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분 교수’에 분노했던 그녀, 법원 박차고 나온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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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지망생이 창업한 집단소송 플랫폼
라돈침대, BMW 화재 등 집단소송 맡아
“돈 없고, 법 몰라 피해 보는 일 없게”

“모이면 권력이다. 뭉치면 권력이다. 우리가 권력이다.”

스타트업 ‘화난사람들’ 최초롱(33) 대표가 내민 빨간 명함에 적힌 이 문구는 그가 창업한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화난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한 사람들을 모아 집단으로 대응할 수 있게 돕는 온라인 공동소송 플랫폼이다. 최 대표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일하다가 법원을 나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연수원 동기들처럼 재판연구원 임기를 마치고 대형로펌의 변호사가 되거나 경력을 쌓아서 판사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안정적인 길 대신 새로운 도전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최 대표를 서울 용산 원효전자상가 창업지원센터에 있는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화난사람들’ 최초롱 대표./jobsN

-자기소개해 주세요.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을 운영하는 최초롱입니다. ‘화난사람들’은 화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법을 잘 알지 못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단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법률 서비스 플랫폼입니다. 피해를 본 의뢰인들을 모아 변호사와 연결해줍니다. 이후 공동소송을 진행하거나 탄원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돕습니다. 집단 분쟁뿐 아니라 사회 문제와 관련한 캠페인 등 다양한 법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대 법학과를 나온 최 대표는 2014년 사법연수원 45기 수료 후 서울고등법원에서 2년간 재판연구원으로 일했다. 그런 그가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법을 잘 알지 못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였다.

“법원에서 일하면서 법은 평등하지만 법을 이용하는 건 평등하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민사소송법 원칙에 변론주의라는 게 있습니다. 사실 및 증거 등 소송 자료의 수집과 제출 책임은 당사자에게 있고, 재판부는 당사자가 주장한 내용과 자료만으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법을 잘 모르거나 힘없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힘을 가진 상대방보다 법을 제대로 이용하기 어려운 거죠. 법을 잘 알지 못해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었습니다.”

재판연구원으로 일할 당시 ‘인분 교수 사건’을 담당하면서 집단의 힘을 느꼈다./TV조선 방송 캡처

그는 ‘집단의 힘’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힘없는 개인일지라도 많은 사람이 모으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제로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할 당시 ‘인분 교수 사건’을 담당하면서 여러 사람이 모이면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당시 ‘인분 교수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였습니다. 한 대학교에서 교수가 제자를 폭행하고 인분까지 먹인 사건이었죠. 기록을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어요. 많은 사람이 분노했습니다.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이들도 관심을 가지고,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재판부에 합당한 처벌을 내려달라고 탄원서를 보낸 사람만 1000여 명에 달했습니다. 물론 탄원서가 사건의 유무죄에는 영향을 줄 순 없습니다. 국민 의견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많은 사람이 지켜 보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걸 한 번 더 환기하는 계기가 됩니다. 또 판단 과정에서 국민 정서나 사회적 인식도 고려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사회적으로 해결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건에 대해 함께 분노하고 의견을 내는 걸 보면서 개개인이 모이면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화난사람들’에서는 피해를 본 사람들이 집단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화난사람들 홈페이지 캡처

최 대표는 법원을 나와 2018년 4월 ‘화난사람들’을 설립했다. 그가 생각한 아이템은 공동소송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피해를 본 경우 혼자 해결하기 어렵다면 여러 사람이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동소송은 많은 사람이 함께 진행하기에 각자 부담하는 비용도 줄고, 증거가 모여 이길 가능성도 커집니다. 피해자가 권리를 찾을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변호사 입장에선 집단 소송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아요. 수많은 피해자의 증거 자료 등을 이메일이나 팩스 등으로 받아 수작업으로 전산화해야 하기 때문이죠. 단순 업무의 부담이 큽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화난사람들’은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법원에서 원하는 양식으로 자료화해주는 집단소송 전산 프로그램이다. 소송 참여자들은 홈페이지에서 소송에 필요한 서류나 증거 등을 간편하게 접수할 수 있다. 이를 자체 시스템이 전산화한다. 변호사들은 비효율적인 작업 과정 없이 빠르게 필요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어 업무 효율성이 높아진다. 현재 이 프로그램을 월 구독 형식으로 변호사에게 제공하고 있다. ‘화난사람들’의 주 수익 모델이다.

‘호날두 노쇼 사건’등 지금까지 ‘화난사람들’에서는 56건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조선DB, 화난사람들 홈페이지 캡처

지금까지 ‘화난사람들’에서는 56건의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대진침대 라돈 검출 사건, BMW 화재사건 집단소송, 호날두 노쇼 사건, 코오롱생명과학 인보사 허위공시 사건 등 사회적 이슈를 불러일으킨 굵직한 집단 소송이 이곳을 거쳐 이뤄졌다. 외부 변호사가 플랫폼을 이용해 소송할 사람들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최근에는 구글과 애플의 과다한 인앱 수수료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애플에 이어 구글도 앱에서 발생하는 모든 결제금액의 30%를 수수료로 받겠다고 나선 것이다. 콘텐츠 사업자들은 사업의 존폐를 결정할 정도로 과도한 수수료라고 반발했다.

‘화난사람들’을 찾는 사람은 빠르게 늘고 있다. 일반 이용자 회원 수는 7월 말 기준 14만2000명이다. 작년 12월 7000여명에서 약 8개월 만에 20배 이상 늘었다. 지금까지 플랫폼을 거쳐 탄원서, 소송 등 법적 절차에 참여한 사람은 7월31일 기준 8만6300여명에 달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최근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양형 기준이란 법관의 자의적 판단으로 형량 차이가 크게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범죄 유형별로 지켜야 할 형량 범위를 대법원이 정해 둔 것을 말합니다. 형량을 선고할 때 판사가 참고하는 기준이에요. 형량 가중 사유나 감경 사유 등이 지침으로 정해져 있죠.

작년 ‘정준영 단톡방 사건’부터 다크웹 사건까지 최근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크게 불거졌습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그동안 양형기준이 없어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 논란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에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2만명이 넘는 국민으로부터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이를 정리·분석해 대법원 양형위에 제출했습니다. 양형 기준안 마련에 많은 사람과 함께 의미 있는 일을 해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요.

“피해를 보고 법대로 하고 싶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를 때, 억울하거나 화나는 일이 생겨 법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고자 할 때 ‘화난사람들’에서 무언가 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서비스를 키우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이 법대로 권리를 실현할 수 있게 돕고 싶어요.”

글 CCBB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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