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할 때보다 3~4배 더 벌지만 버스·지하철이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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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격투기 비디오 구해 보던 소년
15년 동안 해설하며 직접 시합도
성공 공식 적용해 3년 내 변화 만들 것

격투기를 좋아해 중학교 때부터 유도·합기도·킥복싱·복싱 등을 배웠다. 선수?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한 뒤 회사에 취직하는 대신 격투기 해설자로 일했다. 15년 동안 해설을 했다. 직접 시합도 뛰었다. 전적은 9승1패. 싸우고 싸움을 말로 풀어주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김대환 로드FC 대표 이야기다. 

로드FC 시합 중인 김대환 대표./로드FC 유튜브 캡처

2010년 출범한 로드FC는 지금까지 57번 대회를 열었다. 해외 대회 한 번에 15억원을 투자하는 국내에서 최고, 최대 격투기 업체다. 회사 생활 한 번 안 해본 그가 대표를 맡은 지 2년. 김대환 대표를 성남에 있는 종합격투기 체육관에서 만났다.

-자기소개를 해달라. 

“안녕하십니까. 저는 로드FC 대표 김대환입니다. 대표로서 프로모터로 일하고 있고 그전에는 오랫동안 격투기 해설자로 일했습니다.”

-어떻게 격투기 해설자로 일하게 됐나.

“어릴때 부터 격투기를 좋아했습니다. 일본이나 미국 시합 비디오를 구해다 봤어요. 중학교 때부터 유도·합기도·킥복싱·복싱 등 격투 관련 운동을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선수를 할 재능은 없었어요. 점수에 맞춰 한국외대 아랍어과에 입학했습니다.


해설자 시절 로드FC 경기가 끝나고 해설을 하는 김대환 대표./로드FC 유튜브 캡처

취미로 격투기를 배우면서 블로그에 관련 글도 썼죠. 블로그를 본 방송사 PD가 전화했어요. 해설자 면접 한 번 보자는 거였죠. 캐나다 어학연수를 갈지 해설을 할지 고민했습니다. 캐나다는 나중에 가고 아르바이트 삼아 해보자 싶었죠. 그렇게 15년 동안 해설자로 일했습니다.”

-처음 해설자로 일했을 때 수입은 어땠는지.

“2007~2009년에는 일본 격투기 단체 K-1과 프라이드FC가 인기였습니다. 일본 경기 해설 수입으로 한 달에 500만~600만원을 벌었습니다. 그때 결혼했습니다. 26살 대학생 부부였어요. 그런데 거짓말처럼 일본 격투기 인기가 사라지고 경기가 없어졌어요. 2010년에는 한 달 수입이 100만원 정도로 줄었습니다.”

-해설일이 없을 땐 어떻게 했나.

“영어번역도 하고 대치동에서 토플과 SAT도 가르쳤습니다. (영어를 부전공한 그의 토익점수는 985점. 120점 만점인 토플 점수는 110점이다.) 격투기 칼럼도 썼고요. 저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힘들었습니다. 대회가 없어지면서 어두운 길로 빠진 선수들도 있었어요.

-대회가 없을 때 격투기 선수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나.

“외국 시합이라도 뛰었어야 했어요. 선수들이 시합 한 번 잡아달라고 부탁하면 미국·중국·홍콩 등의 크고 작은 격투기 단체에 이메일 수백통을 보냈죠. 어렵게 한 경기 잡히면 통역, 시합을 보조하는 세컨드 역할을 맡아 같이 비행기를 탔습니다.


로드FC 벤텀급 김의철 선수와 세컨드들./로드FC 유튜브 캡처

한 경기에 34억원 이상 버는 맥그리거 같은 선수는 전세기를 타고 수십명 규모로 팀을 만들어 다닙니다. 저흰 돈이 없으니까. 보통 3박4일에 400만원 정도 썼습니다. 제 사비죠. 그때 결혼하고 애도 있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미안했죠.”

-본인도 직접 시합을 뛰지 않았나.


로드FC20대회에 참가한 김대환 대표./로드FC 홈페이지 제공

“격투기 중계가 끝나면 체육관에 갔어요. 바둑기사들이 하는 것처럼 격투기 시합을 복기했습니다. 그래도 더 깊이 있는 해설을 하고 싶더라구요. 일본과 영국에 가서 시합을 했습니다. 2014년엔 로드FC에서도 했죠.”

-해설자로 방송에도 출연했다.


XTM 페이스북 제공

“방송진출 관련해서 로드FC 설립자인 정문홍 전 대표님께 조언을 드린 게 계기였습니다. 2011년에 시작한 ‘주먹이운다’라는 프로그램에 정 전 대표님과 같이 출연했죠. ‘주먹이운다’ 시즌 4까지 함께 했어요. 그 뒤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일주일에 3~4번씩 이야기를 나누며 정 전 대표님과 가까워졌죠.”

-해설자가 스포츠엔터테인먼트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하나.

“15년 정도 해설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했습니다. 크고 작은 격투기 단체가 인기를 끌다 사라지는 걸 봤어요. 어떻게 콘셉트를 잡아야 성공하는지 지켜봤습니다. 몇 개 단체에 조언도 했었고요. 격투기 기술뿐만 아니라 격투 비즈니스도 연구한 거죠. 어떤 책에도 없는 내용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죠.”

-15년 동안 한 해설을 왜 그만뒀나.

“2014년쯤 갑자기 정 전 대표님이 저보고 로드FC 대표를 맡아달라고 했습니다.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셨거든요. 수명을 당겨 쓰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그분은 로드FC에 몇억원씩 협찬을 하겠다는 기업가한테도 설립 취지와 맞지 않는 요구를 하면 거친 말로 거절을 표현하십니다. 별명이 ‘가오형’입니다. 아무한테나 아쉬운 소리 하시는 분이 아니세요. 그런 분이 3년 동안 설득하셨어요. 3년 동안 너무 괴로웠어요. 경영을 배워본 적도 없고 회사생활도 안 해봤습니다. 


정문홍 전 대표와 로드FC 여성부 챔피언 함서희 선수./로드FC 홈페이지 제공

2017년 어느 날 성남의 한 족발집에서 같이 술을 마셨어요. 정 전 대표님도 거의 설득을 포기하셨을 때에요. 근데 그날따라 표정이 너무 안쓰러운 거예요. 더 거절하는 건 아니다 싶었죠. 하겠다고 말하니 ‘진짜야? 정말? 너 한다고 한 거지’라며 좋아하셨죠. 제가 결정하는 데는 오래 걸려도 한번 결정하면 뒤를 안 돌아보거든요. 그렇게 2017년 11월에 대표를 맡았습니다.“

-대표제안을 3년 동안이나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보인다.

“제가 맡으면 역량이 부족해서 회사가 망할까 봐 거절했습니다. 제가 겁이 많거든요. 격투단체는 돈 없으면 못 만듭니다. 정 전 대표님이 최소한 400억원 이상 쓰셨다고 봅니다. 어렵게 모은 재산입니다. 어렸을 때 생활보호대상자셨어요. 17살 때부터 가족 생계를 책임지고 합기도 체육관 사범·막노동·노점상 같은 일을 해서 성공하신 분입니다.


2016년 10월 20일 김보성이 로드FC 데뷔를 앞두고 연습을 하고 있다./조선DB

그러면서도 격투기 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일본 유학까지 갔어요. 식당에서 접시 닦으며 훈련했대요. 끝내 못 이룬 꿈을 후배들이 이룰 수 있도록 단체를 만드신 거죠. 휴대폰 대리점을 몇 개 하시고 건설업과 부동산 투자로 번 돈을 넣으셨어요. 그런 사정을 다 알고 있어서 대표직을 맡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로드FC에선 어떤 일을 하나.

“저는 격투기 관련 업무에 집중합니다. 대진 작성과 선수 영입도 직접 합니다. 경기 중계, 대관 업무를 맡은 직원들이 안 풀릴 때 직접 돕고 있습니다. 여전히 정 전 대표님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로드FC 베이징 대회를 중국국영방송(CCTV)가 보도했다./로드FC 유튜브 캡처

2018년 5월 이른바 사드 갈등으로 중국에서 한국 콘텐츠가 쫓겨났을 때, 저희는 베이징에서 시합도 하고 리얼리티쇼도 촬영했습니다. 정 전 대표님이 노력하신 덕분입니다. 거의 서포터즈 같은 후원기업과 관계도 그분이 만드셨죠. 지금도 정 전 대표님이 여러 가지로 도와주셔요.” 

-대표 대우는 어떤지.

“대표를 맡기 직전에 해설위원으로 한 달에 300만~400만원 정도 벌었습니다. 지금 월급은 그때보다 3~4배는 많죠. 정문홍 전 대표님이 월급과 별개로 생활비도 챙겨주신다는 걸 거절했습니다. 벤틀리·BMW·벤츠 중에 골라서 대표 차량으로 쓰라고 하셨죠. 전 그냥 하던 대로 지하철이나 버스 타고 다니겠다고 했죠. 그래도 사업하면서 사람 만나면 필요하다며 대표 업무용으로 그랜저를 사주셨어요.”

-격투단체가 성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격투기 업계에는 성공 공식이 있습니다. 이 분야 세계 1위인 미국의 UFC도 처음부터 성공한게 아닙니다. 어떤 단체도 처음부터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최소 500억원은 써야 합니다. 꾸준히 대회를 열면서 팬을 만들어야 합니다.


로드FC57대회 전 계체량./로드FC 홈페이지 제공

저희가 지금까지 57번 대회를 열었습니다. 대회를 열 때마다 외주인력만 100명 넘게 필요합니다. 경호원 30~50명·사진·음향·영상·조명·무대 장비·분야별 관리자·통역사·아나운서 3명·로드걸 6명·영어 해설진·해외영상송출업체 등 최소 5억원은 필요합니다.


로드걸 임지우씨./로드FC 홈페이지 제공

해외 대회 때는 아무리 경비를 줄여도 10억원은 씁니다. 잘하는 선수들 데리고 오려면 대전료도 많이 줘야 하고요. 이렇게 써도 대부분 적자입니다. 그래도 여기서 멈추면 끝입니다. 버텨야 합니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거죠. 종합격투기(MMA)는 브랜딩이 생명입니다. 팬들이 복싱처럼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아니라 UFC 같은 이름으로 인식합니다.


로드FC 경기장, 조명, 등장 무대./로드FC 홈페이지 제공

K-1은 K-1의 방식이 있고 UFC는 UFC의 방식이 있습니다. 저희는 로드FC를 브랜딩 하는 중입니다. 성공하는 단체들을 보면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서 흑자로 넘어가는 어떤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로드FC에게 2~3년 내에 그런 순간이 온다고 봅니다.”

-그 순간을 위해 로드FC는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

“쇼에 강한 WWE와 UFC 사이에 로드FC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승부는 진짜지만 보이는 부분도 중요하죠. UFC는 미식축구 같아요. 기술의 수준이 굉장히 높지만 한국 대중들이 보기에는 누가 누군지, 뭐 하는 건지 구분도 안 갑니다. 쇼비니스가 꼭 필요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UFC도 프로레슬링 단체인 WWE를 따라 했습니다. 빈스 맥마흔 WWE 대표는 자기가 직접 링에 뛰어드는 거로 유명합니다.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도  TV쇼에 직접 출연했어요. TV쇼가 성공하면서 1000억원 대 적자였던 회사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맞짱의신’ 출연진./로드FC 홈페이지 제공

저희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맛짱의 신’이라는 격투오디션프로그램도 곧 방송합니다. 5월에는 저도 선수로 경기를 뜁니다. 스폰서·직원과 선수·팬들까지 모두 합쳐서 만들어나가는 중입니다. 막 여러 재료를 섞어 맛을 내는 부대찌개 같은 거죠. 대기업이 돈을 가지고 똑같이 베껴도 저희 레시피를 따라 할 수는 없습니다.”

-로드FC에서 목표는 뭔가.


로드 FC에서 활동 중인 여성선수들./로드FC 홈페이지 제공

“저 같은 방식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사람을 잘 믿고, 사업적인 계산도 약하지만 격투기 열정은 넘칩니다. 정 전 대표님은 제 성향을 바꾸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격투기 생태계를 만들고 싶습니다. 유소년·아마추어·여성부를 계속 운영하는 이유죠. 제가 이일을 하는 가장 밑바닥에는 좋은 운동을 알린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저희 체육관에 학교폭력 가해, 피해 학생이 모두 옵니다.


로드FC 이예지, 이수연 선수./로드FC 홈페이지 제공

운동을 배우면서 변하는 걸 느껴요. 누구나 공격성은 있습니다. 건강하게 힘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희 아들이 중학교 2학년에 키가 183cm이 넘습니다. 어릴 때부터 격투기를 했지만 한 번 도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어요. 오히려 이 운동을 배우면 조심합니다. 이 좋은 운동을 한국에 알린다는데 제 인생을 걸었습니다.”

글 CCBB – Contents 정세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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