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심장으로 살고있는 KBS 기상캐스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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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그날도 카메라 앞에 서서 시청자에게 날씨를 전했다. 다만 감기 증상이 일주일간 계속된다는 게 이상했다. 해열제로 버텼지만 고열에 시달렸고 결국 병원을 찾았다. 병명은 확장성 심근병증(심장 근육의 이상으로 인해 심장이 확장되고 심장 기능은 저하되는 심장 질환)이었다.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겨를도 없이 몸 상태는 빠른 속도로 나빠져만 갔다. 의식을 점차 잃었고, 심장과 폐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2주 안에 조직이 맞는 공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위독한 상황이었다. 그때 기적처럼 심장과 90%가 일치하는 뇌사 장기기증자의 기증으로 심장 이식을 받았다. 공여자의 숭고한 뜻 덕분에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는 오수진(34) KBS 기상캐스터의 이야기다.

오수진 KBS 기상캐스터./본인 제공

-자기소개해 주세요.

“두 번째 삶을 열심히 사는 오수진입니다. 현재 KBS에서 날씨를 전하는 기상캐스터로 일하고 있어요.”

성균관대 영문학과 중문학을 전공한 오씨는 11년째 시청자에게 날씨를 전하고 있다. 내성적인 성격인 그가 처음부터 방송 일을 꿈꾼 건 아니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언어 배우는 걸 좋아했어요. 자연스레 영어, 중국어를 전공했고 영어 번역가를 꿈꿨습니다. 그런데 번역을 공부하다 보니 생각보다 더 전문적인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언어뿐 아니라 각 나라의 문화나 사회적 배경 등을 다방면으로 알아야 했죠. 진로를 고민하던 즈음 교내 재즈 음악 동아리에서 보컬로 활동했어요. 평소 내성적인 성격으로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서는 것만큼은 달랐어요. 정기 공연 때마다 관객 앞에 섰고, 여러 사람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방송 일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방송인을 준비하던 오씨는 2010년 YTN에 보도국 기상캐스터로 입사했다. 2011년부터는 KBS 기상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다. 일상과 밀접한 날씨 정보를 전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한다.

시청자에게 날씨를 전하는 오수진 기상캐스터./본인 제공

“재난 주관 방송사이다 보니 더욱 사명감을 가지고 일합니다. 보통 하루 2번 날씨를 전해요. 장마나 태풍 등 긴급 상황이 발생하면 8번 이상 하기도 합니다. 약 1분 30초의 날씨 방송을 위해 2~3시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먼저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원고를 직접 써요. 또 시청자에게 날씨 정보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배경 등에 어떤 그래픽을 쓰면 좋을지 직접 기획해 디자이너에게 의뢰합니다.

날씨 정보를 최종적으로 전달하다 보니 악플 등에 시달릴 때가 많아요. 예보가 틀릴 때뿐 아니라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도 비난받는 경우가 있어요. 외모를 비하하는 말을 들을 때도 많습니다. 그럴 때 가장 속상하지만 그런데도 많은 사람의 일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어요.”

그렇게 10여 년간 매일 날씨를 전하면서 많은 사람의 일상과 함께하던 오씨에게 2018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조금씩 몸에 이상이 느껴진 것이다. 결혼식을 불과 3주 앞둔 때였다.

“평소 아픈 곳이 있거나 특별한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몸이 서서히 안 좋아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회사 앞에 계단이 많아요. 평소 오르내릴 때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어요. 어느 날부터 조금만 올라가도 너무 힘들어서 숨이 찼어요. 몇 번씩 쉬면서 올라갔습니다. 요즘 좀 몸이 피곤한가 싶었어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어느 날은 웃음이 터져서 깔깔거리면서 웃는데 웃음이 멈춰지질 않았어요. 숨이 넘어갈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중 감기 증상이 일주일간 이어졌습니다. 매일 방송을 해야 하는데 하루라도 빠지면 문제가 될 것 같아 어떻게든 버티고자 했어요. 해열제를 맞으면서 일했어요. 결국 고열에 시달리다가 병원을 찾았습니다.

검사해보니 확장성 심근병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심장이 정상인의 18% 정도만 제 역할을 하고 있었어요. 그 길로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심장이 문제가 생기니 다른 장기도 기능을 잃어가고 있었어요. 이미 폐엔 물이 차 있었고 신장도 문제가 생겨 결국 투석기를 달았습니다.
그때가 33살이었고, 결혼식을 3주 앞두고 있었어요.”

-당시 상황이 어땠나요.

“제대로 숨 쉴 수 없어 고통스러웠습니다. 의식을 점점 잃었고 기억이 뚜렷하지 않아요. 깨어난 뒤에야 가족들에게 상황을 전해 들었어요. 그 와중에 아빠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아빠 나 이제 그만하고 싶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괴로웠고 고통이 컸어요.

부모님은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잃게 되진 않을까 두려웠다고 합니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도 정말 괴로웠다고 해요. 지금도 그때의 이야기를 꺼내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역이라고 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해요. 중환자실 면회가 하루 30분만 가능한데, 아버지는 그 시간을 위해 온종일 중환자실 앞을 서성이셨다고 해요. 상황이 너무 안 좋아지자 마음의 정리를 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려고 애쓰셨다고 해요.

중환자실에 입원한 지 며칠 만에 결국 에크모(ECMO·심장이나 폐가 제 기능을 하지 않는 위중한 환자의 혈액을 빼내 산소를 공급한 뒤 다시 몸속에 투입하는 의료장비로 환자의 심폐 기능이 정상적이지 않은 경우 사용한다)를 달았다고 해요. 2주 안에 조직이 맞는 공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오씨에게 유일한 희망은 장기 이식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장기 기증을 받는 건 기적과 같은 일이다. 질병관리청의 ‘장기이식 대기자 및 기증자현황’을 보면 올해 6월 기준 대기자 수는 4만1262명으로 사상 처음 4만명을 넘어섰다. 반면 현재 우리나라 전 국민의 약 3% 정도만이 기증 희망등록을 한 상태다. 미국의 경우는 60%로 이와 비교하면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기증 동의에 대한 문제도 있다. 현행법상 본인이 장기 기증을 동의해도 마지막 순간에 보호자 동의를 받아야 한다. 만약 보호자가 장기 기증을 거부하면 기증할 수 없다.

“장기 기증을 받는 데에 평균 대기 시간이 3년 정도라고 합니다. 결국 이식받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하루 평균 6명이라고 해요. 실제로 당시 입원한 병동에서 심장 이식을 받기 위해 1년 이상 입원해있던 사람도 있었어요.

에크모를 단 지 3일 만에 기적적으로 제 심장과 90%가 일치하는 뇌사 장기 기증자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2018년 5월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 이식을 받았어요.

수술 후 의식을 회복했고 심장 이식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3개월간 병실에 누워 있다 보니 다리 근육이 크게 약해져 있는 상태였어요. 침대에서 혼자 내려올 수 없었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재활 운동을 시작해 아기 때로 돌아간 것처럼 걸음마부터 다시 배웠어요. 두 번째 삶을 새롭게 시작한 느낌이었습니다.”

심장 이식 이후 결혼식을 올렸다./본인 제공

-장기 이식 이후의 삶은 어떤가요.

“기증자 덕분에 삶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보너스로 얻은 삶이라고 생각해요. 공여자의 깊은 뜻을 이어가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매일 고민합니다. 퇴원 후에 한달 만에 복직했어요. 조금 무리해서라도 할 수 있는 일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사실 살았다는 기쁨보다는 죄스러운 마음이 더 큽니다. 공여자 덕분에 기적적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살아남과 동시에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살면서 항상 같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분의 시간을 빌려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여자가 생전에 장기 기증을 약속할 때 세상에 좋은 뜻을 남기고자 어려운 결정을 했던 거로 생각해요. 사는 동안 그분의 좋은 뜻을 알려야 한다고 늘 되새깁니다. 또 어려운 결정을 해준 기증자의 가족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최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의 생명 나눔 홍보대사로 임명된 오수진 기상캐스터./본인 제공

오씨는 심장이식을 받기 전인 2014년 이미 장기기증 희망등록 신청을 해놓은 상태였다고 한다. 삶의 끝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였다. 인터뷰 중 그가 보여준 운전면허증 왼쪽 아래에는 ‘장기기증’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최근에는 심장이식을 받은 인연으로 국내 유일의 장기구득기관인 한국장기조직기증원의 생명 나눔 홍보대사로 임명되면서 인체조직기증 서약서에도 서명했다.

“장기 기증은 누군가에겐 기적과 같은 일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죽음에 관한 일이기에 어렵고 무거운 주제에요.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남편도 함께 장기기증희망등록을 신청했어요.”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다는 오수진 기상캐스터./본인 제공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떤가요.

“지금은 정말 좋아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조직 검사 등을 하고 있습니다. 또 건강 관리를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누군가는 제 장기가 필요할 상황이 올 수 있으니 관리를 더 잘하려고 해요. 헬스, 테니스, 발레 등 여러 운동을 하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방송인으로서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또 생명나눔 홍보대사로서 기증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의미있는 뜻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선한 영향력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글 CCBB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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