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내게 어마어마한 돈을 준 이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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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자산 50억 이상 부자 36.9%가 손자녀 증여·상속 고려
두 번 낼 세금 한 번으로 줄일 수 있어…할증 과세해도 이익

11조원.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로 삼성가(家)가 부담할 상속세 추정치다. 역대 최고액이다보니, 정부가 상속세를 과하게 징수한다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부자들에게는 독특한 절세 트렌드까지 생겼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10월28일 발간한 ‘2020 한국 부자 보고서’에서 부자들의 상속과 증여 방식의 변화를 살펴봤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보유주식 목록이다. 지분가액을 모두 합하면 18조를 넘고, 주식 상속세는 11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YTN 뉴스 캡처

◇ 10억 이상 보유자 35만여 명, 자산증식도 빨라

2019년 말 기준, 한국에는 부자가 35만4000명 있다. 저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보고서는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보유자를 부자로 정의했다. 금융자산이란 현금·은행예금·주식·채권 등을 말한다. 부동산은 비금융자산이다.

부자들의 금융자산을 모두 더하면 2154조원에 달한다. 2010년 1158조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년간 두 배 가까이(약 1.9배) 늘었다. 반면 전체가계의 금융자산은 2186조원에서 3761조원으로 1.7배만 늘었다. 즉, 부자들의 금융자산 증가속도가 전체가계의 금융자산 증가속도보다 빠른 셈이다. 새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감안해도 적지 않은 차이다. 전체가계 금융자산 중 부자의 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53%에서 57.3%로 4.3%포인트 늘었다.

한국 부자 인구와 그들의 총 자산 규모를 나타낸 그래프. 인구와 총 자산규모 모두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 자산 많을수록, 손자녀 증여·상속 원해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려고 한다. 부자들도 마찬가지다. 부자들에게 ‘상속이나 증여 등의 방법으로 자산을 누구에게 물려주려고 하는가?’라고 질문했다. 이중 ‘자녀’라고 응답한 경우가 93.9%(중복선택 가능)에 달했다. 열에 아홉 이상이 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고자 한 것이다. 다만, 2011년에는 같은 질문에 자녀라고 답한 사람은 98.7%. 거의 전부였다. 10억원 이상 지닌 사람 중, 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려고 하는 사람의 비율이 약 10년간 4.8%포인트 줄어든 셈이다.

반면, 손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사람은 눈에 띄게 늘었다. 2011년에는 자산 이전 대상으로 손자녀를 고려하고 있다고 응답한 부자가 9.2%정도였다. 올해는 31.8%로 10년간 22.6%포인트나 늘었다. 질문 대상을 총자산 50억원이상 부자들로 좁히면, 격차가 더 벌어진다. 50억원 이상 부자들 중 36.9%가 손자녀를 자산이전 대상으로 생각했다. 자산 50억 미만 부자의 응답(26.9%)보다 10%포인트나 높은 비율이었다.

◇ 손자녀에게 자산 물려주려는 이유, 상속세·증여세 절감

자산을 손자녀에게 물려주려는 건, 문화적 변화도 있겠지만 증여·상속세 부담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상속이나 증여할때 10~50%를 과세한다. 물려주려는 자산 규모에 따라 5단계로 세율이 달라지는 누진 구조다. 과세기준은 아래와 같다(증여는 재산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상호 동의를 거쳐 재산이 이동하고, 상속은 상속자의 사망을 기점으로 재산이 이동한다. 증여세율과 상속세율은 같다).

과세표준에 따른 상속·증여세율을 나타낸 표. 상속·증여액의 규모에 따라 세율을 달리 적용한다./국세청 유튜브 캡처

그런데 자녀를 건너뛰고 손자녀에게 자산을 물려주면, 두 번 내야 할 세금을 한 번만 내도 된다. 이른바 ‘세대생략증여’다. 부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합법적 절세’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를 세금 회피로 보고, 견제하기 위한 장치도 있다. 세대생략증여를 하는 경우 증여세에 할증 과세(추가 세율 부과)를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증여세 수준에서 30%를 할증해 과세한다. 미성년자가 물려받을 금액이 20억원이 넘으면 40% 할증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경우 세대생략증여를 택하는 게 세금을 덜낸다. 조부모가 자녀를 거쳐, 성인 손자녀에게 3억원을 증여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두 번의 세금 산출을 거쳐 납부할 증여세는 7200만원이다. 하지만 조부모가 3억원을 손자녀에게 세대생략증여하면 산출세액은 5200만원으로 나온다. 즉, 자녀를 거쳐서 손자녀에게 증여했을때보다 세대생략증여를 택했을 때 2000만원을 절세한 셈이다. 세대생략증여로 30%를 할증 과세하더라도, 두 번 낼 세금을 한 번만 내게 되니 그만큼 세부담이 줄어든다(자녀에서 손주 증여시 이전 부담한 증여세액은 제외).

지난달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은 부유층이 세대생략증여를 세금 회피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세청에서 받은 ‘최근 5년간 미성년 세대생략증여 현황’ 자료가 근거였다.

국세청은 자료에서 2018년 한 해 동안 3979명의 미성년자가 세대생략증여를 받았다고 밝혔다. 미성년자 세대생략증여 총액은 7117억원으로 전체 미성년 증여(1조4187억)의 절반 이상(50.2%)을 차지했다. 3년전인 2015년보다는 두 배 이상(133%) 늘었다. 1인당 평균은 1억7886만원이었다.

오름세는 부동산에서 더 두드러졌다. 현금보다 부동산 증여가 절세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들이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은 총 3653억원에 상당했다. 3년 전인 2015년과 비교해 세 배 가까이(182%) 늘어난 액수다.

고용진 의원은 국감에서 “현행 세대생략 할증 과세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미성년 세대의 생략 할증 과세를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성년들이 자기 돈으로 증여세를 냈는지와 자금출처는 어디인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고 의원은 10월 12일 국감에서 최근 미성년 증여의 절반은 세대를 건너뛰고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MBC 뉴스 캡처

◇ 부의 이전, 앞으로 주요 화두 될 것

세대생략증여가 늘어난 것처럼, 상속이나 증여하려는 문화 자체도 대폭 확대됐다. 상속·증여는 2010년에 18조원 규모였으나, 2019년에는 50조원으로 약 2.7배나 늘었다. 상속·증여인 수도 마찬가지다. 2010년에는 4083명이었지만, 2019년에는 9555명으로 약 2.3배 늘었다.

이처럼 상속·증여는 앞으로 계속 주요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부의 이전 문제에 대해 한국 부자들 뿐 아니라 전세계가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전세계가 겪고 있는 고령화와 자산가치 변동 등이 상속에 대한 관심을 부추긴다고 분석했다.

글 CCBB 이안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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