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털 모발’ 갖고 태어난 이 사람이 자신감 되찾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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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발디자이너 김한솔
6살 때부터 가발 쓴 경험으로 창업
“가발에 대한 인식 변화를 만들고 싶어”

‘가발.’ 머리털이나 이와 유사한 것으로 머리 모양을 만들어 쓰는 것을 일컫는다. 최근 탈모를 겪는 이들이 늘자 가발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탈모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3만3000여명이었다. 2016년보다 10% 증가했다. 연령대로 보면 30대가 22.2%로 가장 많았고, 40대(21.5%)와 20대(20.7%)가 뒤를 이었다.

그중에서도 탈모를 겪는 2030세대가 늘자 가발 디자이너와 가발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중 많은 탈모인의 공감을 얻는 가발 디자이너가 있다. “가발은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안경을 쓰는 것과 똑같다”고 말하는 김한솔(30) 가발 디자이너가 그 주인공이다. 김한솔 대표는 가발 디자이너이자 가발숍 ‘공감모’를 운영하고 있다.

김한솔 대표는 공감모를 “가발을 쓴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고 가발을 손질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100% 예약제로 운영하고 현재 김 대표를 포함해 3명의 디자이너와 1명의 상담 실장이 함께 일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가발숍에서는 고객 상황에 따라 가발을 맞춰준다.

“예를 들어 U자형 탈모 남성 고객님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생활 방식을 여쭤봅니다. 활동적인 걸 좋아하시는지, 어떤 일을 하시는지 파악해야 가발 부착 방식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활동적이면 가발을 쓰고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는 고정식으로 추천하고, 격렬한 활동을 하지 않으시면 집에서는 벗을 수 있는 탈부착식을 추천합니다. 이후 랩을 씌워 두상과 탈모 사이즈에 맞게 기본 틀을 만듭니다. 고객의 머리카락 굵기를 파악해 제작 의뢰서를 작성해 공장에 보내 가발을 만듭니다. 50일 정도 후에 가발이 도착하면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에 맞춰 스타일링을 해드립니다. 이 밖에도 부분 가발을 쓰시는 분들의 본 머리도 관리해드립니다.”

가발에 대해 누구보다 전문성을 갖춘 김한솔 대표가 이른 나이에 가발숍을 차린 이유는 따로 있다. 김 대표가 25년 차 ‘프로 가발 착용러’이기 때문이다.

김한솔 가발 디자이너이자 공감모 대표. /본인 제공

김한솔 대표는 양털 모발을 갖고 태어났다. 양털 모발은 머리카락이 양털처럼 밀집돼있고 가늘고 곱슬거리는 머리를 말한다. 딸의 머리카락이 걱정됐던 부모님은 어린 김 대표를 병원에 데리고 가 다양한 검사를 받기도 했지만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할 뿐이었다. 다만 머리카락이 더 이상 자라지도 빠지지도 않을 테니 가발이나 모자를 씌워 주눅  들지 않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선천적으로 다른 머리카락을 갖고 태어난 김한솔 대표가 처음 가발을 쓴 건 6살 무렵이었다.

“6살 때 제가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유치원을 안 가려고 했어요. 그때 부모님께서 가발을 사서 씌워주셨습니다. 남들처럼 머리가 생겼다는 행복한 마음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러나 다른 친구처럼 머리카락이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가발이 벗겨지는 건 일상이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운동장에서 한 친구가 제가 가발을 착용한 줄 모르고 머리를 잡아당겼습니다. 가발이 벗겨져서 운동장에 있던 친구들이 다 봐버렸죠. 그 자리에서 가발을 다시 쓰고 집으로 울면서 도망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엄마께서 ‘넌 다른 게 아니야. 가발 쓴 건 죄가 아니고 숨을 필요 없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당시 어머니는 자존감을 지키는 말씀과 함께 어린 김한솔 대표가 도망쳐왔던 곳에 다시 데려다 놓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지금 생각해 보면 숨고 싶은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잊히고 괜찮아진다는 걸 배웠던 것 같아요. 어릴 땐 그게 너무 싫어 엄마를 원망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엄마 마음도 얼마나 아프셨을까는 마음에 눈물부터 납니다”라고 말했다.

김한솔 대표의 어린시절. /본인 제공

대학생 때는 자동차학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성적에 맞춰 선생님께서 추천해 준 전공이었다. 적성에 맞지 않아 겨우 졸업하고 보험회사 자동차 보상팀에 취업했는데, 6개월 정도 다니다가 그만뒀다.

“같이 일하는 선배들이 왜 가발을 썼냐고 계속 물었어요. 대학 때는 다들 남자 동기라 제 머리에 관심이 없어서 괜찮았는데, 직장에서는 여자들만 있다 보니까 관심을 많이 주셨습니다. 나에게는 너무도 감추고 싶은 부분인데 계속 물어보니, ‘어떻게 계속 숨기고 어떻게 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민을 하다가 문득 자연스러운 가발을 내가 직접 해보고 싶었어요. 그냥 확고하게 ‘이 길이 내 길이다’는 확신이 들었죠.”

딸의 고민을 오랫동안 봐왔던 부모님의 응원을 받으면서 하나하나 준비했다. 퇴사 후 국비 지원을 받아 미용사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은 땄지만 어디서, 뭘 배워야 하는지 막막했다.

“지금처럼 가발이 대중화된 게 아니어서 교육하는 곳을 찾기 어려웠어요. 인터넷을 뒤져 가발 교육하는 곳 딱 한 군데를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가발은 어떻게 구성하는지, 어떻게 자르는지 등 기본을 배웠습니다. 3개월 동안 다니다가 원장님의 추천으로 가발 업체 밀란에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교육받을 때는 마네킹에 실습했었는데, 바로 손님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고 관리를 해야 했어요. 당시 미용 기술이 없으니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남자 손님의 머리카락을 잘라야 했는데, 너무 두려워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객님께서 괜찮다고 해보라고 하셨지만 결국 못 잘랐습니다. 제대로 미용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발 업체를 나와 미용실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김한솔 대표가 운영하는 공감모. /본인 제공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을 쓸고 샴푸를 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2년 반 정도 됐을 때 커트를 배울 수 있었다. 실력을 쌓고 디자이너로 활동을 했다. 내 고객을 만들고 매출에 도움이 되는 디자이너가 됐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 저는 자격지심 덩어리였습니다. 미용실에 오시는 분들은 모두 제 부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존심도 낮아졌어요. 디자이너로서 목표가 생기고 일하는 것도 좋았는데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다시 처음 제가 하고자 했던 가발 업계로 돌아갔습니다. 26살, 하이모에 입사했습니다. 하이모에서는 미용 기술이 있다 보니 처음과 달리 많은 걸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남성 가발을 잘 부착하는 방법, 다양한 스타일링, 자연스럽게 보이는 방법 등을 배웠죠. 무엇보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손님과 대화를 하고 공감대를 나눴습니다. 이 자체로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도 많이 받았어요. 일하는 게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쌓고 29살인 2019년 4월, 서울 강서구에 김한솔 대표만의 가발숍 ‘공감모’를 열었다. 늘 부자연스러운 가발이 싫었고, 그게 싫어 미용실에 찾아가면 남들이 가발인 걸 알아챌까 두려워했다. 가발 쓰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안하고 개인적인 공간에서 하고 싶은 스타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숍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오픈하고 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가게를 열고 1년 정도 지나고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입소문이 퍼졌다.

“제가 가발을 쓰고 있다는 걸 모두에게 오픈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객님들과 상담을 하면서 제가 먼저 오픈을 하면 고객님들께서 기분이 좋아지고 안심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공감을 통해 고객의 기분을 좋게 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고, 제 행동을 통해 용기를 얻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의 상황을 자세히 써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아무에게도 말 못 하는 걸 댓글로라도 남기면서 마음이 편해졌다고 하세요. 이런 분들을 통해 오히려 제가 위로를 얻고 힘을 얻습니다.”

김한솔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와 유튜브에 올라온 콘텐츠. /본인 제공

김한솔 대표는 2년째 가발숍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60대 여성이라고 한다.

“결혼도 하시고 자녀도 있으신 분이었습니다. 가족이 어머니께서 가발을 쓴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본인이 얼마나 큰 아픔과 상처가 있는지는 모른다고 하시더라고요. 쉽게 꺼낼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랑 상담을 하시는 1시간 내내 많이 우시면서 그동안의 이야기들을 다 해주셨습니다. 고객님께서 ‘나랑 비슷한 너를 보니까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평소에 하지 못했던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씀을 저에게라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짠하면서도 감사했죠.”

김 대표는 그 고객을 계기로 심리 상담 자격증을 취득했다. 본인과 같은 아픔과 상처가 있으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또 스피치 학원도 다녔다. 해드리고 싶은 말은 많은데 부족한 것 같아 학원에 다니면서 말하는 법도 배웠다. 이런 김한솔 대표의 노력으로 공감모를 찾는 고객이 점점 늘었다. 한 달에 20명 이상이 공감모를 찾는다. 또 유튜브를 시작하고 나서 여성과 젊은 고객이 늘었다고 한다. 이런 김한솔 대표의 목표는 인식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가발은 희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시력을 교정하기 위해 안경을 쓰는 것과 같아요. 머리카락이 부족해 가발을 쓴다는 게 창피한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커요. 더 나아가서는 가발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노하우를 정리해 교육을 하고도 싶습니다.”

글 CCBB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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