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쓰레기 스트레스, UN 직원들이 해결해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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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분해되는 친환경 쓰레기봉투 ‘쓰봉’ 개발한 이문희 대표

순대껍질 성분 쓰레기봉투, 옥수수전분 넣은 싱크대 거름망

글로벌 농기업 ‘카길’ 출신… “직장서 배운 것 버릴 게 없더라”

친환경 소재 장갑·롤백도 출시 예정… “주방에서 비닐 추방시킬 것”

가장 난이도 높은 집안일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음식물쓰레기 처리일 것이다. 고약한 냄새의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손 끝으로 잡고 가져가 다시 수거함에 붓는데, 자칫 실수하면 옷에 쓰레기 국물이 튄다. 봉투 째 쏘옥 버리면 좋겠는데, 분해가 되지 않는 합성 비닐 성분을 같이 버리게 된다. 하지만 충북 청주의 중소기업 ‘톰스’가 개발한 쓰레기봉투 ‘쓰봉’은 그냥 버려도 된다. 100% 천연 소재로 만든 비닐이어서 6개월 정도 뒤 자연분해되기 때문이다. 환경에 관심 많은 주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다 최근 ‘2020 올해의 으뜸중기제품’으로 선정돼 중소벤처기업부장관상까지 받았다. 환경부에선 전국 종량제봉투 중 일부를 ‘쓰봉’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쓰봉을 만든 이문희(52) 톰스 대표의 이력이 흥미롭다. 동남아 전문 여행사 가이드로 일하다 세계 최대 곡물 메이저 ‘카길’에 들어갔고, 전 세계 곡물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곡물 딜러로 활약하다 퇴직해 쓰레기봉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쓰봉은 모두 직장생활 중 얻었던 경험과 아이디어를 통해 만든 것”이라고 했다.

-어떤 계기로 글로벌 기업의 곡물 딜러가 됐나?

이문희 톰스 대표. /톰스 제공

“상고 졸업 후 곧장 서울에 와 종로에 있는 한 여행사에 취직했다. 여행사를 선택한 것은 그냥 여행이라는 것에 끌렸고, 여행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1990년대 초반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해외여행객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당시 여행사는 무역회사 같은 일도 병행했다. 여행사 직원들은 여행객들과 해외에 체류하면서 한국에서 팔릴만한 물건도 매입을 한다. 그리고 귀국길에 여행객들이 나눠서 가지고 들어오게 한다. 이를 국내시장에서 유통해 또 돈을 번다. 그런데 필리핀 망고가 현지에서 100원인지 200원인지 누가 알겠나. 당시 선배들은 서울 본사에 구매 가격을 속이거나 현지 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겼다. 나는 그렇게 돈 버는 것이 무섭기도 했고 싫었다. 딴주머니 차지 않고 영어 공부 성실히 하며 일하자 필리핀 현지의 협력 여행사를 운영하는 화교(華僑) 사장님이 ‘곡물 메이저에서 일해볼 생각 없냐’고 하더라. 알고보니 이 사장님 친구가 카길의 요직에 있었다.”

-카길에선 어떤 일을 했나?

쓰봉 소재는 6개월 정도면 자연계에서 생분해된다.(왼쪽) 이 대표는 카길에 근무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한다.(오른쪽) /인터넷 화면 캡처

“카길은 세계 최대 규모의 식품 유통회사다. 난 전 세계를 돌며 곡물을 사고 팔았다. 봄에는 우크라이나로 날아가 밀을 사왔고, 가을에는 인도 펀자브로 날아가 쌀을 사들였다. 아프리카·남미·중앙아시아 안가본 곳이 없다. 카길 곡물 딜러 중 한국인은 나 하나였다. 한국인으로써 보람된 일도 있었다. 20여년 전쯤 글로벌 옥수수 파동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옥수수를 확보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한국 정부가 곡물 메이저들에 물량을 요청했지만,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그런데 한국인 직원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농림부 고위 관계자가 날 찾아왔다. 내가 가진 재량을 총 동원해 중국으로 갈 물량의 30%를 한국으로 돌렸다.”

-그런데 왜 그만뒀나?

“독자적인 농산물 유통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었다. 2007년 카길을 나온 뒤 지금까지 관련 사업을 진행 중에 있다. 다만 충분한 투자를 유치해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프로젝트다. 이와 별도로 당장 성과를 낼 수 있는 제2의 비즈니스가 필요했다. 2015년에 휴대하기 편한 담배케이스를 개발했는데, 시장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봉지째 버릴 수 있는 생분해 비닐 봉투 ‘쓰봉'(bit.ly/37U3Hl3)을 떠올리게 됐다.”

-곡물 유통사업과는 연관성이 없어보인다.

친환경 음식물쓰레기 봉투 ‘쓰봉’. /톰스 제공

“난 직장생활을 하며 늘 노트 하나를 들고 다녔다. 당장 쓸모가 없더라도 흥미로운 아이디어나 경험이 있으면 기록해뒀다. 최근 전 지구적으로 쓰레기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노트를 찬찬히 살펴보다 아프리카에 갔을 때 기록한 메모를 발견했다. 당시 카길에서 아프리카 주재 유엔 기관들에 콩을 납품하고 있었다. 방문 당시 유엔 직원들은 봉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배변봉투였다. 화장실이 없는 지역이 많다보니 외근을 할 때는 이런 것을 들고다녀야 했다.”

-UN 직원들이 가지고 있던 봉투가 자연분해되는 것이었나?

“분해는 되는데, 친환경 소재는 아니었다.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보기로 했다. 우선 식품 소재중에서 원료를 찾았다. 소시지나 순대 껍질로 쓰이는 콜라겐 성분을 활용하면 되겠다 싶었다. 문제는 접합이다. 시판되는 소시지를 보면 양 끝에 금속 핀으로 밀봉한다. 콜라겐과 콜라겐을 접합하는 것이 쉽지 않아 이렇게 하는 것이다. 2017년부터 꼬박 2년동안 접합에 적당한 온도, 재료 배합비 등을 찾았다. 충북대 융합기술원 전문 연구진의 자문을 통해 콜라겐을 녹이지 않으면서도 이어붙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리고 2019년 초 시판에 들어갔다.”

-시장의 반응이 어땠나?

“판매 첫 날을 잊을 수 없다. 온라인 유통업체 측도 한 열흘 정도에 팔릴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두 시간만에 완판됐다. 가격이 일반 비닐봉지보다는 고가임에도 소비자들은 환경을 위해서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무엇보다 재구매율이 높았다. ‘신세계에 온 것 같다’는 구매 후기가 달렸다. 온라인몰(bit.ly/37U3Hl3)에서 인기다.”

-요즘엔 ‘애기쓰봉’이란 제품이 인기다.

싱크대 배수구에 끼우는 친환경 그물망 ‘애기쓰봉’. /톰스 제공

“애기쓰봉은 싱크대 배수구에 끼우는 그물망이다. 쓰봉을 사용했던 한 고객이 ‘이런 것도 만들어 달라’며 제안을 해 개발하게 됐다. 역시 카길 시절에 모아놓은 아이디어에서 찾았다.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PLA(Poly Lactic Acid)라는 친환경 수지가 있다. 이를 대구섬유협회와 협업해 그물망으로 만들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쌓은 경험과 배움 중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구나 싶었다. 현재 환경부와 전국 종량제봉투 중 일부를 우리 제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쓰봉을 롤백 비닐봉투나 비닐장갑 형태로 개발하는 것도 준비 중이다. 궁극적으로 주방에서 합성수지를 추방시키는 것이 목표다.”

글 CCBB 가마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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