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로 스팸 사는 한국인 보고, 미국인이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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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음식도 아닌데 명절마다 모습을 드러내는 먹거리가 있다. 스팸이다. 정크푸드 취급을 당하는 미국에서와 달리, 스팸은 한국에서 고급스럽고 실용적인 이미지로 명절 선물세트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스팸이 명절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그 역사와 이미지 전략을 알아보려 한다.

스팸 클래식 씨즐컷./CJ제일제당 제공

◇ 1950년대. 스팸, 부의 상징이 되다

스팸이 처음 한국에 들어온 건 1950년 6.25전쟁 이후다. 당시 미군은 휴대성과 보존성이 높은 스팸을 전투식량으로 삼았다. 스팸 회사 호멜이 군인들에게 얼마나 스팸을 많이 보냈던지, 나중에는 군인들이 질리다 못해 묘한 반감까지 가지기 시작했다. 받고 싶지 않아도 받아야 하는 스팸메일의 어원은 여기서 기인한다.

이 때문에 외국에선 한국의 각별한 스팸을 사랑을 신기하게 생각한다. 미국 LA타임스는 “세계 11위 경제 대국인 한국에는 신선한 육류가 넘쳐난다”며 “스팸이 인기 있는 이유를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기사를 쓴 적도 있다. 신선한 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풍요로운 시대에 왜 ‘캔 햄’을 먹느냐는 것이다.

전쟁 당시, 한국은 고기는 커녕 제대로 된 음식 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 가운데 스팸은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부유층이거나 미군 부대와 연줄이 있는 사람 정도여야 스팸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미군부대 주변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져 남은 스팸이나 햄 등을 모아 식당에 팔았다. 식당은 이렇게 모은 자투리 고기에 김치를 넣고 끓여 존슨탕(현 부대찌개)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부대찌개조차 먹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산업화 바람에 두꺼워진 지갑…스팸도 순풍

1987년 스팸 광고./CJ제일제당 제공

1980년대 초, 사람들은 햄을 고급 제품이라고 인식했다. 햄은 구하기 힘들도 먹기는 더 어려운 음식이었다. 그런 가운데 1987년 한국 기업이 스팸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산업화로 경제 성장이 급속도로 일면서,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도 호멜과 제휴를 맺고 스팸을 국내로 들여온 것이다.

때마침 유통가에도 고급화 바람이 일었다. 백화점과 슈퍼마켓은 더 커졌고 더 많아졌다. 전통시장과의 차별성을 위해 날마다 고민하던 이들에게 통조림은 단비 같은 존재였다. 통조림은 전통시장이 잘 취급하지 않는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 기업들이 이쁜 패키지를 본격적으로 만든 것도 새 유통가를 기쁘게 만들었다. 패키지 덕분에 사람들이 상품을 더 고급스럽게 인식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더 자주 백화점과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국내 생산·판매와 패키지, 그리고 이를 받아줄 소비자들의 두둑한 지갑. 세 가지가 맞물려 캔 햄 선물세트는 점차 장악력을 키워나갔다. 스팸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출시 첫해(1987년)에 70억원 매출을 올렸다.

1990년대. 외환위기에도 ‘우뚝’…실속의 힘

1990년대는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명절 선물세트가 바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100만원이 넘는 고급 위스키와 고급 버섯 선물세트가 명절에 인기였다. 과일 바구니와 쇠고기 세트도 잘 팔리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엔 실용적이면서도 저렴한 상품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대형 할인마트의 보편화는 합리적 소비를 촉진시켰다. 이 시기 스팸은 식용유, 참기름 등과 함께 실속 있는 선물세트로 자리 잡았다. 스팸은 햄 중에서 고급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담 없이 선물할 수 있는 상품이었다.

2000년대~2010년대. 인기 또 인기…대(大)스팸시대

2000년대~2010년대는 그야말로 스팸 전성시대였다. 이 같은 성공 신화에는 2002년 김원희가 ‘따끈한 밥에 스팸 한 조각’이라고 말했던 광고 카피도 한몫 기여했을 것이다. 2010년대 인터넷에선 ‘자취생 방에 스팸이 있으면 부자’라는 유머도 유행했다.

2007년에 1000억원을 돌파한 매출액은, 약 10년 후인 2016년 3000억원을 넘겼다. 흥미로운 점은 2019년 매출액 60%가 명절 선물세트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김영란 법도 한몫했다. 명절 선물 가격이 5만원으로 제한되자 가격 대비 프리미엄 이미지가 더해진 스팸이 인기를 끈 것이다.

2020년. 스팸은 “가성비 선물세트 전략”

하지만 올해 스팸이 갖는 위상은 이전과 달라보인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명절 선물세트 가격이 양극화되면서다. 고향 방문이 조심스러워지면서 비싼 선물이라도 보내려는 마음이 반영된 결과다.

신세계 SSG닷컴은 8월13일부터 9월19일까지 판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만원대 이상 선물세트의 주문 수량이 지난해보다 194% 급증했다고 밝혔다. 롯데백화점, 이마트 등은 프리미엄 선물 세트 물량을 20~30% 가량 늘렸다.

이에 스팸은 가성비 전략을 택했다. 최근 몇 년간 CJ제일제당은 단독 스팸 세트에 더불어 카놀라유, 소금 등을 포함한 선물세트를 밀었다. 그 결실은 올해 나타났다. 복합 선물세트가 돌연 인기 제품 2위, 4위, 5위에 오른 것이다. 지난해 추석 사전예약 판매 기간 동안 복합 선물세트는 인기 제품 5위 안에 들지 못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올 추석 스팸 판매 전략을 ‘가성비 전략’이라 설명했다. 그는 “실속을 챙기고자 하는 소비자들을 잡으려고 한다”며 “가성비 선물세트를 그동안 밀기는 했지만 올해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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