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뿐 아니라 대기업도 반한 학년·졸업 없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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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교과목부터 심화학습까지 학생이 직접 정하는 학교
교육계 관심 집중…이낙연 전 총리가 방문하기도

‘선생님 우리에겐 꿈이 있어요. 시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우리들의 꿈’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노래 제목처럼 많은 청소년에게 시험 없는 학교는 그저 꿈이다. 그런데 사실 그런 학교가 있긴 있다. 교육혁신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2017년 설립한 비인가 실험학교 거꾸로캠퍼스다.

수업시간에 토론하고 있는 거꾸로캠퍼스 학생들. 선생님과 학생들이 한 학생이 말하는 내용을 귀 기울여 듣고 있다./거꾸로캠퍼스 제공

거꾸로캠퍼스라는 이름은 학생이 수업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일반 학교와 정반대라서다. 조용해야 할 수업시간부터 시끄럽다. 토론과 모둠 활동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과목을 더 깊이 이해하고, 배움에 관한 관심도 커진다. 수업 전에는 교사가 준 학습자료를 스스로 학습해온다.

이곳에서는 공부 주제도 학생이 정한다. 거꾸로캠퍼스의 1년은 2학기 대신 4모듈(11주)로 구성되는데, 한 모듈에 하나씩 공부 주제를 정한다. 먼저, 학생들이 팀별로 공부하고 싶은 주제를 고른다. 이후 주제에 맞게 어떤 교과 영역을 학습할지 계획해 발표한다. 발표를 들은 교사와 학생들은 함께 투표한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팀의 아이디어가 해당 모듈의 공부주제가 된다.

지난 모듈 주제는 ‘일하는 모든 사람은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였다. 이번 모듈에는 기후변화를 주제로 공부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교사들이 회의를 통해 교과별 학습 콘텐츠를 구성한다. 2명 이상의 교사가 함께 수업에 참여하는 코티칭도 한다. 한 모듈이 끝나면 시험대신 학생들의 발표가 있다. 다른 학생들과 교사들이 피드백도 한다.

거꾸로캠퍼스에서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김광호 교사(닉네임 활어)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들이 제가 준 자료보다 더 나은 자료를 찾아, 친구들에게 설명해줄 때가 있습니다. 제가 가르친 것 이상의 학습성과를 결과물로 발표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면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교육하고 있다는 확신이 듭니다. 교사가 정해진 지식을 전달하고 시험으로 확인하는 것보다요.”

◇ 학년·이름·졸업이 없는 학교

거꾸로캠퍼스에는 학년이 없다. 14살부터 20살까지 다양한 나이의 학생들이 함께 섞여 있다. 하지만 언니·형 대신 닉네임을 쓴다. 14살 막내부터 교장 선생님까지. 예외는 없다. 서로가 상하관계가 아닌, 협력의 대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20살인 학생들은 아직 더 배워야겠다고 판단해 남아있는 경우다. 이곳에서는 졸업 대신 엑시트(exit) 제도가 있다. 엑시트라는 표현은 스타트업이 창업 후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만큼 성장했을 때 쓰는 말이다. 이곳 학생들도 비슷한 의미로 엑시트한다. 나이가 차서가 아니라, 진학 및 취업과 창업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할 때 스스로 학교를 떠난다. 성공적인 투자금 회수라고 할 수 있다.

◇ 관심 있는 분야 끝까지 연구해 사업화까지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했던 팀프로젝트 목록.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사업화 방안까지 구상한다. 성공적인 프로젝트 완수를 위해 선생님들이 길잡이가 된다./거꾸로캠퍼스 제공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은 교과 수업을 통해 기본적인 지식과 역량을 갖추면, 선택교육과정에 발을 딛는다.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뜻이 맞는 학생들끼리 모여 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주제도 관심 있는 분야에서 스스로 정한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산책로 정보 안내 및 매칭 서비스’, ‘광장시장의 한복 거리 시장 활성화를 위한 앱 개발’ 등이다.

이렇게 프로젝트 주제를 정한 학생들은 탐구에서 그치지 않고, 사업화 방안까지 낸다. 프로젝트 완성도를 위해 스스로 논문을 찾고 전문가도 만난다. 그러다 보면 입시공부 이상으로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라 포기하는 법이 없다. 학교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프로젝트를 위해 한 팀당 최대 500만원까지 지원해준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교육이나 전문가를 매칭해주는 역할도 한다.

프로젝트가 대외적인 성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최근 엑시트한 한 학생은 대한민국 청소년 디자인 아이디어 공모에서 대상인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디자인 관련 개인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학생이었다. 마찬가지로 팀 프로젝트를 내용을 발전시켜 전국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거꾸로캠퍼스 이성원 교장(닉네임 에코)은 “결과물이 안 나와도 얻는 게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학생들이 처음에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하지만 제대로 한 분야를 공부하다 보면, 학습이나 창업이 녹록지 않다는 걸 본인이 느끼더라”라고 전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목표도 생기고, 삶에 대해 책임감도 느낀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 모습이 진정한 의미의 성장 아닐까요?”라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이 교장 말처럼 학생들은 프로젝트가 끝나면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지, 어떤 역량이 부족한지를 느낀다. 그렇게 삶의 계획을 세워 곧장 엑시트하는 학생도 많다.

◇ 더 높은 점수 대신, 더 나은 삶을 위한 교육

누구나 처음 거꾸로캠퍼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학생들의 기초학력에 빈틈이 생기진 않을까 걱정한다. 시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물음에 김 교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거꾸로캠퍼스에서도 오전 수업에서는 기존 교과지식에 기반을 둔 공부를 합니다. 고등학생 나이인 아이들은 검정고시를 치르니까요. 다만 학습 과정이 자유로울 뿐이죠. 그래서 기초학력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암기식 시험으로 확인하는 기존 교육과정이 의미가 있는지를 반문하고 싶어요. 점수를 받기 위해 운영되는 교육이 실효성이 있는지를요.”

거꾸로캠퍼스에서 생명과학을 가르치는 김광호 교사. 거꾸로캠퍼스 창립 멤버다. 아이들이 학창시절 내내 문제집과 씨름하는 게 안타까워, 거꾸로캠퍼스 개교에 힘을 보탰다./거꾸로캠퍼스 홈페이지

김 교사는 거꾸로캠퍼스에 오기 전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인 북일고와 인천포스코고등학교에서 근무했다. 그곳에서 수많은 학생이 매일 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모습을 봤다. 아이들은 기계처럼 똑같은 EBS 문제집을 붙들고 있었다. 그는 당시 똑바로 하라고 잔소리하면서도, 1점을 더 받으려 문제집과 씨름하는 아이들이 안타깝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미래교실네트워크에서 만난 선생님들과 함께, 학생이 중심의 교육을 해보자고 마음먹고 사표를 썼다.

개교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거꾸로캠퍼스의 교육이 원하던 방향대로 이뤄졌느냐는 물음에 김 교사는 이렇게 답했다.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발전시키려고 시장조사나 설문에 나서요. 지식이나 능력부족을 느끼면 창업이나 마케팅을 배웁니다. 이 나이에 이렇게 할 수 있는 중고등학생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자신 있게 사회로 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학교에서 배우는 ‘같이 살아가는 법’

공감소통협력을 빼놓고 거꾸로캠퍼스를 설명할 수 없다. 거꾸로캠퍼스 학생들은 교과목 토론, 팀 프로젝트, 기숙사 생활 등 타인과 어울려야 할 상황이 많다. 이 과정에서 배려심이나 책임감도 함께 자란다.

일반 고등학교 1학년 첫 학기가 끝나고 거꾸로캠퍼스에 입학한 손서연 양(닉네임 베리)은 “같이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손양은 거꾸로캠퍼스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같은 방을 사용하는 친구들과 잘 지내려고, 함께 ‘그라운드 룰’이라는 것도 정했다. 서로가 지켜야 할 규칙과 매너다. 화장실 청소나 분리수거 당번 같은 역할 배분은 기본이다. 소등시간도 룸메이트끼리 대화로 정했다. 이전에는 네 명이 한방을 썼으나,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한 방을 둘이서 사용한다.

이번 모듈부터는 팀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창덕궁을 스토리텔링으로 소개하는 게임 앱을 개발한다. 손양을 포함한 다섯 학생이 재능과 관심사에 따라 역할을 나눴다. 앱 개발자 두 명, 웹 페이지 개발자 한 명, 웹 기획 및 디자이너 한 명이다. 손양은 게임 스토리와 디자인 및 기획을 맡았다. 손양은 “학생들과 동료가 되어 연구하고 일하다 보니, 함께 크고 작은 결과물을 낼 때가 있다”며 “뭉쳐서 일하니 혼자 할 때보다 더 끈기도 생기고 자신감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손양은 성격도 일반 학교에 있을 때보다 적극적으로 변했다고 설명했다.

◇ 공교육 변화까지 나아가는 게 목표

학생이 주체인 학교에 기대를 거는 건, 거꾸로캠퍼스 구성원들뿐이 아니었다. 거꾸로캠퍼스는 2017년 2월 개교 당시 12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입소문을 타 3년 만인 올해 2월 기준으로 94명의 학생이 함께 공부한다. 건물도 양평에서 대학로로 옮겼다.

많은 언론사들이 거꾸로캠퍼스의 교육실험 행보를 조명한다. 우리사회가 오랫동안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MBC 뉴스 캡처

전국 교육청 장학사·교장단·교육부·국가교육회·각급 학교 담당자들이 교육방식을 배우러 거꾸로캠퍼스에 방문했다. 언론이 이 학교에 주목했고, 자연스레 국회의원들도 많이 다녀갔다. 작년 8월에는 이낙연 전 총리가 방문했다.

거액의 투자도 받았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이재웅 다음 창업자까지 5명이 공동 출자한 C프로그램으로부터다. C프로그램은 다음 세대를 위해 투자하는 일종의 벤처기부펀드다. C프로그램이 거꾸로캠퍼스에 투자한 금액만 20억원이 넘는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있다. 김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정부 지원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아이들 가정에서 고스란히 학비를 감내해야 하거든요. 재정지원이 일반 공립 고등학교처럼 이뤄져서 많은 학생이 이런 교육을 누리면 좋겠어요” 거꾸로캠퍼스는 비인가 실험학교다. 2020년 기준 연 학비는 수업료·시설임대료·중식 등을 포함해 연간 1140만원이다.

이 교장은 “거꾸로캠퍼스 학생들만 좋은 교육을 받는 건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 공교육 시스템도 이런 방식으로 바뀌어서, 아이들의 잠재력을 깨워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교육자로서의 바람을 내비쳤다.

거꾸로캠퍼스에서 창덕궁을 소개하는 게임 앱을 개발하고 있는 손서연 학생. 수능 과목 대신 자신의 관심사와 적성을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본인 제공

올해 18살인 손양은 곧 고3에 해당할 나이다. 일반 학교에 계속 다녔다면 본격적으로 입시 스트레스를 느낄 시기다. 하지만 거꾸로캠퍼스에 다니면서 이런 압박에서 자유로워졌고, 인터뷰 막바지에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어떤 걸 잘할 수 있고, 뭘 좋아하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그리고 조금 더 알아보고 싶어요. 그러다 하고 싶은 공부가 생길 때 대학 진학을 계획할래요. 급할 필요 없으니까.”

글 CCBB 이안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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