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생 출신이 만든 ‘이것’에 현직 의사들도 극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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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치는 음대생이었다. 대학생 때 손가락을 다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오랜 기간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의료 시스템에 관심이 생겼다. 돈이 없고 자격이 안 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서 누구나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의료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연구를 시작했고, 최근 AI 연구를 위한 의료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가공하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의료 AI 기업 인그래디언트 이준호(33)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그래디언트 이준호 대표. /jobsN

이 대표는 원래 음악학도였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해 대학에서 피아노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대학교 1학년 때 손가락을 다치면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요리하다가 칼에 깊게 베였어요. 반년 동안 손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울 정도로 큰 부상이었습니다. 당연히 피아노도 칠 수 없었어요. 오랜 기간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의료 서비스에 관심이 생겼어요. 미국의 복잡한 의료 시스템으로 인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죠. 획기적인 의료 서비스를 만든다면 돈이 없거나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도 부담 없이 의사에게 정확한 진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가족 중에 의료계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 의료 기술 트렌드와 소식을 꾸준히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5년 바둑 인공지능(AI)인 알파고를 보면서 의료 AI 분야에 관심이 생겼어요. 의료 AI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봤죠. AI 기술이라면 의료 서비스에 관한 장벽을 낮추겠다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딥러닝 기반의 의료 AI 분야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딥러닝 관련 국내 커뮤니티인 ‘텐서플로우코리아’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인공지능에 관해 다양한 정보를 얻고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었어요. 또 의료 AI 관련 대회나 모임이 있다면 무조건 참석했고, 관련 분야 전문가에게 콜드 이메일(Cold email·친분이 없는 사람에게 보내는 홍보 이메일)을 보내 인연을 쌓았습니다.

직접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무작정 유럽에 간 적도 있어요. 베를린, 파리, 벨기에, 브뤼셀 등 유럽 곳곳을 100일간 다니면서 의료 AI 분야 스타트업을 찾아다녔습니다. 회사 대표를 만나지 못하면 직원이라도 만나서 궁금한 걸 물어봤고 현장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변인으로부터 소개를 받아 의대 프로젝트를 맡기 시작했고, 2016년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의료 빅데이터 및 딥러닝 연구·개발을 1년여간 했습니다. 의료 AI 분야 중에서도 세그멘테이션(segmentation·영상 분할)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어요. 현장에서 일하면서 많은 의료진이 연구를 위한 의료 데이터를 가공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들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알았어요. 

이 대표는 의료 AI 분야 데이터라벨링 서비스를 만들었다. /jobsN

의료 AI 개발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데이터입니다. MRI나 CT 등 의료 영상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학습할 수 있는 특정한 형태로 가공해야 해요. 이 과정을 라벨링(labeling)이라고 합니다. 의료 AI 분야에서 데이터 라벨링이란 MRI나 CT를 촬영해 얻은 의료 영상 자료에서 종양의 위치·크기 등을 체크한 뒤 컴퓨터에 학습(머신러닝) 시켜 데이터를 축적하는 전처리 작업을 뜻해요.

의료진이 병변을 판독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알려주면서 AI를 교육해요. MRI나 CT 등 각종 의료 영상의 명도·대조도·균질성(성분이나 특성이 고루 같은 성질)·길이 등 정상 조직과 병변을 구분하는 방법을 일일이 알려주는 작업이죠. 쉽게 말해 종양을 구별해 색칠하는 과정을 라벨링이라고 보면 됩니다. 의료 데이터를 얼마나 정확하고 정교하게 라벨링 작업하느냐에 의해 AI의 분석 정확도가 달라져요. 종양만 잘 구별해서 칠해야 정확한 의료 AI 개발이 가능한 거죠. AI의 분석 정확도가 높으면 환자를 위한 최적의 치료 계획을 세우고 예후를 예측해 대비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어요. 의료진이 직접 의료영상 데이터를 보고 일일이 마우스 등을 이용해 종양이나 병변을 체크해야 했어요. 방대한 작업량도 문제였어요. 딥 러닝을 위해서는 최소한 1만장 이상의 데이터가 필요한데 의료진이 하나하나 직접 손으로 체크해야 하니 연구는 못 하고 데이터 가공에만 대부분 시간을 쏟았어요. 심지어 병변이 복잡하면 더 오래 걸렸죠.

환자 진료부터 강의, 연구까지 해야 하는 교수에게는 곤혹스러운 과정이죠. AI 프로젝트를 진행하려고 해도 결국엔 방대한 의료 라벨링 작업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라벨링 하는 데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프로젝트 자체를 무산하는 때도 많았어요. 이러한 비효율적인 데이터 가공 과정을 해결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직접 의료 데이터 라벨링 개발에 나서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2020년 1월 인그래디언트(구 재이랩스)를 창업했습니다.”

인그래디언트 ‘메디라벨’ 솔루션 구동 화면. /jobsN

이 대표는 2년여간의 개발 끝에 의료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라벨링 하는 프로그램인 ‘메디라벨’ 프로토타입을 완성했다.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 김휘영 교수님 등으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자문하면서 기술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프로토타입 개발 이후 계속해서 기술을 고도화해 지금은 정식으로 서비스 중입니다.

기존 의료 라벨링 솔루션의 경우 데이터를 라벨링 하기 위해 암세포 등을 일일이 손으로 체크한 후 색칠해야 했어요. 메디라벨을 이용할 경우 한 번의 클릭만으로 비슷한 데이터를 반자동으로 선택해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기존 라벨링 소프트웨어보다 라벨링 속도는 10배, 정확도는 2배가량 높였습니다. ‘그림판’ 수준이던 기존 의료 라벨링 소프트웨어를 ‘포토샵’ 수준으로 높인 셈입니다.

여기에 사용자 상호작용 분석 기법을 적용했습니다. 데이터 축적을 이용해 사용자 경험이 쌓일수록 알고리즘 성능을 자체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이에요. 또 미세한 크기 염증, 결절 등 인식하기 어려운 병변까지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엑스레이, MRI, CT, 초음파 등 의료기기 종류나 질병 종류와 관계없이 의료영상 데이터를 쓰는 모든 분과에서 활용할 수 있어요. 영상의학과, 신경외과, 안과, 수의학과 등 다양해요.”

메디라벨은 기존 데이터라벨링보다 더 정교하고 빠른 작업이 가능하다. /jobsN

현재 서울성모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대학병원 의료진이 연구용 데이터 라벨링 솔루션으로 메디라벨을 쓰고 있다. 또 최근에는 국가지원사업인 ‘2021 데이터 바우처 지원사업’의 감염병 부문에 뽑혀 대구가톨릭대학병원과 코로나19 관련 폐, 흉부질환에 관한 공동 연구를 하고 있다. 

지난 7월에는 기술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아 이스라엘의 벤처투자기업 요즈마그룹, 국내 벤처캐피털인 비전크리에이터, 넥스트랜스로부터 14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요.

“‘메디라벨’을 이용해 의료 연구를 진행하는 교수님들이 고맙다고 하실 때 가장 뿌듯합니다. 데이터 가공에 쓰는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줘서 너무 좋다고 하세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관련 기술을 계속해서 고도화해 의료 연구를 위한 데이터 가공 시간을 줄이고, 빠르고 정확한 병변을 알아낼 수 있게 돕고 싶어요. 무엇보다 의료 AI 기술로 지역과 경제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나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또 현재 활용하고 있지 못하는 국내 의료 빅데이터를 이용해 AI 등을 활용한 신약 개발과 건강관리 서비스 등에 기여하고 싶어요.

앞으로는 해외 진출에도 집중할 계획입니다. 나녹스·하이퍼파인 등 글로벌 의료기기 회사와 소프트웨어를 연동할 예정이에요. 또 북미시장 공략을 위한 미국 현지 법인도 세울 예정입니다.”

글 CCBB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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