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반 토막 나도 괜찮아요” 대기업 떠나 ‘이곳’으로 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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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반 토막이 대수겠어요? 대기업을 나와 NGO로 이직했지만 후회는 없어요.”

어지간한 일자리 하나 잡기 힘든 취직난에 남부럽지 않은 높은 연봉을 주는 안정적인 대기업을 박차고 나오는 건 쉽지 않은 일. 대한민국 최고라 불리는 대학을 나와 변호사로 나설 준비까지 됐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내 지인의 경우라면 도시락 싸 들고 뜯어말릴지도 모르겠다. 흔치 않은 길. 월급은 반 토막이 돼도 배 이상의 보람을 찾아 떠난 이가 있다.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컴패션에서 새로운 삶을 설계 중인 박재인(35) 과장을 만났다.

대기업을 나와 NGO에서 새로 둥지를 튼 박재인 과장. /jobsN

학창 시절부터 변호사를 꿈꿔온 박씨는 서울대 경영대학을 졸업한 후 2010년 서울대 로스쿨에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어요. 그래서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2014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석유화학 종합 에너지 회사인 에쓰오일에 입사했어요. 6년간 준법지원팀에서 일하면서 기업의 법률 관련 문제를 담당했어요. 법무팀이 송무 등 분쟁 처리를 주로 맡는다면, 준법지원팀은 사내 준법 시스템을 운영하는 일을 해요. 회사와 관련한 모든 법령을 살피고 내부를 점검합니다. 정유회사라 안전이나 환경과 연관된 법률을 주로 살폈어요. 직원이 일할 때 지켜야 할 안전 기준을 살피고 과정을 체계화했습니다. 또 공정거래나 석유사업 등과 관련한 제·개정 법률을 모니터링하고 변동 내용을 챙겼어요.”  

박재인 과장. /jobsN

-퇴사를 결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직장 생활은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이른바 ‘워라밸’이 좋은 곳이었죠. 6년 차에 접어드니 연봉도 꽤 높았습니다. 정유업계가 호황일 땐 성과급도 많이 받았어요. 만족하면서 직장을 다녔어요.  
 
그러던 중 결혼 2년 차인 2018년에 아이가 생겼어요. 기다리던 아이라서 정말 행복했죠. 꿈꾸던 모든 게 다 이뤄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기쁨도 잠시였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배 속 아이를 잃었습니다. 몇 달 후에 다시 임신했지만 또 유산했어요. 그렇게 두 번의 유산을 겪고 나니 정말 힘들었어요.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 상황에 14년 동안 자식처럼 키웠던 반려견마저 갑작스럽게 인지장애를 겪게 되더군요. 노화로 앞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죠. 여러 힘든 상황이 한꺼번에 닥치면서 매우 슬펐고 공허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그간 살아온 시간과 주변 환경을 되돌아봤어요. 몰랐는데 가진 게 너무 많더라고요. 풍족한 환경에서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살았는데 몰랐었던 거죠. 그동안 주변을 살피면서 살기보단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만 생각했던 것 같았어요.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이 많은데 투정 부리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이 180도 변했습니다.  
 
그때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변호사라는 직업도 나의 워라밸을 위해 이용하는 게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을 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비영리단체인 컴패션, 월드비전, 밀알복지재단 등 여러 후원 기관에 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도와야 하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도왔어요. 지하철에서 도움을 청하는 노숙자, 후원을 요청하는 단체 등 가리지 않고 돕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쪽에 아쉬움이 생겼어요. 금전적인 기부도 좋지만 현장에서 직접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가진 역량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어요. 비영리기관에서 일해 보자는 생각에 일자리를 찾던 중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 한국컴패션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2019년 12월부터 컴패션에서 경영관리팀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주변에서 많이 말렸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퇴사하겠다고 하니 다들 깜짝 놀랐죠. 동료들이 정말 말렸어요. 여기에서 계속 일하면서 기부하고 봉사할 수 있지 않냐고도 했죠. 부모님이 특히 많이 놀라셨어요. 대기업에서 좋은 조건으로 일하던 딸이 갑자기 NGO로 이직한다니 무슨 일인가 하셨죠. 그래도 믿어주셨어요. 남편도 응원해줬고요. 안정적인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여러 업무를 하면서 변호사로서도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 격려해줬어요.”

한국컴패션 홍보대사인 션, 정혜영 부부. /한국컴패션 홈페이지 캡쳐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현재 일하는 컴패션은 전세계 25개국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어린이와 결연해 자립 가능한 성인이 될 때까지 전인 양육을 지원하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입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12개국에서 25개국 210만명 이상의 어린이를 양육하고 있어요. 한국컴패션은 2003년 세워졌고, 10만여명의 한국 후원자들이 해외 약 13만명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각종 계약서 검토부터 법률 시스템 정비 등 통상 변호사가 해야 하는 일은 다 하고 있어요. 또 후원금으로 운영하기에 후원자의 기부금을 더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법률 시스템을 마련하고 보완하고 있어요. 후원금의 80% 이상을 반드시 어린이 양육을 위해 사용한다는 원칙도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후원금을 정직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공정한 회계기준을 따르고 있어요. 매년 경영지원실 내부 및 이사회 정기 감사, 행정안전부와 구청 등 정부 기관과 회계법인을 통한 외부 감사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법률적인 업무를 맡고 있어요.  

이 밖에도 전문 법률 지식이 필요한 기부 절차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유산, 주식 등을 기관에 기부하고자 하는 경우 세무 절차가 복잡해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거든요. 한국컴패션의 경우 설립 이후 회계기준이나 사회복지법인 관련 법령 등을 잘 준수해 오고 있었어요. 여기에 좀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기준과 절차를 만들고 있어요. 표준계약서를 만들고 모든 직원이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절차를 간소화하고 있습니다. 또 향후 법적 분쟁을 예방할 수 있도록 교육 매뉴얼도 만들고 있어요.”

박재인 과장. /본인 제공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젠가요.
 
“기존에 받던 월급의 반 토막 월급을 받고 있지만 업무 만족도는 배로 높아졌어요. 다양한 업무를 직접 맡으면서 변호사로서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어요. 최근 기관 설립 이후 최초로 부동산 기부 건도 직접 진행했어요. 그동안 부동산을 기부하고 싶다는 후원자가 있어도 법적 절차가 까다로워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를 진행하면서 기관과 후원자, 후원 아동 모두에게 도움을 줬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어요.
 
또 직원들의 법적 인식이 성장해가는 게 느껴질 때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에 한 직원이 어린이 영상을 찍는데 캐릭터 인형을 출연시켜도 되냐고 물었어요. 지식재산권에 문제가 없냐는 내용이었죠. 단순히 소품으로 잠깐 쓸 땐 큰 문제가 없지만 인형을 주인공으로 쓰면 지식재산권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어요. 이처럼 직원들이 일할 때 법적인 부분까지 먼저 고려하는 모습을 보면 법과 관련한 인식 변화에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해요.”
 
좋은 후원자를 만날 때도 보람을 느껴요. ‘좋은 곳에서 일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죠. 현장에서 이런 분들을 보니 돈이 많아서 후원하시는 게 아니더라고요. 본인이 어려워도 아끼고 아껴서 후원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데 한 달에 10만원씩 10년간 저축해 후원하신 분도 계세요. 본인보다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를 위해 써줬으면 한다는 말씀을 듣고 스스로 부끄러워지기도 했죠. 좋은 후원자가 많은 곳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가장 뿌듯합니다.”

컴패션이 후원한 볼리비아인 플로레스. /한국컴패션 홈페이지 캡처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볼리비아에서 나고 자란 마르셀라 모요 플로레스가 기억에 남아요. 볼리비아의 아이마라 부족에서 태어난 플로레스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컴패션에서 후원을 받고 자랐어요. 공부를 잘해서 국제 장학생에 도전했고, 한국에 있는 3개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지난해 한국에 와서 현재 고려대 공과대학 기계공학부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양쪽 발을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죠. 하지만 의사소통이 어려워 합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때 법적인 부분을 조언해주고 사고 처리에 도움을 줬어요. 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으로 자란 아이를 직접 도울 수 있어서 기뻤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조직 법률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싶어요. 표준계약서 등 여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상주하는 변호사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게 일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NGO에 사내 변호사가 없는 경우가 많아요. 법적인 처리 과정을 체계화해 다른 NGO와 공유하고 싶어요. 업무에 불편을 겪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부를 어렵게 하는 여러 법적인 규제가 있는데, 여러 NGO와 함께 목소리를 내서 이러한 부분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글 CCBB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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