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유네스코 관두고 세계 44개국 홀로 누빈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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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 노매드헐 대표

44개국 혼자 누빈 ‘여행 광’ 

“여행을 하면 자유로움을 넘어 발가벗는 느낌이에요. 나이와 직업, 학력 등 수식어가 없는 날 것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맨몸으로 맞닥뜨리는 것 같아요.”

여행 중인 노매드헐 김효정 대표의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여행 중인 노매드헐 김효정 대표의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44개국을 혼자 여행한 김효정(29)씨. 이화여대에서 언론홍보영상학을 전공한 그녀는 학부시절 종군기자를 꿈꾸며 팔레스타인을 시작으로 멕시코, 유럽 등 세계 곳곳을 누볐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이다. 

무턱대고 떠난 여행은 아니다. 그동안 어떤 여행을 해왔고, 앞으로 여행 계획은 무엇인지 100페이지 분량으로 써 내 라틴아메리카 여행자 보험에서 지원하는 세계 여행 장학금을 받았다. 이후 국제기구 유네스코와 네이버에 입사해 2년간 경력을 쌓기도 했다. 두 곳의 특성을 반영한 ‘소셜벤처’(Social Venture·사회적 기업과 벤처기업 성격을 모두 지닌 기업)에 관심이 생긴 그녀는 돌연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 정부가 지원하는 장학금을 받고서다. 

그곳에서 ‘혼자 여행하는 여성’이 갖는 어려움에 대해 고민했다. 1000명이 넘는 세계 여성 여행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앱을 개발했다. 글로벌 여성 여행 플랫폼 ‘노매드헐’이다. 파리에서 유학 중이던 2019년 자본금 10만원으로 창업했다. 176개국 여성들이 여행 중 노매드헐을 사용한다. 현재 포르투갈에 있는 노매드헐 김효정 대표를 화상전화로 만났다. 

-2021년 1월부터 쭉 유럽에 있었다고요. 코로나 시국에 해외로 떠난 이유가 궁금해요. 

“프랑스 파리시와 협약을 맺기 위해 왔어요. 2024년 프랑스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면 여행객이 많이 올 것이고, 그 중엔 여성 여행자도 많을텐데 좀 더 안전한 여행을 위해 노매드헐이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의논했어요. 1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는데, 최근 파리관광청과 협력에 성공했어요. 파리시 공식 홈페이지에서 노매드헐 소개를 볼 수 있게 됐죠. 

코로나 시국에 출국을 결정할 땐 당연히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았어요. 하지만 막상 와서 보니 백신 보급이 빨리 됐어요. 제 가족과 지인들보다도 백신을 빨리 맞았어요. 유럽은 현재 ‘위드 코로나’ 분위기로 여행업이 다시 살아나고 있어요. 포르투갈만 해도 식당이나 카페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는 규정이 생겼고, 제가 머무는 산장 숙소도 예약이 꽉 찬 상황이에요. 단체 관광객도 많이 늘었고요. 유럽에 놀러오는 한국인도 조금씩 보이고 있어요. 여행이 다시 돌아오고 있단걸 확실히 체감해요.”

-‘노매드헐’은 어떤 곳인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나요.

“노매드헐(Nomadher)은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노매드’(Nomade)와 ‘그녀’(Her)를 합친 말이에요. 글로벌 여성 여행자 커뮤니티죠. 여성 여행자들이 언제든지 여행에 대한 영감과 여행 이야기, 팁과 정보를 나눌 수 있는 여행 피드, 다른 여성 동행자를 국가·도시별로 찾을 수 있는 여성 동행 찾기 기능을 지원해요. 또 주기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하는 이벤트 기능도 있어요. 

노매드헐은 고유의 인증과정이 있고, 여성 여행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앱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어요. 인증과정이 2단계로 진행되는데, 본인 신분증을 올리고 실시간 셀카를 찍어야 해요. 입력한 정보와 신분증 그리고 셀카 사진 정보가 일치해야 가입할 수 있죠. 여성 여행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여행 중인 김효정 대표. /인스타그램 캡처 
여행 중인 김효정 대표. /인스타그램 캡처 
여행 중인 김효정 대표. /인스타그램 캡처 

-원래 꿈이 기자였다고요. 44개국을 돌아다닐 정도로 여행에 꽂힌 계기가 궁금해요. 

“어릴적부터 종군기자를 꿈꾸며 대학에서 언론홍보영상학을 전공했어요. 학생 기자로 활동하면서 3학년 때 팔레스타인에서 전쟁 저널리즘 관련 컨퍼런스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죠. 여러  매체의 기자를 만났지만 전쟁 지역이 너무 위험하다 보니, 현실적으로는 직접 취재해서 쓰는 기사보다 미군이 주는 보도자료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았어요. 생각과 다른 현실에 진로를 다시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한국에 늦게 돌아가자고 마음먹었죠.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 3개월 정도를 돌아다녔어요. 이후 한국에 와서도 한동안 방황했고, 하고 싶은 걸 찾기 위해 여행 장학금 기회를 얻어 다시 여행을 떠났죠.”

-당시 여행에서 얻은 인사이트가 있다면. 

“멕시코에서 1년 정도 살았는데, 그곳에서 한국어 교실을 열었어요. 당시 한류 영향으로 한국어에 관심을 두는 현지인들이 많았거든요. 타국에서 무언가를 해 볼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이후 터키에서 GIRLS20 청년 여성 대표로 참가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그곳에서 15~30세 청년들이 NGO(비영리 시민 단체)를 직접 만드는 등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고 좋은 자극을 받았어요.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영리도 추구하는 소셜벤처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렇게 창업을 꿈꾸게 됐죠.”

-혼자 여행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학생인데 여행은 가고 싶고, 돈은 없어서 한동안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을 했어요. 현지인 집에 남는 쇼파에서 공짜로 머물며 요리를 해준다던지 문화교류를 하는 방식의 여행이에요. 카우치서핑은 좋은 점도 있지만, 무턱대고 아무 집이나 가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저도 30군데를 다니는 동안 이탈리아에서 ‘두 얼굴’의 호스트를 만나 곤란했던 적이 있어요. 한동안 여행 자체가 두려웠어요. 그래도 카우치서핑을 하면서 나쁜 경험보다 좋은 경험을 훨씬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좋은 호스트도 많이 만났고요. 이대로 멈추면 지는 것 같아서 하고 싶은 여행을 계속했어요.”

-그게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됐군요.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았어요. 실제로 자료를 찾아보니 트립어드바이저 자료에서 한국과 일본 여성 93%가 혼자 여행을 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80% 여성들이 안전상의 이유로 혼자 여행하는 것을 두려워하죠.

하지만 혼자 하는 여행은 내가 나로써 인정받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의 내 모습을 편견없이 보는 사람들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꼈어요. 내가 몇 살인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학교는 어디인지, 돈이 많은지 적은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죠. 여행자일 때 만큼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해요. 이 좋은 경험을 누구나 누려야 하는데 자신감이 없고 두려워서 혼자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노매드헐을 시작했어요.”

김효정 대표가 여행 중 만난 사람들. /인스타그램 캡처
김효정 대표가 여행 중 만난 사람들. /인스타그램 캡처

-준비 과정에서 1000명의 여성 여행자를 인터뷰했다고요. 

“여행객이 많은 파리에서 많은 여성 여행자를 만날 수 있었어요. 여행할 때 안전상의 기능으로 SOS 알람이나 추적기능 등 어떤 게 가장 필요하냐고 물었죠. 그런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어요. 나랑 마음이 맞는 다른 여성 여행자나 로컬 여성을 이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었어요. 믿을 수 있는 현지 여성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는 거에요. 더 깊고 의미있는 정보도 결국 현지에서 얻을 수 있고요. 그런 답변을 토대로 커뮤니티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물리적인 SOS 알람보다 사람이 더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혼자 여행을 하지만 커뮤니티에서 각각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들이 모이면 결국 혼자가 아닌 거에요.”

-여성만 대상으로 하는 이유도 궁금해요. 

“이미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는 많아요. 저는 여성이 원하는 정보나 팁을 모아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컨대 혼자 여행할 때 뭐가 제일 중요하냐고 물어보면 80%가 넘는 남성은 가성비 좋은 숙소와 맛있는 음식이라고 답해요. 똑같은 질문을 여성에게 하면 안전한 숙소와 안전한 도시라고 하죠. 관점도 다르고 각자 원하는 것이 달라요. 

노매드헐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국적도 다양하고 연령층도 18세부터 70세까지 폭이 넓어요. 그런데 그 여성들이 나이와 국적을 떠나 서로 연대감을 형성해요. 혼자 여행할 때 어떤게 어렵고 외로운지 깊이 있는 대화가 이뤄지죠. 어떤 분은 안전상의 이유로 창문이 없는 숙소만 찾아 예약한데요. 또 다른 분은 남편과 사별했지만 일부러 결혼 반지를 끼고 여행한다고 해요. 이걸 외부에 말하면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혼자 여행하냐는 소리를 듣곤 해요. 같은 여성이라서 털어놓을 수 있고, 이해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노매드헐 팀원. /노매드헐 제공
노매드헐 팀원. /노매드헐 제공

-다국적 팀원으로 구성됐는데, 업무 방식은 어떤가요? 

“팀원이 5명이고, 국적은 프랑스, 인도, 한국 등 다양해요. 저희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를 하려면 직접 여행가가 돼야 한다는 철학이 있어요. 그래서 사무실도 없고 각자 흩어져서 일을 해요. 여행하면서 일을 하죠. 프랑스 출신 직원인 자닌은 지금 로마에 있고, 인도 출신 빈하이는 서울 이태원에서 일해요. 실제로 여행지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어요.”

-수익모델은 어떤가요? 

“현재까진 관광공사와 파트너십을 맺어 수익을 올리고 있어요. 글로벌 마케팅 예산을 받아 가이드북을 만드는 식으로요. B2B(Business to Business)로 서울과 부산, 프랑스 파리 등과 협력하고 있죠. 앞으로도 이용자들에게 앱은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에요. 언젠가 커뮤니티가 커지고 좀 더 세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일부 유료 서비스 전환도 고려하고 있어요.”

김효정 노매드헐 대표. /노매드헐 제공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 

“제가 포르투갈에 온 건 웹서밋(Web Summit)이라는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노매드헐을 소개하기 위해서에요. 이곳에 참가한 72개 스타트업 중 우수 사례로 뽑혀 발표할 기회가 있었어요. 유럽에 머무는 동안 파리 관광청과 협약도 맺고 굉장히 의미있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곧 한국에 돌아가 팀원들이 모이는 자리를 만들까 해요. 한동안 한국에서 같이 일하면서 내년쯤 투자 유치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글 CCBB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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