘셉트 투어로 더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어 종일 함께 투어를 다니는 게 아닌 주요 여행지에서만 여행객을 안내하는 것이죠.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투어, 피렌체 야경 투어, 로마 바티칸 투어, 베네치아 시내 투어 등 콘셉트를 정했고, 2016년 고등학교 친구 2명과 함께 현지 투어 가이드 스타트업 ‘트립아이’를 창업했습니다. 창업 자금은 1000만원 정도였어요.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여행 오는 20~30대를 타깃으로 했습니다. 네이버 카페와 블로그에서 고객을 모집했어요. 투어 비용은 1인당 3만~4만원 정도였습니다. 하루 고객은 100명 정도였어요. 6명의 가이드가 고객을 나눠서 이끌었습니다. 월 매출은 5000만~6000만원 정도였습니다. 4년간 운영한 후 규모가 더 큰 투어 가이드 회사에 매각했습니다.”


박재현 대표./본인 제공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유는요.

“회사가 성장하는 것을 보고 성취감을 느꼈지만 주방에서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했습니다. 한국인이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를 만들고 싶어 파스타가 아닌 쌀국수를 메뉴로 정했습니다. 보통 쌀국수를 먹을 때 국물까지 다 마시지 않더라고요. 소고기, 닭고기, 버섯 세 가지 육수를 블렌딩한 한국식 쌀국수를 개발했습니다. 향신료 맛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맑고 깊은 맛을 내고 싶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2019년 1월 쌀국수집 ‘미미옥’을 창업했습니다.”


박재현 대표./본인 제공

-최근 책 ‘나는 이탈리아에서 행복한 인생을 배웠다’를 출간했다고요.

“투병 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백혈병을 극복하고 요리를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찾은 이야기, 해외에서의 스타트업 창업 이야기 등을 담았습니다.”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이 궁금합니다.

“메뉴 개발과 연구를 계속해서 다양한 연령층이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 건강한 음식으로 좋은 식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글 CCBB 귤

회신을 남겨주세요

귀하의 의견을 입력하십시오!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