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입에서 나온 욕은 이렇게 표시해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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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다의어, 사투리, 회의장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을까요”

10월7일부터 국정감사가 열린다. 국정감사 기간에 가장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현대판 사관이라 불리는 속기사다. 300여 명 의원과 감사장에 불려 나온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단어 한자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적어야 한다. 의원님이 “내가 한 말을 이렇게 바꿔 달라”고 하면 “이렇게 바꿔달라”고 했다까지 적는다는 국회 속기사 정숙 주무관 이야기를 들어보자.

속기사 정숙은 국회에서 15년째 근무하고 있다./본인 제공

–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005년 국회에 입사해서 15년 차 속기사로 일하고 있는 정숙입니다. 국회는 회의체(의결을 통해서 의사를 결정하는 단체)잖아요. 발언자의 발언 내용을 빠짐없이 기록합니다. 속기사가 작성한 회의록은 기록보존서에서 영구적으로 보존해요.”

– 왜 속기사가 되기로 하셨나요

“대학교 4학년 때 일반적인 사무직보다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우연히 ‘전문적인 직업 속기사’라는 광고 문구를 봤어요. 2001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속기 방법이 수필속기에서 기계속기로 넘어가면서 학원 광고를 많이 하던 시기였어요. ‘어, 나도 전문직이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에 찾아가 봤죠.

속기사가 사용하는 키보드가 일반 키보드랑 다른 걸 보고 ‘이걸 배우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속기사가 사용하는 키보드는 초성, 중성, 종성을 한꺼번에 입력해서 일반 컴퓨터 키보드보다 6배 정도 빠르게 입력할 수 있거든요.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정숙 속기사가 쓰는 CAS사 pro-M 속기 기계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본인 제공

– 회의를 하다 보면 발언이 격해질 때도 있는데, 욕도 기록하시나요

“기본 원칙은 있는 그대로 작성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간혹 의원님들께서 과한 욕을 하실 경우에는 우회적으로 표시를 해요. 웬만한 욕들은 그대로 쓰지만, 해당 단어가 국민 정서에 반할 경우에는 음절수 만큼 X,O 같은 기호로 처리해요.”

– 지워달라고 요청하시는 일은 없나요

“요청이 오죠. ‘그 내용은 속기록에서 지우는 게 낫겠습니다’라고 발언도 하세요. 그러면 저희는 그 내용도 적죠. 그리고 만약 변경해달라고 하실 경우에는 의원님이 자구 정정 요청서를 제출하셔야 해요. 요청서가 위원장님 승인을 받으면 해당 내용은 순화해줍니다. 단, 기본 내용이 달라지지 않는 선에서 조절을 하죠.”

– 언제가 가장 바쁜가요

“속기사들이 1년 중에 가장 업무가 많은 시기가 국정감사 기간이에요. 국정감사 3주 동안 속기사 4~6명이 한 개 상임위원회를 담당해요. 이 시기에는 출장이 있을 때도 국회의원들이나 행정직원들과 같이 다니죠. 그때 ‘아 우리도 국회의 일원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 대신 업무량이 평소보다 많아요. 국정감사와 별개로 정기국회에서는 법안과 예산을 다루게 되니까 회의가 많거든요. 국정감사 원고를 다 완성하지 못하고 법안과 예산을 심의하는 회의에 또 들어가다 보면 업무 과부화가 걸려요. 그래서 국정감사 때 어느 상임위원회에 배정받느냐에 따라서 속기사의 삶의 질이 달라진다고도 볼 수 있어요.”

– 구체적으로 얼마나 바쁜가요

“국정감사 때 속기사 한 명당 15분 정도 속기를 하거든요. 아까 4~6명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고 했으니까 한 사람이 약 1시간마다 속기하러 들어가야 하잖아요. 저희는 속기하고 나와서 회의록 정리 작업을 하거든요. 15분 동안 타자친 걸 회의록으로 정리하려면 3시간이 걸려요. 사이클이 맞으려면 3시간마다 회의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1시간 마다 들어가려니 원고가 계속 밀리죠.”

정숙 속기사가 사무실에 앉아 있다./본인 제공

– 10월7일 국정감사다. 각오가 있으신지

“목소리나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의원님들이 계시면 최대한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떠 특성을 파악하려고 해요. 그래야 속기를 하기 편해지거든요. 그런데 이번이 21대 첫 국정감사잖아요. 이럴 때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재선, 삼선 등 다선 의원님들 목소리나 얼굴은 다 알지만, 초선 의원님들은 잘 모르거든요. 게다가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까지 쓰고 계셔서 더 알아보기가 힘들죠. 발음도 부정확하고요. 그래서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긴장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 혹시 회의 중간에 못 받아적는 경우도 있는지

“있어요. 발언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사투리가 심한 경우에요. 아니면 말에 두서가 없거나요. 말이 삼천포로 빠지는 경우 회의 내용에 따라 속기를 하다가 끊는 때가 있어요. 그때는 보조 장치로 녹음을 하는데 그 녹음을 가지고 대조해서 원고를 보충하죠.”

◇ “보람을 느낄 때는 회의장에 들어선 순간순간”

–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겪은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건 아무래도 필리버스터가 아닐까 싶어요

필리버스터는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소수당이 무제한 토론 등 합법적인 방법으로 진행을 저지하는 거예요. 2016년에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서 야당이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회의가 9일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졌어요. 야당 의원 38명이 192시간 넘게 말을 했던 것 같은데 회의록을 발간하고 보니까 회의 내용만 1666페이지가 나오더라고요.

필리버스터를 했을 때 처음에는 ‘이런 것도 있어?’, ‘우리가 이런 것도 쓰네?’ 하면서 들떠 있었어요. 근데 사흘이 지나니까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더라고요. 다음날 회의록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한 사람 당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쉬었는데 뒤로 갈수록 속기를 제대로 했는지도 모르겠고 원고를 내고나서도 눈이 침침하고 정신이 몽롱하더라고요.

그때 시집을 읽거나 논문을 읽는 의원님도 계셨으니까 ‘아니 왜 이렇게 시간을 끌어’ 하면서 불평했는데 막상 회의록이 나온 걸 보니 뿌듯하더라고요. 역사에 남는 거니까.

제 기록이 미래를 준비하는 세대들에게 판단 근거를 제공할 거라 생각하면 회의장에서 속기하는 순간순간이 다 소중하고 벅차요.”

– 속기사로서 힘들 때는

“회의가 시작되면 개인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퇴근 시간이 몇 시고, 언제 어디를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식으로 약속을 잡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회의가 있을 때 약속을 못 잡아요. 저희끼리 국회를 생물 국회라고 하거든요.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고 어느 이슈에 따라 어디로 튈지 몰라요. 예측할 수 없는 회의 상황에 개인적인 생활까지 영향을 받을 때 힘들어요.”

– AI가 생겨나면서 속기사는 사라질 직업이라는 전망이 나오던데, 내부 상황은 어떤가요

“저희도 대비하고 있어요. 요즘엔 음성 인식 기술이 상당히 발전했잖아요. 그래서 속기사들 연구모임에서도 ‘AI와 같이 회의록을 작성하는 날이 올거다’, ‘대비를 해야 한다’라고 얘기를 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인간 속기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음성을 단순히 문자화하는 건 쉽지만, 우리나라 회의가 워낙 시끄럽기도 하고 돌발 상황도 많이 발생하거든요. 그리고 다의어나 사투리를 AI가 잡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해요. 또 AI가 회의장 상황까지 파악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사람은 다르죠. 발언을 들으면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어요. 그래서 아마 미래에는 사람 속기사와 AI 속기사가 함께 일을 할 것 같아요. 음성은 AI가 기록하고, 회의록의 전반적인 검토 작업이나 다양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리는 판단은 사람 속기사가 하지 않을까 싶어요.”

– AI가 속기사 채용 추세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는 없어요. 오히려 과거보다 회의가 많아지면서 채용 인원이 늘었죠. 국회에서 청문회나 국정조사를 하는 게 많아졌고 회의량도 많아졌고요. 15년 전쯤에는 소회의 같은 경우 회의록으로 작성하지 않았는데, ‘소회의 내용 없이 법사위에서 통과되는 내용만 알아야 하냐’, ‘소회의에서 어떤 내용으로 통과를 시켰는지 회의록 작성해라’라는 요청이 많아서 2004년부터 소회의 회의록을 작성했어요. 그렇게 되면서 업무량이 배가 됐죠. 그때부터 속기사를 많이 채용했고 지금도 채용을 유지 중이에요.”

글 CCBB 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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