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스테이트 말고 ‘그 이름’ 붙여주세요”…브랜드가 뭐길래

3

최근 연이은 대형 붕괴사고로 건설회사 HDC현대산업개발이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2021년 6월9일 광주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작업 중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건축 자재가 현장 옆을 지나가던 버스를 덮치면서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광주 학동4구역의 철거 원청업체였습니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당시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전사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시공사로 참여한 건설 현장에서 다시 한 번 대형 사고가 터졌습니다.

사고는 2022년 1월 11일 광주 서구 화정동의 고층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일어났습니다. 2021년 6월 붕괴 사고가 일어난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과 직선거리로 10km 남짓 떨어진 곳입니다. 이날 오후 3시 50분쯤 아파트 신축 현장 201동 39층 옥상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중 23~38층 외벽 일부가 무너졌습니다. 일부 작업자는 구조됐지만, 28~31층에서 창호 공사를 하던 작업자 6명이 실종됐습니다. 1월 13일 지하 1층 난간에서 실종자 1명을 발견했는데, 1월 14일 기준 생사 여부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다른 작업자 5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입니다. 

2021년 6월 학동 사고에서 사과한 정몽규(왼쪽) HDC현대산업개발 회장과 화정동 공사장 사고 이후 사과하는 유병규 대표. /채널A 뉴스 유튜브 캡처

정몽규 회장이 사과한 지 7개월 만에 다시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HDC현대산업개발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습니다. 유병규 대표이사가 1월 12일 사고 현장을 찾아 “있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책임을 통감한다”라며 사과했습니다. 이날 시공능력평가 업계 9위로 평가받는 이 회사의 주가는 전날 종가보다 19% 떨어졌습니다. 하루 만에 시가총액 약 3200억원이 날아갔습니다. 

◇“아파트 브랜드만 봐도 불안…집값도 떨어진다”

후폭풍은 거셌습니다. 현대산업개발은 서울 강남의 상징적인 아파트인 압구정 현대아파트를 지은 1군 건설사입니다. 하지만 2021년과 2022년 연달아 대형 사고를 내면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일부 아파트 조합에서 현대산업개발과 시공사 계약을 해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광주 운암3단지는 2022년 3월 착공을 앞두고 시공사를 교체하기로 했고, 이미 공사를 시작한 부산시민공원 촉진3구역, 창원 신월2구역 재건축 조합 등은 회사에 추가 조치 계획 등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현대산업개발은 아이파크(I’ PARK)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쓰고 있는데요. 건설사가 신뢰도에 타격을 입으면서 아이파크 지우기 움직임까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건설 중인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일부 조합원은 조합 커뮤니티를 통해 “단지 이름에서 ‘아이파크’를 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이파크 아파트에 거주 중인 일부 주민은 “외벽에 칠한 아이파크 브랜드 로고를 지워야 한다”, “아이파크 네 글자만 봐도 불안하다”, “아파트 브랜드 때문에 집값이 떨어질까봐 걱정이다”라며 우려의 반응을 내놓고 있습니다.

DL이앤씨의 고급 브랜드 ‘아크로’가 들어간 아파트 단지들. /아크로 홈페이지 캡처

◇“‘e편한세상’ 말고 ‘아크로’ 붙여주세요”

누군가는 “아파트 브랜드가 뭐길래 호들갑을 떠느냐”고 말하지만, 브랜드 때문에 시공계약이 해지되는 사례까지 나옵니다. 주요 건설사들이 2015년부터 기존 브랜드 이외에 고급 브랜드를 선보이면서 아파트 브랜드에도 계급론이 등장했습니다. 현대건설은 2015년 힐스테이트와 별도로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THE H)’를 내놨습니다. e편한세상을 만든 DL이앤씨는 2016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를 준공하면서 ‘아크로(ACRO)’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선보였습니다. DL이앤씨는 아크로 홈페이지에서 브랜드에 대해 ‘가장 앞선, 절대 우위의 독보적인 하이엔드 주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다’라고 설명합니다.

2003년 아파트 전문 브랜드 푸르지오(PRUGIO)를 런칭한 대우건설은 2017년 푸르지오 써밋(PRUGIO SUMMIT)을 선보였고, 롯데캐슬을 지은 롯데건설은 2019년 르엘(LE | EL·Limited Edition by LOTTE)을 내놨습니다. 2022년 1월 기준 주요 건설사 중 프리미엄 브랜드를 따로 선보이지 않은 회사는 2곳입니다. 삼성사이버·명가타운 등을 사용하던 삼성물산은 2000년부터 지금까지 래미안(RAEMIAN)을 단독으로 쓰고 있습니다. GS건설은 LG건설 시절이던 2002년 9월 선보인 자이(Xi)를 아직 사용합니다. 특별한 지성을 뜻하는 ‘eXtra Intelligent’에서 따온 말입니다. 

건설사들은 서울 강남이나 한강변 아파트 등 땅값이 비싼 지역에 들어서는 신축 아파트에 고급 브랜드를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DL이앤씨가 아크로 브랜드를 쓴 아파트 단지는 서울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흑석동 아크로 리버하임·잠원동 아크로 리버뷰·영등포동 아크로타워스퀘어·반포동 아크로 리버파크·논현동 아크로힐스논현입니다. 현대건설은 디에이치를 ‘아무나 소유할 수 없는 대한민국 프리미엄 주거의 기준’이라고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는데요. 서울 개포동 디에이치 아너힐즈·일원동 디에이치 포레센트·반포동 디에이치 라클라스 등에 브랜드가 들어갔습니다. 

대우건설의 프리미엄 브랜드 ‘푸르지오 써밋’ 홍보 이미지. /푸르지오 써밋 홈페이지 캡처

프리미엄 브랜드가 들어간 아파트 단지가 늘면서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일부 아파트 조합이 건설사에 고급 브랜드를 붙여달라고 떼를 쓰는 상황까지 생겼습니다. 조합은 단지 이미지를 좋게 만들 수 있고, 집값 상승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건설사에 프리미엄 브랜드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건설사는 아무 아파트 단지에나 고급 브랜드 사용권을 줄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고급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난립하면 차별성이 떨어져 프리미엄 이미지가 훼손되기 때문입니다. 

조합과 건설사 사이의 갈등은 계약 해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서울 동작구 흑석9구역 재개발 조합은 원래 시공사가 롯데건설이었습니다. 조합원들이 시공사에 고급 브랜드 르엘을 붙여달라 요구했지만, 롯데건설 측이 거부하면서 시공권이 현대건설로 넘어갔습니다. 서울 중구 신당8구역 재개발 조합도 DL이앤씨에 브랜드를 e편한세상 대신 아크로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면서 시공사와 부딪혔고, 결국 시공 계약이 해지됐습니다. 업계에선 “건설사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적용하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조합과 갈등은 앞으로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글 CCBB 영조대왕

img-jobsn
Advertisements

회신을 남겨주세요

귀하의 의견을 입력하십시오!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