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18개 훔치고 징역 1년 받았다, 코로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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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죄’라는 말이 있다. 가난 때문에 여러 범죄를 저지르거나 불행해진다는 말이다. 지난 3월 강원도 춘천에서 한 60대 남성이 과자와 캔커피 등 9000원어치를 훔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2020년 12월부터 총 10차례에 걸쳐 과자·음료수 등을 훔쳤다. 훔친 이유는 “심혈관 질환 약을 먹어야 하는데 빈속에 먹을 수가 없어서”였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현대판 장발장들이 사회 곳곳에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 장발장’이다. 장발장은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장편소설 ‘레 미제라블’에 등장하는 소설 속 주인공이다. 빵을 훔친 죄로 그는 5년형을 선고 받고 19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들은 대부분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다. 실제 대검찰청은 절도 등 생계형 범죄를 포함한 재산 범죄가 2019년 62만7558건에서 2020년 65만8664건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작년 대비 5% 늘었다. 재산 범죄는 대표적인 불황형 범죄다. 경기가 어려울 때 더 늘어난다. 

한 고시원에서 구운 계란을 훔치는 A씨의 모습. /JTBC 뉴스 유튜브 영상 캡처

◇배고파서 계란 18개 훔친 현대판 장발장

‘코로나 장발장’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건 작년 3월이다. 40대 남성 A씨는 경기 수원시의 한 고시원에서 구운 계란 18개를 훔친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체포 당시 그는 “코로나 사태로 건설 현장 일이 끊겼는데 무료 급식소마저 문을 닫는 바람에 열흘 정도를 물만 마셨다”며 범행을 저지른 이유를 밝혔다. 그가 훔친 계란값은 고작 5400원. 죄에 비해 처벌이 너무 무겁다는 의견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코로나로 인해 ‘경미범죄심사위원회’(피해 정도가 경미하거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 피의자의 처벌을 감경해 주는 제도)도 열리지 않아 A씨는 감형 받지 못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시민단체, 변호사, 경찰 등이 모일 수가 없어 심사도 줄었기 때문이다. 

‘수원 코로나 장발장’이라 불린 A씨는 부모의 학대로 10대에 가출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물건을 훔치다 보니 어느새 전과 10범이다. 그가 훔친 물건은 손수레(1만500원), 동파이프(7만7000원), 구리전선(30만원), 중고 냉장고(185만원) 등이다. 첫 재판 당시 A씨는 보이스피싱 범죄로 이미 재판을 받은 상태였다. 검찰은 그에게 징역 18개월을 구형했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에서 상습적으로 절도를 하면 징역형을 선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로라 비커 BBC 서울 특파원은 SNS에 “대한민국 검사들은 배가 고파 계란 18개를 훔친 사람에게 18개월 형을 요구한다”며 “이는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가 받았던 형량과 똑같다”고 비판했다. 수원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A씨의 영치금이 330원인 것으로 밝혀져 더욱 안타까움을 샀다. 시민들은 “계란 몇 개 훔쳤다고 실형을 때리냐”며 “돈 없고 힘없는 사람에게 1년 6개월 형은 가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왼쪽은 로라 비커의 트위터. 오른쪽은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손정우의 모습이다. 재판부는 손 씨가 어릴 때부터 불우하게 자랐고,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실형을 선고했다. /로라 비커 트위터 캡처, 조선DB

비난이 거세지자 재판부는 예정된 선고를 미루고 판결 전  A씨에 대한 형량을 재검토했다. 그리고 10월 1심 선고에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조사 결과 A씨가 불우한 환경에서 어렵게 자라온 점이 드러났다”고 했다. 코로나19 상황에 극심한 곤궁에 처했던 점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현행 특가법상 누범에겐 벌금도 집행유예도 없다. 판사는 가장 낮게 줄 수 있는 형량인 징역 1년 형을 내렸다. 다행히 A씨는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A씨의 혐의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서 ‘야간건조물 침입 절도죄’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피해 금액이 5000원 정도에 불과하고 A씨가 범행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있다는 점을 참작했다. 야간건조물 침입 절도죄는 최소 1개월에서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여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

대구와 울산에서도 장발장이 등장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50대 남성 B씨는 작년 3월 한 시장 생선가게에서 말린 삼치 한 마리를 훔쳤다. 설 연휴 때도 가자미 18마리를 훔친 B씨는 배가 너무 고팠다고 말했다. 절도 전과 3번 이상 있는 B씨는 수원 장발장처럼 징역형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대구지방검찰청은 여러 사정을 감안해 B씨를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라면을 훔친 20대 울산 장발장은 이례적으로 선고유예를 받았다. 선고유예는 2년이 지나면 처벌을 면해주는 제도다. 집행유예와 달리 전과 기록이 남지 않는다. 가족도 없고 직업도 없었던 C씨는 울산의 한 작은 식당에 몰래 들어가 라면, 햄, 공깃밥 등을 훔쳤다. 울산지방법원은 생계형 범죄임을 감안해 징역 4개월의 선고를 유예했다. 

생선가게 사장인 배용진씨는 B씨의 선처를 바란다며 담당 형사인 대구강북경찰서 임재성 형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임재성 형사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인 B씨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주민센터로 데려갔다. /JTBC 뉴스룸 영상 캡처

코로나 장발장이 증가하는 이유에는 복지 문제가 크다. 이들 모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였다. 수원 장발장 A씨는 주거가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초생활보장수급 혜택도 받지 못했다. 기초생활보장수급제도는 생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저생활비를 보장해 주는 제도다. 보건복지부 자료를 보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수도 3월 말 기준 219만8000명으로 작년 말(213만4000명) 보다 약 3% 증가했다. 특정한 주거지가 없는 거리 노숙인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복지 제도 대상이지만 해당 정보를 몰라 못 받는 경우도 많다. 작년 서울시가 지급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은 거리 노숙인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거리 노숙인은 마지막 주소지로 등록돼 있는 관할 주민센터에서 재난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다. 또 거주불명등록 상태여도 거주불명등록이 돼 있는 관할 주민센터에서 신청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지원금을 못 받은 것일까. 거리 노숙인이 생활하는 곳과 등록된 주소지가 다를 경우 그곳까지 이동할 교통비용과 수단을 마련한다는 게 쉽지 않다. 또 신청 방법을 모르거나 지원금이 있는 것 자체를 몰랐던 노숙인도 많았다. 생계형 범죄자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단순히 선처하는 것보다는 복지 시스템으로 인도해 재범률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을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의견이다.

광명시 푸드마켓 ‘먹거리 그냥드림 코너’를 방문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오른쪽은 서울 영등포구의 ‘영원마켓’ 내부 사진이다. /경기도 제공, 조선DB

◇코로나 장발장도 우리 이웃

더 이상 코로나 장발장이 나오지 않도록 예방책을 내놓은 지자체도 있다. 경기도는 작년 12월부터 ‘경기먹거리 그냥드림코너’를 운영 중이다. 빵·음료수·마스크·위생용품 등 기부물품 5종을 받을 수 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굶주림으로 빵을 훔칠 수밖에 없는 장발장이 지금 우리 이웃이 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도 범죄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배가 고파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했다. 경기도에 이어 영등포구도 생계 어려움이 있는 영등포 구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료 마켓인 ‘0원마켓’을 열었다. 이름, 주소, 연락처 등을 적으면 3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자유롭게 가져갈 수 있다. 지원 물품은 쌀·라면 등의 식료품, 휴지·샴푸·비누 등의 생활필수품, 의류 등이다. 기업과 개인의 후원·기부를 받는다.

글 CCBB 잔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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