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없어 1년 꿇고 택시 운전하던 학생, 12조 자산가로

198

고(故) 이건희 회장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은 누굴까. 국내 바이오의약품 제조업체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다. 지난 7월 블룸버그통신 발표에 따르면 서 회장은 자산규모 12조원으로 우리나라에선 두 번째, 세계에선 177번째로 돈이 많다.

셀트리온 서정진 회장 / 조선DB

지금은 이렇게 세계적인 재산 규모를 자랑하지만 그가 원래부터 돈이 많았던 건 아니다. 오히려 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는 1957년 충북 청주의 한 연탄가게 아들로 태어나 중학생 때까지 연탄 배달 일을 했다. 등록금이 없어 고등학교 입학을 1년 늦췄다. 대학 시절에는 노란색 포니 택시를 끌고 영업을 하며 학교에 다니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대학을 수석 졸업한 그는 삼성전기, 대우자동차 등에서 일하다 외환위기 때 실직했다. 뒤이어 도전한 창업에도 줄지어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뛰어든 바이오산업에서 빛을 찾았다. 셀트리온은 2016년 미국 FDA로부터 세계 최초로 자가면역질환 치료용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판매 승인을 받아 날개를 단 이후로 트룩시마, 허쥬마, 램시마SC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스스로 수저의 색깔을 바꾼 사람들

그 스스로는 ‘흙수저’라는 표현을 싫어한다지만 그의 성공은 그야말로 ‘흙수저의 인생 역전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흙수저가 부를 일구기는 쉽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청년 삶의 질 제고 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가정형편이 좋을수록, 부모의 학력 높을수록 자녀의 첫 직장 평균임금이 높았다. 가정의 경제력과 부모의 교육 수준이 자식의 벌이와도 연결된다는 의미다.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교육의 질도, 자라는 환경도 더 좋을 가능성이 높다. 먼저 성공을 거둔 사람들에게 멘토링을 받을 기회도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서 회장처럼 스스로 수저의 색깔을 바꿔버린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 현대그룹 제공

현대그룹을 창업한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대표적이다. 강원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고된 농사일을 했다. 부두 하역 작업과 건설 현장에서 돌을 나르는 일도 했다. 쌀 가게 점원으로 일하다 가게를 인수했고, 자동차 수리공장 등을 거쳐 서울에서 차린 건설회사를 바탕으로 현대그룹의 기틀을 세웠다.

2조원대 매출을 내는 게임회사 넷마블을 창업한 방준혁 의장은 서울 가리봉동 태어나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 배달을 했으며 돈 때문에 고교를 중퇴했다. 인터넷 영화사업, 위성 인터넷 사업에 도전했으나 두 번 다 망했다. 우연한 계기로 게임 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2000년 자본금 1억원에 지원 8명으로 출발해 현재의 넷마블을 만들었다.

타르트 가게 ‘타르타르’, 브런치 카페 ‘라라브레드’ 등의 성공으로 100억원대 부동산 자산을 가진 사업가로 성장한 강호동 대표 또한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형편이 어려운 탓에 한 번 피가 나면 잘 멈추지 않는 질환인 혈우병 치료조차 제때 받지 못했다. 18살 때 홀로 상경해 밑바닥에서부터 닥치는 대로 돈을 모은 그는 호프집, 마케팅 회사, 타르트 가게 등을 운영하며 노하우를 쌓아 지금의 부를 일궜다.

수많은 스타 가운데서도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이들이 많다. 가수 임영웅, 코미디언 박나래, 가수 비 등이다.

물이 나오지 않는 가수 임영웅의 집 세면대와 미스터트롯 진에 오른 임영웅 / TV조선 ‘미스터트롯’ 방송 화면 캡처

2020년 ‘미스터트롯’ 출연으로 몸값이 치솟은 가수 임영웅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정형편 어려워져 어머니와 떨어져 큰삼촌댁에서 살았다. KBS ‘전국 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후에도 무명 생활에는 볕이 들지 않았다. 겨울이면 생계를 위해 군고구마 장사를 했다. 미스터트롯 출연 당시에도 그는 물도 제대로 안 나오는 화장실 딸린 작은 집에서 생활했다. 그는 미스터트롯 ‘진(眞)’에 오르며 방송가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코미디언 박나래 / 박나래 인스타그램 캡처

코미디언 박나래는 아버지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충격으로 돌아가신 후 온갖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학업을 어렵게 마쳤다. 22살의 나이로 KBS 공채 코미디언 최연소 합격했다. 10년간의 무명 생활을 견뎌낸 그는 지난해 마침내 연예 대상을 받았다.

가수 비 역시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어머니의 투병으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운동복 한 벌로 6개월을 버티고 제대로 씻지 못해 피부병까지 앓았다는 일화도 있다. 하지만 가수로 성공한 그는 현재 아내와 함께 총 800억원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할 만큼 부를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낯선 타국에서 맨주먹으로 성공한 사람들

한국도 아닌 낯선 이국땅에서 성공한 한국인 흙수저들도 있다. 책 ‘파리에서 도시락을 파는 여자’를 쓴 켈리 최와 스노우폭스그룹의 최승호 회장 등이다.

왼쪽부터 켈리 최 회장과 김승호 회장 / 왼쪽부터 josbN, 조선DB

켈리 최는 전북 정읍에서 6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홀로 상경해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하며 고등학교 학비를 스스로 벌었다. 패션 디자이너 꿈꾸며 일본 유학 후 프랑스에 갔다가 친구와 동업을 했으나 실패해 10억원의 빚을 떠안았다. 죽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2010년 연 도시락 브랜드 ‘스시 데일리’의 성공으로 한 해 수천억대 매출을 거두고 있다.

전 세계 11개국에 3878개 매장과 1만여명의 직원을 둔 외식 업체인 스노우폭스 그룹을 이끄는 김승호 회장은 노동자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겨우 굶지 않을 정도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동네 식품점을 시작으로 이불 가게, 신문사 등 7개 사업에 도전했으나 줄줄이 실패했다. 하지만 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이후 시작한 도시락 가게의 성공으로 연 매출 1조원대 회사를 만들었다.

흙수저를 탓하며 자신의 한계를 짓고 무너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처럼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성공의 반열 위에 오른 이들도 많다.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정주영 회장이 입버릇처럼 했다는 “이봐! 해봤어?”라는 말처럼 무엇이든 도전하고, 실패를 통해 배우고, 자신의 성공을 확신했다는 점이었다.

글 CCBB 포도당

img-jobsn
img-jobsn

회신을 남겨주세요

귀하의 의견을 입력하십시오!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