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안하지만, 잘 나가다 고꾸라진 적 있어서…”

94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씩은 들어봤을 법한 문장이다. ‘풋’ 소리가 나올 만큼 유치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밀도 높은 사랑의 마음을 한 글자씩 꾹꾹 눌러쓴 것만 같아 자꾸 눈길이 간다.

고작 한 줄에 복잡다단한 사랑의 감정을 담아내 수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웃게 만든 이 글은 시인 원태연의 손 끝에서 나왔다. 원태연은 스물 두 살에 낸 첫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가 150만부 이상 팔리며 사랑을 받았다.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네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와 ‘원태연 알레르기’ 등 그 뒤로 낸 시집들 역시 반응 역시 좋았다. 하지만 2002년 불현듯 ‘안녕’이란 시집을 내고 조용히 사라졌다. 

그랬던 그가 18년 만에 새 시집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들고 독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집에는 그가 이전에 쓴 시 70편과 새로 쓴 시 30편이 담겼다. 1월 말 현재 그의 시집은 교보문고, YES24 등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다. 그 인기에 힘입어 이전에 낸 시집도 베스트셀러에 재진입했다.

작사가, 드라마 작가, 뮤직비디오 감독 등 먼 길을 돌아 시인 원태연으로 돌아온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tvN ‘유퀴즈온더블럭’ 방송화면 캡처

-얼마 전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했는데 어땠나.

“전날 밤 긴장으로 한잠도 못 잤다. 촬영장에 도착해 대기실에 있었는데 스텝들이 앉지도 못하고 서서 밥을 먹더라. 그걸 보고 나와서 에스프레소 더블 세 잔을 마시고 촬영에 들어갔다. 세 시간 찍고 나중에 인터뷰도 했는데 영 정신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주목받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 

-방송 이후 시집은 많이 팔렸나.

“방송 이후 잘 팔렸다고 하더라. 출판사 대표님이 매일 알려주셨다. 주식은 안 하지만 친구들이 매일 주식창 들여다보는 것처럼 나도 계속 서점 순위 쳐다볼까 봐 일부러 안 봤다. 일희일비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전에 너무 잘나가다가 고꾸라진 경험이 있어서.”

-안 된 시집도 있었나.

“’사용설명서’라는 시집이 있는데 아무도 모른다. 내면 잘 되는 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막상 안 팔리니까 내가 시를 예전처럼 쓰려고 하더라.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집 ‘안녕’을 끝으로 시를 쓰지 않았다.”

MBC ‘무릎팍도사’ 방송화면 캡처

-첫 시집은 어떻게 냈나.

“스무 살 때 여자친구랑 헤어진 것을 계기로 냈다. 첫사랑이었다. 나는 하루 종일 그 친구만 생각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싫증이 난 게 느껴지니까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때 쓴 시가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다. 그 전부터도 시는 썼다. 중학교 때 친한 친구가 러브레터를 많이 받았는데 그 중에 조병화 시인의 ‘고독’이라는 시가 있었다. 그걸 읽고 느낌이 왔다. 누나들 책꽂이를 뒤져 로맨스 책을 보고 흉내를 내서 답장을 해줬었다. 이렇게 시작해 7년 정도 시를 썼다. ‘넌 맨날 뭘 그렇게 쓰니’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쓰다 보니 실력이 계단식으로 늘더라. 시집 4권 보고, 7년 동안 쓴 시 가운데 한 편을 포함해 새로 쓴 시로 첫 시집을 냈다.”

-편지를 대신 써주다 혹시 작가와 이어진 경우는 없었나. 

“그런 적은 없다. 시집 두 권 내고 군대에 갔는데 거기서도 살벌하게 썼다. 입대를 했는데 ‘네가 시인이라며’라고 묻더라. 시집 소개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도 묻길래 아예 적어서 물어볼 때마다 보여줬다가 빠졌다고 혼나기도 했다. 고참 연애편지를 써줬다가 답장이 와서 잘 쓴다고 소문났다. 15명 이상의 연애편지를 써줬다. 단 하루도 지루한 날이 없었다. 내가 편지를 잘 쓴다. 아내가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 중이었을 때 편지를 써서 마음을 얻었다.”

-대학교에서 체육을 전공했다. 이유가 있나.

“사격으로 대학에 갔다. 우연한 계기로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시작했다. 고2 때 체전에 나갔는데 25m 대회에서 꼴찌를 했다. 속상했다. 삭발 비슷하게 머리를 자르고 집에 와서 3kg짜리 아령을 들고 미친 듯이 연습했다. 그 결과 고3 첫 시합에서 메달을 땄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가니 ‘원태연이 누구냐고’들 하더라. 늦어도 중학교 때는 시작해야 하는 운동인데 갑자기 나타난 애가 좋은 성적을 받았으니 궁금했던 거다. 자존심이 상했던지 내 결과를 두고 다들 그때 우연이라고 했다. 기가 죽어서 대학에 가서 손을 놨다.”

왼쪽부터 원태연 시인이 가사를 쓴 오렌지 캬라멜의 ‘방콕시티’ 무대,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출연 배우들과 함께한 행사. /왼쪽부터 MBC 뮤직코어 방송화면 캡처, 네이버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 스틸컷 

-작사가로도 활동하고 영화도 찍는 등 정말 다양한 활동을 했다.

“허각의 ‘나를 잊지 말아요’, 샵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박명수 ‘바보에게 바보가’, 오렌지캬라멜 ‘방콕시티’ 등을 썼다. 로엔 엔터테인먼트(현 Kakao M)에서 한 5년간 음반도 만들고 관리도 했다. 아이돌 음악도 좋으면 다 듣는다. 가리지 않는다. 지금도 이태원 클럽으로 가끔 춤도 추러 간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일했었고, 2009년에는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찍기도 했다. 군 제대 후에 시나리오 작가로 일했었다. 결혼 후에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잘 모르지 않나. 자존심이 상해서 집 앞 비디오 가게의 모든 영화를 다 봤다. 그러니까 감이 좀 오더라. 드라마는 이번 시집을 내기 전 2년 2개월 동안 거의 외출도 안 하고 몰입해서 썼는데 결과적으로는 잘 안됐다. 계약금 일부를 반환해야 해서 한 출판사에서 제안한 필사 시집 제안에 응하게 됐고,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이번 시집이다.”

-18년 만에 시를 쓰니 어땠나.

“내가 영화를 찍으면 느끼하다고 하고, 가사를 쓰면 오그라든다고 하고, 드라마는 또 20년 정도 썼는데 거절당했다. 실력이 없는 거다. 그에 비하면 시는 못 쓸 명분이 없다. 근데 시를 어떻게 쓰는 건지 기억이 안 나더라. 걱정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5개를 써서 조심스럽게 출판사에 보냈는데 거기서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 엄청 안심이 됐다. 아무도 모른다 그 마음을. 평가를 받으니 나름의 기준이 생기더라. 그 다음부터는 몸이 풀렸다. 첫 시는 ‘울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 시는 원래 제목이 없다. 스치는 영감을 잡아 쓴 시인데 못 쓰면 시는 무용지물 아닌가. 시에게 너무 미안했다. 원래 시집 제목으로 하려고 했던 제목을 그 시에 붙여줬다. 잘 보면 그래서 시 제목이랑 내용이 상관이 없다.”

-새로 쓴 시와 이전에 쓴 시 가운데 애착이 가는 시를 하나씩만 골라본다면.

“신작 가운데선 ’영혼으로 쓰는 반성문’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시다. 이전에 쓴 시 중에선 ‘이별역’에 가장 애착이 간다. 이전에는 내 시를 국문과나 문창과 학생들이 리포트에 쓰면 욕을 먹거나 F를 받았다. 등단도 못 한 시인이라고 제대로 인정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내 시가 베스트셀러 1~3위를 모두 한 적이 있었는데도 서점에 가보면 내 시집이 ‘시’ 코너가 아닌 ‘청소년 명랑시’ 코너에 있더라. 정말 속상했다. 군대에서 쓴 시라 거친 것도 있었는데 그걸 명랑시에 가져다 놨더라. 그 이후로는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비웠다. 근데 5~6년 전에 경주 시청에서 연락이 와서 문화의 거리에 내 시 ‘이별역’을 첫 번째로 놓고 싶은데 얼마를 드리면 되겠냐고 묻더라. 그 얘기를 듣고 너무 고마워서 점심값이라도 보내고 싶다고 했는데 못 받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공짜로 쓰라고 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꼈다. (인정을 제대로 못 받았던) 옛날 생각도 나더라. 내 휴대전화 배경화면도 경주에 있는 내 시 사진이다. 이 시는 첫 책이 나오기 전에 녹번역에서 썼다. 항상 펜을 가지고 다녔었는데 그때 생각이 나서 입고 있던 청바지에 썼었다. 어머니가 바지를 세탁하시긴 했지만.”

tvN ‘유퀴즈온더블럭’ 방송화면 캡처

-이번 책의 형식이 필사시집이다.

“난 출판계에서 끝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제의가 왔을 때 내가 다른 사람의 시를 필사하라는 건 줄 알았다.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사실상 안 하겠다는 뜻이었는데 드라마 엎어지고 나서 3달 동안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계약금을 갚을 때가 왔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출판사에 하겠다고 해서 책을 냈다.”

MBC ‘무릎팍도사’ 방송화면 캡처

-작가를 ‘아웃사이더’에 빗대기도 한다.

“나는 하고 싶었던 게 많아서 남의 분야의 소위 ‘한다’하는 사람들과 한 뭉텅이로 엮일 때가 많았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좋겠나. 그런 사람을 아웃사이더라고 한다면 난 아웃사이더가 맞다. 다만 아웃사이더를 마치 이방인에 비유해서 나를 멋있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그냥 남의 영역을 많이 침범하는 사람이다. 그냥 나이 먹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아저씨다.”

-개성이 굉장히 강한 느낌이다.

“나는 오히려 내가 30대 후반까지 너무 평범해서 싫었다. 이게 내가 한 가장 독특한 생각이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독특하다고 하면 안 믿었다. 친한 사람들이 이런 소리를 하면 그때마다 ‘내가 이 사람에게 나를 다 안 보여줬구나’ 생각했다. 근데 지금은 아니다. 그냥 인정하니 편해졌다. 아내도 이런 나와 사는게 지루하지 않다고 하더라. 우리 와이프는 나를 팔색조라고 부른다. 아내가 우리 아이를 가졌을 때가 내가 제일 바빴던 시기였는데 새벽에 들어오면 혼자 식탁에서 과일을 깎아 먹고 있었다. 그때도 뭐라고 하는 대신 나를 존중해줬다. 이런 아내를 존경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에세이를 쓰고 있다. 주제가 ‘자기자비’다. 3월 달쯤 나올 것 같다. 늦가을에는 시집을 하나 내려고 한다.”

글 CCBB 포도당

img-jobsn

회신을 남겨주세요

귀하의 의견을 입력하십시오!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