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메스를 든 셜록 홈즈…직업만족도는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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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학자 이호 교수

피지 못한 세월호 아이들 기억에 남아

정인이만 아동 학대로 죽었을까

죽음서 배우지 못하는 사회는…

‘포렌식’(forensic)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봤을 거다. 범죄를 밝혀내기 위해 수사에 쓰이는 과학적 수단을 의미한다. 영어로 포렌식 메디슨(forensic medicine)을 뜻하는 ‘법의학’은 법정에서 필요한 의학이다. 법률상 문제되는 부분을 의학적으로 밝힌다. 법의학자는 사망한 사람을 대하고 사망 원인과 경위를 분석한다는 점에서 일반 의사와 차이가 있다. 

국내 법의학자는 현재 60여명에 불과하다. 법의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의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이후 4년간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다시 법의학 교수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아야 한다. 법의학 전공자들의 진로는 크게 두 가지다. 국과수 법의관이 되거나 법의학 교수가 되는 길이다. 전국 41개 의대 중 법의학교실이 있는 곳은 10곳 뿐이다. 

의과대학 교수이자 법의학자인 이호(55) 교수는 199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을 거쳐 현재 전북대에서 법의학자를 양성하고 있다. 매일 죽음과 마주하며 개인의 죽음뿐 아니라 사회가 죽음에 미치는 영향 등 죽음과 안전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연구한다. “부검을 통해 삶을 해석한다”는 그를 전주 전북대 의과대학 교수 연구실에서 만났다.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이호 교수. /이호 교수 제공
이호 교수 연구실. /jobsN

◇억울한 망자에게 마지막 희망이 되는 ‘부검’ 

“부검 대상자는 비록 생명은 없지만 나한테 환자이고, 사회적 존재입니다. 생물학적으로 사망했어도 사회적으론 살아있습니다. 부검이 끝나야 주민등록번호가 사라집니다. 가장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이기에 사소한 정황 하나도 놓쳐서는 안됩니다. 죽음에 대한 육하원칙을 밝혀야죠.”

죽은 자는 자신의 몸에 단서를 남긴다. 하지만 이를 해석하고 진실을 밝혀내기까지는 복잡한 절차가 따른다.

“경찰이 먼저 사건 현장에서 변사체나 변사 의심이 있는 사체를 조사해 범죄 연루 가능성을 판단합니다. 부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검찰에 영장을 신청하고, 검찰이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청구해 발부받는 절차를 거칩니다. 부검의는 사건 개요와 현장 사진 등을 검토한 후 부검에 들어갑니다. 사인이 명확해 보이더라도 생명과 직결되는 머리, 목, 몸통은 기본으로 열어봅니다. 부검 결과로 유관적인 소견을 일차적으로 유가족과 경찰에게 설명합니다. 이후 국과수에 보낸 조직학적 검사나 혈액 검사 결과가 나오면 종합해서 문서 작업에 들어갑니다. 부검감정서 작성이죠. 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수일에서 수주가  걸립니다.”

부검은 보통 팀을 이뤄 진행된다. 집도 부검의와 보조 역할을 맡는 법의조사관, 카메라로 기록하는 사람 등이다. 시체 1구를 부검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내외다. 

/MBC 드라마 ‘검법남녀’ 캡처.

“1년에 평균 140구를 부검합니다. 부검 대상은 수사기관에서 의뢰한 사인불명의 변사체입니다.”

이 교수는 현재 전라북도에서 발생한 변사 사건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국과수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약 6년 동안 1년에 평균 400~500구에 달하는 시신을 부검했다. 현재까지 부검한 시체는 약 4000구에 이른다. 

부검실에 들어오는 시체는 다양하다. 머리가 깨진 시신부터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시신, 물속에서 발견돼 신체 일부가 부풀어 오른 시신 등이다. 신체가 온전치 않은 망자를 부검하는 것이 두렵지는 않은지 물었다.

“환자로 보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습니다. 또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해부학을 공부하는 동안 이미 신체 곳곳을 관찰했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고인이 생전에 말하지 못한 억울함이나 메시지를 몸에서 찾는 것 입니다.”

하지만 이 교수 역시 오랜 기간 부검을 하면서 유독 잔상이 남는 망자들이 있다고 했다. 

“어린 친구들이 부검실에 오면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채 느껴보지 못한 삶들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대량 참사가 나면 인력이 부족해 지원을 나갈 때가 많은데, 그렇게 마주했던 게 세월호 아이들이었습니다. 시신으로 수습된 아이들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던 것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아동학대나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망에 우리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관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유사한 사건들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 죽음들을 개별화하지 않고, 안전 시스템을 잘 갖춰야 합니다. 

아동학대로 사망하는 아이가 정인이만 있을까요?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잊지 말자고 하는 것은 이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마련하자는 말입니다.” 

/이호 교수 제공

◇부검, 영화·드라마와는 엄연히 달라 

이 교수는 의과대학 재학 시절 진로 변경을 고민했다고 한다. 단조로운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시 ‘탁’ 치니 ‘억’하고 쓰러지는 식의 억울한 죽음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법의관을 꿈꾸게 됐다.

“어느날 광주 조선대학교에 이철규라는 사람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 중이었는데 사망한 채로 발견됐습니다. 사인을 규명해야 하는 데 당시 우리나라에 법의학자가 많이 부족했습니다. 앞으로 계속적인 죽음들이 있을텐데 사인을 규명하고, 진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법의학을 꿈꾸며 의대를 졸업했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설명하는 이 교수 얼굴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소명의식으로 택한 직업이지만, 그래도 일반 의사와는 다른 삶이다. 후회는 없었을까. 

“없습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업 만족도를 묻는다면 만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다른 걸 안해봐서 비교할 게 없습니다. (웃음)”

주기적으로 죽음을 만나야 한다. 부검을 수차례 진행하면서 생긴 직업병은 없는지 물었다. 

“누군가와 대화할 때 논리적이려는 습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검감정서를 쓰면서  단어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이 문서가 법정에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드라이하면서도 논리적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그런 패턴이 평소 대화 습관에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법의학자를 둘러싼 오해와 편견도 많다. 미제 사건을 부검이나 과학수사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영화·드라마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법의학자는 사건 전체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닌,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과학적 판단을 내릴 뿐이라는 설명이다. 

대신 부검 결과에 대한 공보 기능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부검 결과가 수사 기관을 통해 압축적으로 공개되다 보니 억측과 가짜뉴스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밭에서 숨진 채 발견된 유병언씨 시신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시 부검 결과가 압축적으로 공개되면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의혹들을 해소하기 위해 국과수가 수사기관과 협의해 결과를 직접 발표했었습니다. 국과수를 통해 많은 자료가 공개되면서 상당한 의혹이 해소됐고, 많은 사람들이 결과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부검 결과는 전문가를 통해 전달돼야 의혹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 삶을 가르칩니다”

이 교수는 법의관들에게 권한이 적은 현실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실무는 법의관이 하지만 변사체를 조사하는 검시 집행부터 부검 여부 결정까지 경찰·검사·판사를 거쳐야 하는 복잡한 구조라는 설명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검시의 모든 과정을 법의관이 담당한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건만 다루는 것이 가장 아쉬운 부분입니다. 억울한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가능성이 있는 것은 모두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검을 통해 얻는 메시지는 죽은 자뿐 아니라 산 자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사인이 명확한 죽음이라고 하더라도,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통계를 만들면 우리에게 적합한 안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화재나 건물 붕괴 사건 같은 경우도 부검을 통해 상흔들로부터 해당 건물이 부실하게 지어지진 않았는지,  철거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등 정보를 얻어 안전대책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습니다.

부검은 이 죽음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듭니다. 해부학 교실에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음을 통해 우리가 보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죽음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사회는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이호 교수 제공 

죽음을 늘 가까이서 지켜보는 이 교수에게 ‘생애 마지막’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물었다. 

“내 죽음도 언젠가 올 일이니 미리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거미줄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회장부터 노숙자까지 다양한 망자를 부검해왔습니다. 생전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평가가 달랐더라도 마지막은 결국 다 같더군요.”

전북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jobsN

법의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도 조언을 부탁했다. 

“노력에 비해 얻는 성과가 적다고 느끼기 때문에 지원자가 적습니다. 하지만 법의학 전공을 결심하게 된다면 우리나라에는 법의학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전망이 밝을 것입니다. 처우도 개선되고 있고, 법의학자에 대한 인식도 점점 좋아지고 있습니다. 변사 사건이 발생해 부검을 진행하게 되면 사람들은 결국 법의학자를 통해 진실을 듣고 싶어 하거든요. 

또 한가지 덧붙일 이야기가 있다면, 거창고등학교의 직업 선택의 교훈 10가지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10가지가 법의학자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다시는 올 수 없는 놀이공원에 왔다고 가정해봅시다. 회전목마를 탈 건가요, 바이킹을 탈 건가요?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한번 뿐인 소풍을 왔는데 안정적인 것만 추구하기보다 저 어드벤처를 해보기를 추천합니다.”

글 CCBB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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