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어젠 뭐하셨어요?’ 이게 요즘 제 주업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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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 체온 재기로 업무 시작해
점심 메뉴 정하고 주문하는 데도 한세월
퇴근 후·주말 동선 파악도 막내 시키기도
회사와 선배들 사이에서 ‘등’ 터지는 막내들

코로나 장기화에 중견·중소기업 ‘막내’들이 신음하고 있다. 팀원들의 체온 측정부터 점심 주문까지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한 온갖 잡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팀원들의 주말 행적을 파악하는 일도 막내에 떠맡기는 기업도 있다. 매일같이 일명 ‘코로나 잡무’에 시달리는 막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드라마에서 사회초년생을 연기한 서현진./tvN 캡처

◇출근 후 1시간 안에 모든 팀원 체온 보고해야

사회초년생 A(27)씨의 일과는 체온 체크로 시작한다. 출근하자마자 약 20명 가까이 되는 모든 팀원의 체온을 재고 기록해야 한다. 체온을 재고 기록하는 일이 뭐 그렇게 힘드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전에는 모두가 바쁘기 때문에 잠깐 체온을 재겠다고 말씀드려도 “지금 바쁘니 조금 이따가 다시 오라”는 대답을 듣기 일쑤다. 

그러나  A씨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 회사 지침상 체온을 잰 후 보고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선배들의 체온부터 재고 다시 선배에게 가서 정중하게 요청한 후, 겨우 체온 측정을 마무리하는 날이 많다. “10시까지 보고를 해야 하는데 여유 있게 끝낸 날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매일 아슬아슬하게 보고하고 있어요. 다른 팀 동기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방송에서 체온을 측정한 송지효와 효민(본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SBS 방송화면 캡처

A씨와 동기들은 체온 측정이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바빠서 대충 잴 때도 많고, 자리를 비운 선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면 “열 없으니까 대충 그냥 적어”라고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A씨 동기 중 한 명은 오전에 너무 바빠서 체온 재는 것을 까먹었고, 부랴부랴 전주 금요일과 비슷하게 보고한 적이 있다고도 털어놨다.

◇점심시간 다 끝나갈 때 배달 온 음식, “선배들 눈치 보여”

금융회사에 근무 중인 B(31)씨는 최근 도시락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8월 중순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 확산세가 다시 가팔라지자 회사에서 가능하면 도시락을 주문해 자리에서 먹으라는 지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팀 막내인 B씨는 출근하자마자 도시락 업체를 찾고, 팀원들의 주문을 받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첫 난관은 메뉴 선정이다. 매일 아침 어디서 도시락을 시켜야 할 지 고민하는 것도 일이다. 배달 앱이나 검색을 통해 후기가 좋은 곳을 찾는 데 한 세월이 걸린다. 비빔밥부터 볶음밥, 육개장, 돈까스 등 메뉴를 다양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B씨는 팀원 전체의 주문을 담당하다 보니 메뉴 선정에 신경이 많이 쓰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B씨가 시켜 먹은 메뉴들./B씨 제공

점심시간에 맞춰 음식을 배달 시간을 조율하는 것도 일이다.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기 시작한 후 두 번째 날은 출근하자마자 메뉴를 정해 오전에 바로 주문했다. 하지만 음식을 받고 나니 점심시간이 다 끝나갈 즈음이었다. “배달이 아무리 밀렸다지만, 거의 오픈 직후에 주문했는데 너무 늦게 도착해 아무래도 선배들 눈치가 보였어요. 이후부터 도시락 전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B씨는 전날 미리 도시락을 주문하고, 다음날 시간 맞춰 직접 찾아오기도 했다. 

C(28)씨도 도시락 주문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인기가 많은 도시락 업체는 당일에 전화를 50통 넘게 해도 통화 연결조차 되지 않아요. 바쁜 날에는 빨리 배달되는 중국 음식이나 햄버거, 샌드위치를 시켜 먹었는데 점심으로 밥을 먹고 싶다고 하신 분들이 많아서 매일 배달 가능한 곳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주문에만 1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어요.”

회사에서 외부 식당 이용을 금지해 도시락을 시켜 먹는 이들이 많다./네이버 검색화면 캡처

◇주말 동선 파악을 막내에게 시키기도

심지어는 막내를 동원해 팀원들의 주말 행적 파악에 나선 곳도 있었다. 인천의 한 중견기업에서 근무하는 D(29)씨는 매주 월요일 직원들의 주말 동선을 제출받는다. 회사가 여름 휴가 시즌 이후 코로나 확진자나 확진 의심자가 아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동선 파악에 나섰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반발했다. 엄연한 퇴근 후 사생활이고,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려고 든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회사는 ‘코로나 대응 차원’이라는 이유를 댔고, 각 팀 막내들에게 동선 파악 업무를 시켰다.

주말 동선을 보고하라고 요구하는 회사가 적지 않다./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D씨는 무의미한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초반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내가 그걸 왜 알려줘야 하느냐고 따지는 분들도 많아요. 또 매주 금요일 퇴근 후 월요일 아침까지 집에만 있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차피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도 어려운데 도대체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결국 회사와 선배들 사이에서 막내들의 등만 터지고 있다. D씨는 “하루빨리 코로나 사태가 잠잠해지고,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린다”고 했다.

글 CCBB 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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