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빚을 1400억 매출로”…몰락 가업 2세의 ‘대박’ 비결은?

8

직원 3명에, 연매출 2억원. 막걸리 외길을 걸어온 지평주조의 100년 역사는 그 자체로 빛이자 훈장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무기력하게 쇠락해가던 지평주조를 살린 건 이 회사의 4대 주인인 김기환(39) 지평주조 대표다. 그는 손맛에 의존하던 기존 생산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맛을 표준화해 12년 만에 400억 매출(올해 예상치), 국내 2위 막걸리 업체로 회사를 키워냈다.

김기환 지평주조 대표. /tvN

2009년 김 대표가 양조장을 맡겠다고 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막걸리는 사양산업”이라며 완강히 반대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공장 한켠 3평짜리 쪽방에 신혼살림을 차렸을만큼 의지가 강했다. 그는 회사를 키우기 위해선 기존의 가내수공업 방식대신 대량생산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판단했다. 맛을 지키는 것도 관건이었다. 그는 막걸리에 들어가는 재료와 생산 방식을 확립하고 이를 대량 생산할 공장을 지었다. 11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한 도전이었다. 

젊은층 입맛에 맞게 알코올 도수를 기존 6%에서 5%로 낮췄고 소셜미디어도 적극 활용했다. 샴페인이 인기를 끌었을 때는 스파클링 막걸리 ‘지평 이랑이랑’을 내놓으며 세대 취향을 반영했다. 2020년 7월에는 프리미엄 수제 버거 브랜드 ‘쉐이크쉑’과 협업해 ‘막걸리쉐이크’를 개발했다. 100년 역사의 스토리에 더해, 일반 막걸리보다는 비싸지만 프리미엄 막걸리를 표방하는 경쟁 제품들보다는 낮게 가격을 책정한 것도 가성비를 중시하는 요즘 세대의 소비 패턴과 잘 맞아떨어졌다.

김 대표는 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럭’에 출연해 성공 비하인드를 밝히며 “아버지가 예전에는 ‘학생은 그런 거(막걸리 양조장 운영) 알 필요 없어’라고 하셨지만, 1~2년 전부터는 ‘네가 할 일은 네가 잘 할 거라고 믿는다’고 말씀해주신다”고 했다. 가업을 크게 키운 아들의 능력을 아버지가 인정해주셨다는 자부심을 그대로 전한 거다.

◇100억 빚 진 아버지 회사 물려받아 연매출 1400억 회사로

가업을 이어받아 크게 성공시킨 사례는 김 대표뿐이 아니다. 허니버터 아몬드로 잘 알려진 견과류 전문회사 길림양행도 아버지 대신 경영에 뛰어든 아들이 회사를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윤문현 대표는 2006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 대신 회사를 운영해, 100억원에 달하는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회사를 1400억 매출을 내는 회사로 회생시켰다. 그가 대표 자리에 앉은 나이는 고작 28살이었다.

윤문현(왼쪽 사진) 길림양행 대표와 회사 제품들. /jobsN

그는 대표 취임 후 이마트와 200억원 규모의 PB(유통업체가 타사에 위탁해 만든 자체 브랜드 상품) 계약을 따내면서 돌파구를 찾았다. 2014년 개발한 허니버터 아몬드는 세계인이 찾는 대박 제품으로 뜨면서, 단번에 길림양행의 매출을 끌어올린 효자 상품이 됐다. 길림양행은 허니버터 아몬드를 출시한 지 2년 만에 영업이익이 16배나 증가했다. 윤 대표는 허니버터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와사비, 마늘빵, 불닭 등 여러 가지 맛을 개발했다. 

새로운 맛을 개발하기 위한 기업문화도 만들었다. 직원이 과일을 사러 나간다고 하면 늘 사과나 바나나처럼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과일 대신, 쉽게 볼 수 없고 값비싼 희귀 열대과일을 사오라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맛은 그 자체로 아이템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회식 때도 직원들에게 항상 좋은 걸 먹고, 새로운 장소에 가보라고 말한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에너지를 충전해 더 열심히 일하라는 의미에서다. 대표 스스로도 회사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

윤 대표는 2020년 jobs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주식 투자도 안 하고 부동산도 없다. 이 사업만 잘 키워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며 “견과류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소비량이 많은데, 그중 우리가 파는 양은 소수에 불과하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런웨이 누비던 모델에서 멸치 사장님으로 대박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했던 성휘(왼쪽 사진). 모델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성 대표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터뷰하고 있다. /MBC, MBN

2007년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출연해 출연진들에게 무대 워킹을 가르쳐줬던 모델 성휘는 집안 사업이 어렵다는 어머니의 전화 한통에 런웨이를 떠나 고향에서 가업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부모님은 충남 보령에서 멸치 사업을 했는데, 체계가 부족했던 탓에 수익보다 지출이 커 경영이 어려웠다. 그가 고향에 내려갔을 때만 해도 회사는 부채만 12억에 달하는 적자 기업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사업이 망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는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시도했다. 그는 기존 그물로 잡아올리던 멸치 잡이 방식을 호스로 멸치를 빨아들여 바닷물은 버리고 멸치만 한곳에 모으는 자동화 방식으로 바꿨다. 기존 방식은 멸치를 잡아 털어내고, 옮기는 과정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 새 방식을 쓰면서 많은 것을 아낄 수 있었다.

잡은 멸치는 대부분 납품을 했고, 멸치칩, 멸치 강정 등 가공품으로도 만들어 팔았다. 이를 판매할 수 있는 카페까지 창업했다. 수익을 올리는 채널을 다변화하고,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한 그는 사업에 뛰어든지 3년 만에 남은 빚을 모두 갚고 매출도 21억원으로 끌어올리는 회사로 키웠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 일을 왜 하냐’고 질문할 때마다 항상 했던 답은 부모님이었다”며 “지난 40년간 고생하신 부모님을 위해서 항상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폐업하려던 조명가게 물려받아 ‘히트템’으로 회생

조명 업체 라이마스는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조명 ‘에어’로 잘 알려져 있다. 간결한 디자인에 깨끗한 빛을 뿜어내는 에어는 실내등으로 제격이었다. 에어를 개발한 회사의 전신은 원래 폐업하려던 종로5가의 조명가게 ‘삼일조명’이었다. 

곽계녕(왼쪽 사진) 라이마스 대표와 회사의 베스트셀러 조명 ‘에어’가 설치된 방. /톱클래스, 라이마스

2010년 경영난으로 폐업 초읽기에 들어갔던 삼일조명은 아들인 곽계녕 대표가 이어받겠다고 나서면서 활로를 찾았다. 그는 중앙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실무를 보던 예비 건축가였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조명 사업에 몸담던 아버지가 가게를 접을 거라고 하자 자발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스물여덟 젊은 나이였기에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그는 사업에 뛰어든 후 ‘아날로그’ 시스템의 회사를 디지털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직접 조명을 들고 다니면서 했던 영업 방식은 세련된 브로슈어로 만들어 돌리는 방식으로 바꿨고, 인터넷 사이트도 깔끔하게 재정비했다. 새로운 방식이 익숙치 않았던 아버지와 마찰을 빚기도 했으나,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고, 그 과정에서 곽 대표는 회사 히트 제품이 된 ‘에어’를 개발했다. 곽 대표는 가족과 지인 집에 찾아가 직접 조명을 달아주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웹으로 홍보했다. 에어는 잘 팔렸다. 연매출 상승폭이 10배나 됐다. 2011년에는 제주도에 있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본사 조명 작업도 했다. 

1973년 청계천 한켠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희미해지던 부친 회사의 조명을 다시 밝힌 곽 대표는 “가업을 물려받는다는 건 뼈대가 있는 건물에서 외장재를 떼어냈다 다시 붙이는 것과 같아 아예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어려울 때도 있다”면서도 “아버지가 사업하시며 일궈놓은 네트워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따져보면 회사 이름도 그냥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은 아니다. 그가 운영하는 라이마스(LIMAS)는 아버지 회사 삼일(SAMIL)의 영문 철자를 거꾸로 써서 읽은 것이다. 뿌리는 남기되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이름이다. 어려워진 가업을 물려받아 다시 일으켜 세운 이들의 해결법은 어려운데 있지 않았다. 선대의 중요한 가치는 유지하되 효율적인 경영 방식을 찾아 시대에 맞게 적용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찾은 성공 방정식의 해법이다.

글 CCBB 포도당

img-jobsn
Advertisements

회신을 남겨주세요

귀하의 의견을 입력하십시오!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