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의 성지’ 실장님들이 좌절한 취준생에게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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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만원입니다.”
“500만원 이상 필요합니다.”

성형의 성지라는 압구정역. 근처 병원 4곳에 들어가 직접 상담을 받고 견적을 받았다. “면접에서 자꾸 떨어져요. 광고나 홍보 등 영업직군을 희망하는데 적합한 인상이 아닌가요. 코와 턱 부분에 좀 자신이 없어요. 어떤 수술을 받아야 할까요, 비용은 얼마나 들까요?” 병원이 제시한 면접관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는 얼굴, 취업에 유리한 얼굴로 변신하기 위한 비용은 20만원대부터 500만원 이상까지 다양했다.

압구정역 근처에 몰려있는 성형외과./jobsN

◇여전히 성행 중인 취업 성형‧시술

블라인드 채용, AI 채용, 사진과 가족관계를 기록하는 칸이 사라진 이력서…, 이제 시대가 달라져 외모, 학벌보다는 지원자의 능력과 적성을 보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구직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4월 구직자 1672명을 대상으로 ‘외모가 취업 스펙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74.7%가 ‘그렇다’고 했다. 응답자의 48.8%는 구직 과정에서 외모가 당락에 미치는 영향을 체감했다고 했다. 또 67.6%가 취업을 위해 외모를 관리한다고 답했다. 이들은 외모 관리에 월평균 15만8000원, 연간 약 190만원을 사용했다.

“취업을 앞두고 오는 분들 정말 많죠. 아나운서, 승무원, 배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이죠. 그 외 직군 취업 준비생은 평소 외모 콤플렉스로 고민하다가 와요. 그러면 시술 위주로 추천하고 있어요.” 가장 먼저 찾은 A 성형외과 원장은 원장은 필러 시술을 권유했다.

필러 시술이란 피부와 유사한 점도를 가진 필러 제제를 주사기 바늘로 피부 아래에 주입해 얼굴 윤곽과 주름을 개선하는 미용 성형 시술이다. 입체감을 줘 얼굴에 생기가 돈다고 한다.
회복 기간이 최대 2주여서 시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면접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가격은 1cc당 부가세 포함 22만원. 내 경우 눈 사이 코 윗 부분에 1cc를 넣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사실 상담을 받기 전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가능 여부를 물었다. 4곳 모두 “가능하다”고 했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빠르게 결정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긴급재난지원금 이벤트를 진행한다고 광고 중인 성형외과./병원 홈페이지 캡처

◇22만원~500만원 이상…‘부르는 게 값’ 성형 견적

두 번째로 찾은 B성형외과는 수술과 시술을 동시에 하자고 했다. 콧대와 턱에 보형물을 넣는 수술, 미간 보톡스와 피부 관리까지 400만원에 해주겠다고 말했다. 또 수술이 무섭다면 필러 시술만 받으라고 했다. 이 병원의 경우 필러 시술은 1cc당 30만원이었다.

B병원의 상담실장은 “우리 병원에서 성형하고 취업했다고 연락한 사람도 있어요”라며 “자기도 내 말 들어서 하면 고맙다고 할걸요”라고 호언장담했다.

세 번째로 찾은 C성형외과에서는 500만원 이상의 견적을 받았다. 상담실장이 바로 얼굴 이곳저곳을 만지며 추천하는 시술과 수술을 말하기 시작했다. 콧대와 팔자주름 필러 주사, 턱선 비너스 수술, 실리프팅 시술 등 다양한 시술과 수술을 권유했다. 비너스 수술이란 지방을 제거하는 지방흡입 수술을 말한다. 내 경우에는 턱 주변 지방을 제거하라는 이야기다. 실리프팅은 처진 피부를 팽팽하게 하기 위해 피부에 가느다란 실을 넣어 당겨 주는 성형술이다.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하자 “필러 주사의 경우 4만9000원에서 29만원까지 다양해 선택할 수 있다”며 “예산 말해주면 맞춰줄 수 있다”고 했다.

압구정의 한 성형외과의 상담실./jobsN

마지막으로 간 D성형외과에서는 상담을 받기 전 얼굴 정면과 좌우 측면을 촬영했다. 촬영하며 병원 직원이 “콧대 수술 후 어떻게 변하는지 미리 볼 수 있는 입체 사진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턱의 변화도 미리 보고 싶다면 5만원 추가금을 내 CT 촬영을 해야 했다. CT 촬영 비용이 아까워 코만 상담했다. 원장실로 들어가니 원장이 3D 시스템을 통해 내 콧대를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촬영한 지 5분도 안 되어 원래의 코 모습과 수술 후 콧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5만원을 더 냈으면 턱이 변한 모습도 볼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D병원은 시술보다는 수술을 추천했다. 콧대 수술 250만원, 지방이식 수술 100만원, 절개 눈매 교정 수술 150만원. 상담실장은 개인 상담수첩에 가격을 적더니 북 찢어서 병원 봉투에 명함을 함께 넣어 건네줬다. 왜 눈매 교정 수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시술보다 수술을 더 추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퉁명스럽게 안내하는 접수대 직원과 “하루종일 상담하느라 기운이 빠졌다”고 하며 견적을 적은 종이만 건네는 실장을 보고 그냥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봉투를 건네받을 때 “수술하면 면접 때 좋은 영향을 미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수술해서 자신감 생긴 분 많이 봤어요. 저도 사회생활 하면서 느끼는 바도 있고요. 같은 능력이면 당연히 인상이 호감 가는 사람이 좋죠. 수술해서 달라지면 만나는 사람도 더 다양해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에서 여자 주인공이 성형 상담을 받고 있다./영화 ‘미녀는 괴로워’ 캡처

사실 몸에 칼을 댄다는 생각만 해도 무서워서 성형수술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지만 3D 시스템으로 콧대의 변화가 생기는 걸 직접 보고, 상담실장의 권한으로 필러 주사를 할인해준다는 제안을 들으니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이 생겼다.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견적서를 매만지며 집으로 향했다. 현재 인턴으로 일하고 있지만 나는 취준생이다. “같은 스펙이라면 호감이 가는 인상이 좋다”는 의사, 상담실장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가 자꾸 귓가를 맴돈다.

글 CCBB 이신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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