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에 홀려 홀로 영국으로 떠났던 초등생의 현재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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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축구 유학 1세대…초5 때부터 축구선수 꿈꿔
아시아인 최초로 영국 칼리지 대표팀에서 활동
부상으로 24살에 선수 생활 그만둬
한국인 최연소로 유럽축구연맹(UEFA) B급 지도자 자격증 취득
2015년 아마추어 축구팀인 STV FC 창단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에서 홍명보 선수가 찬 공이 골대를 뒤흔드는 순간 한 소년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로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홀로 영국에 갔다. 영국 칼리지 대표팀으로 활동하면서 득점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선수로서의 삶은 끝났지만 축구인의 삶은 포기할 수 없었다. 한국인 최연소로 유럽축구연맹(UEFA·Union of European Football Associations) B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제2의 삶을 시작했다. 26살 한국에 돌아와 아마추어 축구팀인 STV FC를 창단한 문홍(29)씨의 이야기다.

STV FC를 운영하는 문홍 대표./STV FC 제공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아마추어 축구팀 STV FC(Share The Vision Football Club)를 운영하는 문홍입니다. 축구단을 운영하면서 레슨 및 축구 콘텐츠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고양시민축구단 수석코치로도 일하고 있어요.”

문씨가 처음 축구선수의 꿈을 꾸게 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한국과 스페인의 8강전 경기였습니다. 당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죠.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가족, 친구들과 함께 길거리로 나섰습니다. 홍명보 선수가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섰고 골을 넣으면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팔을 돌리면서 세리머니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꾸게 됐어요. ‘축구선수가 돼서 홍명보 선수처럼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셨어요. 축구부는 대부분 합숙 생활을 해야 했고, 당시만 해도 훈련을 받으면서 폭력과 폭언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죠.

부모님의 반대를 꺾고 순천중앙초등학교에서 축구부 합숙을 시작했습니다. 더 오랜 시간 축구를 해온 친구들 사이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모습을 보시곤 결국 허락하셨어요.”

브리스틀 필튼칼리지(Filton College) 시절의 문 대표./STV FC 제공

문씨는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03년 영국으로 축구 유학을 하러 갔다. 축구 종주국에서 축구를 더 전문적으로 배우겠다는 생각이 컸다.

“처음 영국에 갔을 땐 영어를 전혀 하지 못 했습니다. ‘영어를 못 하면 축구도 못 한다’는 생각이 들어 영국 브라이턴에서 2년간 랭귀지 스쿨을 다니면서 영어를 배웠습니다. 이후 로얄로셀 학교에 입학했고, 축구 전문 학교이자 프로구단이 운영하는 브리스틀 필튼칼리지(Filton College)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홀로 외국 생활을 하면서 힘든 적도 있었습니다. ‘공이 안보일 텐데 헤딩은 어떻게 하냐’ ‘아이컨택을 하고 패스를 해야 하는데 넌 눈이 작아서 함께 경기를 뛰기 어렵다’ ‘네가 눈 뜬 건지 안 뜬 건지 모르겠다’ 등 인종차별적인 말을 듣기도 했죠.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런 말까지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에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또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던 박지성, 이영표 선수 등이 경기에서 부진할 때면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에서 최연소 한국인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꿈을 꼭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견뎠습니다.”

영국 칼리지 대표팀 선수 시절./STV FC 제공

서튼 유나이티드 FC 선수 시절./STV FC 제공

문씨는 18살 때 잉글랜드 칼리지 축구협회(ECFA)에서 선발한 칼리지 대표팀 선수로 뽑혔다. 아시아인 선수로는 최초였다. 2012년 영국 칼리지 대표팀 대회에서 골을 가장 많이 넣은 득점왕에 뽑혔고, 팀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AFC윔블던, 올더숏 타운 FC, 서튼 유나이티드 FC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나아가던 문씨에게 뜻밖의 상황이 닥쳤다.

“프로구단 입단 계약을 앞두고 있었어요. 워크퍼밋(취업비자)이 있어야 프로구단에 입단할 수 있는데 비자 발급을 거부당했습니다. 해외 선수의 경우 자국 대표팀에서 일정 기간 뛰어야만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장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가기엔 7년여간 영국에서 쌓아온 경력을 잃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영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주권을 취득해야겠다는 생각으로 3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연습생 신분으로 훈련은 할 수 있지만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정식 경기에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이후 영주권 신청을 했지만 결국 거부당했습니다. 영국에서 프로 선수로 뛸 수 없게 된 거죠. 한국으로 들어와야 했습니다.”

한국으로 들어온 문씨는 프로구단 입단 테스트를 받으며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영국과는 너무 다른 한국의 축구 문화와 훈련 시스템이었다.

“한국에서 축구를 하면서 즐거웠던 적이 없었습니다. 프로선수라도 합숙 생활을 해야 했죠. 또 성인이지만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개인 생활은 전혀 존중받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훈련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공을 찰 때 가장 즐겁고 행복했는데 더는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스웨덴 산빅스IK 선수 시절./STV FC 제공

결국 문씨는 국내에서의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2014년 스웨덴 4부 리그의 산빅스IK에 입단했다.

“비자를 발급받기 수월했던 스웨덴으로 갔습니다. 경기 모습이 담긴 동영상 등을 이메일로 보냈고 스웨덴의 산빅스IK에서 연락이 와 테스트를 거쳐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의 선수 생활도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골반 쪽을 다쳤습니다. 부상 때문에 축구선수로서의 삶은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가 24살이었어요.”

문홍씨는 한국인 최연소로 UEFA B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다./STV FC 제공

스웨덴에서 선수 생활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영국에 있을 때 지원했던 유럽축구연맹(UEFA·Union of European Football Associations) B급 지도자 코스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문씨는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다시 영국으로 갔다.

“유럽에서 축구 지도자로 활동하기 위해선 UEFA에서 발급하는 축구 지도자 자격증(UEFA Pro License)을 획득하거나 다른 대륙연맹의 지도자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유럽축구연맹 지도자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유럽, 남미, 아시아 등 전세계에서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어요.

유럽축구연맹의 축구 지도자 자격증은 5단계(레벨1·2·B·A·P급)로 나뉩니다. 단계마다 난이도와 기간, 과정 등이 다릅니다. 낮은 단계부터 순차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해야 합니다. UEFA 레벨 1은 18세 이상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레벨 2 자격증을 취득하면 초중등부, B급은 18세 이하 선수들을 지도할 수 있어요. 또 아마추어 클럽과 프로 클럽에서 코치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A급은 프로팀 감독, P급은 국가 대표 감독이나 프리미어 리그 등 유럽 리그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입니다.

유럽축구연맹 B급 지도자 코스에 지원하려면 C급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C급 자격증은 고등학교 때 이미 취득한 상태였어요. 또 스웨덴에서 활동할 때 스웨덴 유소년 팀을 지도한 경험이 있어서 B급 지도자 코스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 중에서 최연소예요.

정해진 교육 시간과 과정을 이수하고 실기 등 시험을 봅니다. 약 8개월간 교육받았어요. UEFA A급도 취득하기 위해 지도자 코스 신청을 3년째 하고 있지만 영국인이나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으로 자격을 준다고 해서 아직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문홍씨는 아마추어 축구팀인 STV FC를 창단했다./STV FC 제공

유럽 축구 연맹(UEFA) B급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문씨는 2015년 한국에 돌아왔다. 영국의 선진 축구 문화를 한국에 알리고 싶었다. 또 자신처럼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생활 축구와 엘리트 축구의 경계가 분명합니다. 축구선수가 되려면 꼭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오랜 시간 축구를 해야만 좋은 실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시도하고 증명하고 싶었죠.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또 현실적으로 우리나라는 운동과 공부를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어릴 때부터 10여년 간 축구만 하다 보면 국가대표 선수, 프로 입단 외에는 다른 꿈을 꾸기엔 어려워집니다. 영국에서는 보통 축구 선수를 하면서 동시에 지도자 코스를 이수하게 합니다. 운동을 그만뒀을 때를 대비하는 거죠. 축구를 하면서 관련 분야를 함께 공부합니다. 선수로 더는 뛰지 못해도 지도자나 재활 치료 스태프 등 축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른 일을 할 수 있게끔 합니다.

2015년 아마추어 축구팀인 STV FC를 창단했습니다. 먼저 페이스북에서 선수를 모집했습니다. 자격 조건은 없었습니다. 과거에 축구선수가 아니었어도 상관없었죠. 나이와 직업에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1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원했습니다. ‘축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스트를 거쳐 30명을 뽑았습니다. 하남종합운동장 축구장을 빌려 훈련을 시작했어요.”

STV FC는 17세부터 40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선수 70~80명과 스태프 6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나이, 직업은 모두 다르지만 축구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축구를 단순히 취미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요. 재기를 준비하는 선수들, 일이나 공부를 하면서 축구를 병행하는 사람들, 프로선수가 되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들, 국가 대표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까지 다양합니다. 팀을 창단한 지 6개월 만에 K3팀인 서울유나이티드를 이겼고, 시흥시민축구단, 고양시민축구단과 비겼습니다. 전문적으로 축구를 해오지 않은 일반인들이 모여 훌륭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실제로 뒤늦게 축구를 시작해 K3리그에 진출한 경우도 있습니다. 26살 때 처음 축구를 시작해 6개월 만에 K3 리그 데뷔한 선수가 있어요. 축구를 배운지 1년도 안 돼서 스페인이나 독일 리그에 진출한 선수들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축구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재능을 살려 선수의 꿈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STV FC는 2019년 5월 한국 기업이 최초로 인수한 유럽 프로축구 구단인 AFC Tubize와 정식 협약을 체결했다. AFC Tubize는 세계적인 축구 선수인 에당 아자르를 배출한 팀이기도 하다. 팀을 창단해 4년째 운영하고 있지만 연고지 문제, 시(市) 허가 지연 등으로 정식 리그 진출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문씨는 현재 STV FC 감독뿐 아니라 축구 레슨 및 축구 콘텐츠 사업을 하고 있다. 또 고양시민축구단 수석코치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9년에는 1년간 서원대학교 체육학과 겸임교수로 축구지도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비즈니스 모델이 궁금합니다.

“구단을 이끌고 가려면 수익 사업이 필요합니다. 축구 레슨뿐 아니라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__moondog”>을 운영하면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구독자 수는 총 10만여명에 이릅니다. 처음에는 프리미어 경기를 분석해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경기에 나오는 영어 해설을 제대로 번역한 영상이 없었죠. 축구 선수를 꿈꾸는 어린 친구들이 번역한 영상을 보면서 도움을 받았으면 했어요. 반응이 좋았고 구독자 수도 빠르게 늘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엘리트 축구와 생활 축구의 벽을 허무는 구단을 만들고 싶습니다. 또 팀을 이끌고 K3리그(대한민국 3부 리그에 해당하는 세미프로 축구 대회)에 나가는 게 목표입니다. 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팀을 만들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글 CCBB – Contents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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