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리거나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걸 보여주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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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을 공부하던 평범한 대학생은 처음 접한 PC게임에 푹 빠졌다. 피시방에서 밤을 지새우는 건 다반사였고, 밤낮없이 게임에 몰두했다. 게임이 너무 좋았던 그는 직접 게임 기획·개발에 나섰다. 게임 회사인 넥슨과 NHN을 거쳐 유아용 콘텐츠 ‘핑크퐁’으로 유명한 회사인 스마트스터디의 창업 멤버로 일했다. 오랜 시간 업계에서 일하면서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선정성, 폭력성, 사행성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뺀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온 가족이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두 번째 창업에 나섰다. 게임회사 ‘클로버게임즈’를 운영하는 윤성국(42) 대표의 이야기다.

‘클로버게임즈’의 윤성국 대표./클로버게임즈 제공

부산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윤 대표는 대학 시절 게임에 푹 빠졌다. 며칠 내내 모니터 앞에 앉아 게임에만 몰두하는 게 일상이었다. 

“대학 시절 PC 게임에 푹 빠졌어요. 전략 게임(전략을 짜서 상대방을 이기는 게임), RPG 게임(role playing game·역할을 수행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형태의 게임) 등 게임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했어요. 학교 시험 기간 외엔 3~4일간 피시방에서 게임만 했어요. 의자에서 눈을 잠시 붙였다가 일어나서 다시 게임을 할 정도였죠. 게임이 너무 재밌었어요.” 

게임이 너무 좋았던 윤 대표는 대학 졸업 이후 전공 대신 게임 관련 일을 하기로 했다. 2003년 게임회사 넥슨에 입사해 4년간 마비노기 유닛장으로 일하면서 게임 기획 일을 했다. 이후 2008년 게임회사 NHN으로 자리를 옮겼다. 캐주얼 게임 서비스 기획팀장으로 일하면서 유저를 위한 게임 서비스를 기획하는 업무를 맡았다. 

오랜 시간 게임 업계에서 일하면서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다는 걸 몸소 느꼈다. 그러면서 자괴감도 느꼈다. 게임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컸다고 한다.  

“엔터 분야 중 게임 산업이 크게 발달했지만 여전히 게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좋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강하죠. 그런데 많은 사람이 책이나 유튜브만큼 게임에 많은 시간을 쏟습니다. 게임 기획자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될 만 한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전 일하는 윤 대표의 모습./클로버게임즈 제공

윤 대표는 퇴직 후 2011년 유아용 콘텐츠 ‘핑크퐁’으로 유명한 회사인 ‘스마트스터디’에 창업멤버로 합류했다.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교육 서비스를 기획했다. 또 젤리킹, 타마고몬스터즈 등과 같은 캐주얼게임(casual game·자투리시간을 이용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을 꾸준히 만들었다. ‘젤리킹’은 한국에서만 누적 다운로드 1000만회를 기록할 정도로 인기였다. 

본격적으로 게임만을 위한 벤처기업을 설립하고 싶어 2018년 ‘클로버게임즈’를 창업했다. 목표는 뚜렷했다.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거였다. 보통 게임사의 경우 특정 타깃을 정해놓고 게임을 개발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였다.  

이를 위해 폭력성, 선정성, 사행성 등 자극적인 요소를 덜어내기로 했다. 가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목표에 공감한 투자사들인 헤이스팅스 자산운용, DSC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100억원의 투자를 받기도 했다. 회사 설립 9개월 만이었다. 대형 개발사가 아닌 중소 개발사로서는 이례적인 투자 유치 소식이었다. 그렇게 게임 개발을 시작한 지 2년여만인 지난 3월 RPG ‘로드 오브 히어로즈’를 출시했다. 

게임 ‘로드 오브 히어로즈’은 9월 기준 월 사용자수(MAU)는 100만명에 달한다./클로버게임즈 제공

-게임 개발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가족 모두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거였어요. 보통 폭력적인 장면이나 낯뜨거운 캐릭터 등이 많아요. 예를 들어 일반 전쟁 게임의 경우 상대방에게 총을 쏘고 죽이면 보상을 받거나 축하받아요. 게임 내 선정적인 여성 캐릭터나 신체 비율을 왜곡한 캐릭터도 많죠. 이런 게임 요소가 유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나 즐겁게 할 수 있고,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어요.  

게임을 만들어 시장에 출시하기까지 2년 넘게 걸렸습니다. 게임 개발에만 보통 1년 정도 걸려요. 이후 소비자에게 검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어떤 부분을 원하고, 어떤 부분을 재미없어하는지 알아보고 수정·보완해 나갑니다. 이 과정도 1년 정도 걸려요. 보통 게임을 론칭하는 데까지 2년 정도 걸립니다.” 

게임 ‘로드 오브 히어로즈’의 특징은 선정적인 캐릭터나 폭력성이 전혀 없다는 거다. 여러 인종, 연령대의 캐릭터가 나온다. 청년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또 과도한 현금결제 유도 팝업도 없다. 게임 내 상점에서 파는 상품 등 유료 콘텐츠의 최고 가격은 5만원이다. 보통 게임의 경우 최고 가격을 10만원으로 정하는데, 이에 비하면 절반인 셈이다. 이 밖에도 일일 퀘스트나 주간 미션 등과 같은 숙제(매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게임 플레이)조차도 없다.  

상업적 요소나 자극적인 요소를 덜어냈는데도 게임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출시 직후 잠깐 관심을 받은 뒤 사라지는 게임과는 달리 리텐션(retention·고객 유지율) 비율이 높다. 개발 당시 유저가 다시 게임에 접속하게 만드는 리텐션 요소에 집중했다고 한다. 게임 출시 4달 만인 지난 8월 누적 매출 100억원을 달성했다. 올 연말엔 2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9월 기준 월 사용자수(MAU)는 100만명에 달한다. 9월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러시아, 프랑스, 독일, 브라질 등 전세계 143개국에 글로벌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난 4월 진행한 장애인의 날 캠페인(좌), 유저가 직접 보내온 선물(우)./클로버게임즈 제공

이 게임의 또 다른 특징은 사용자의 절반 이상이 Z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라는 점이다. 사회 이슈를 담은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도 인기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4월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우리가 다른 것 같지만 똑같다’는 주제로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이벤트 참여 유저를 대상으로 추첨을 해 발달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이 만든 물품, 이들이 그린 그림이 담긴 머그잔이나 보조배터리 등을 선물했어요. 7월17일 제헌절에도 관련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유저들의 사회적 관심을 독려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이벤트에 대한 MZ세대의 반응은 생각보다 더 뜨거웠습니다. 장애인의 날인 걸 몰랐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MZ세대는 다양성, 개방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단순히 게임의 재미뿐 아니라 기업이 추구하는 방향이나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를 뜻하는 말) 등에도 주목하고 있어요. 게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방향성에 많이 공감해주는 것 같습니다.” 

지난 9월 유상증자 설명회 모습. 직원의 60%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클로버게임즈 제공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쓰고 있는 부분은요. 

“기업 문화입니다. 게임 회사이다 보니 원자재가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구성원이 최대한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아이디어를 다 담아내고 싶어요. 그래서 회사 내 직급을 없앴습니다. 서로 별명을 불러요. 저도 회사에선 대표님이 아닌 ‘총사(총사령관 줄임말)’로 불립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분위기죠.  대표 방도 따로 없어요. 직원들 사이에서 함께 일합니다. 공유 문화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주기적으로 직원과 성과 리포트를 공유하고 투자 이슈 등을 수시로 전합니다. 전 직원이 임원들의 법인카드 사용내역까지 볼 수 있죠.” 

10명 남짓으로 시작한 ‘클로버게임즈’는 현재 80여명의 직원과 함께하고 있다. 회사의 특이한 점은 직원의 60%가 주주로 있다는 거다. 직원은 매해 유상증자로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회사가 꾸준히 성장해 2018년 투자한 사람의 경우 20배 정도의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윤 대표는 주주이자 직원인 이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실적을 공유하고, 여러 방향성을 제시한다. 회사와 직원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서였다고 했다. 

직원과 이야기 하고 있는 윤 대표./클로버게임즈 제공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기업의 성장에는 책임이 함께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극적인 요소가 담긴 게임이 아닌 개방성, 다양성, 공감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우리가 해야할 역할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많은 유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요. 또 내년 상장이 목표입니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직원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벤처를 만들고 싶습니다.”  

글 CCBB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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