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뛰는 일 하면서, 대기업 남편보다 2배 더 벌어요”

662

프리랜서 성우 윤아영씨 
“한 번뿐인 인생 재밌게 살자” 대기업 퇴사 
애니메이션·광고서 목소리로 종횡무진 

미드나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문득 화면 뒤에서 더빙을 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궁금해지곤 한다. 성우는 전문적인 목소리를 이용해서 외국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더빙에서부터 내레이션이나 광고 촬영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다. 만화 ‘도라에몽’ 목소리의 주인공 성우 윤아영(34)씨는 대기업에서 일하다 뒤늦게 성우로 직업을 바꿨다. 8년 전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에서 성우로 데뷔한 이후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대기업 동기들 연봉보다 2배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나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아서 늘 즐겁게 일하고 있다는 그를 만나 성우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윤아영씨

– 그동안 어떤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는지 궁금하다. 

“성우를 애니메이션 전문 방송국에서 시작해서 만화 캐릭터 목소리 연기를 많이 했어요. 가장 많이 알고 계시는 것이 도라에몽과 포켓몬스터 썬&문의 릴리에, 신의 탑 유리 캐릭터에요. 게임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의 자야와 링 피트 어드벤처에서 링의 목소리를 맡기도 했습니다. 광고도 많이 찍었는데 최근 광고 중에 삼성 갤럭시 S20과 삼성 무풍 에어컨 광고에도 제 목소리가 나옵니다.” 

– 원래 꿈은 무엇이었나. 

“어렸을 때는 연예인이 꿈이었어요. 남들 앞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장기자랑 시간마다 팀을 만들어 안무를 짜고 무대에 서면 희열을 느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연예인이 되고 싶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는 김태희 같이 공부 잘하는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야망을 품기도 했죠.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이 되고 싶어서 오디션을 봤었고, 댄스 동아리에 들어가서 활동하기도 했어요. 그맘때쯤 연예 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봤는데, 연습생이 될 준비를 하다 보니 연예계에서 성공하는 것이 녹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 끝에 연예인의 꿈을 접었는데  꿈이 사라지니 한동안 우울증이 올 정도로 무기력했던 기억이 생생해요. 마음을 가다듬고 여느 대학생들이 하는 것처럼 취업 준비를 시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 윤아영씨. 대학생 때는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다./본인 제공

– 첫 직장이 대기업이었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성우라는 직업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타이어에 입사했어요. 문화교육팀에서 교육 커리큘럼을 짜고 관리하는 일을 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이 주는 만족감은 있었지만 큰 조직 생활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저는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인데 그에 비해 다소 경직된 회사 분위기가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성우라는 직업이 떠올랐어요. 예전에 어린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아이 목소리를 연기하는 걸 보고 주위에서 성우가 돼보라고 권유한 것이 생각난 거예요. 성우에 대해서 알아보니 방송국에서 성우 공채 시험을 본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과감히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성우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성우 공채 시험을 보는 방송사가 있어요. KBS, EBS, 투니버스, 대원방송, 대교 이렇게 다섯 군데에서 공채 시험을 봅니다. 합격하면 방송국의 전속 성우로 일하게 돼요. 목소리를 전문적으로 트레이닝 할 수 있는 성우 학원을 다니며 시험을 준비했어요. 저는 애니원과 애니박스 채널을 가지고 있는 대원방송에 지원을 했는데, 세 단계를 거쳐서 시험이 진행됐어요. 1차는 오디오 파일 제출하는 테스트에요. 예를 들어 1번 말괄량이 여왕, 2번 열혈남아, 3번 섹시한 30대 여성 등으로 이뤄진 지문을 주면 녹음을 해서 파일을 제출합니다. 여기서 탈락하는 지원자가 가장 많아요. 2차는 방송국에서 더빙 시험을 봤어요. 화면을 미리 보여주고 30분 후에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라이브로 더빙을 해요. 2차까지 통과하면 면접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발됩니다.” 

(왼) 도라에몽 팬사인회에 참여한 윤아영씨의 모습, (오) 도라에몽 녹음 현장 사진./본인제공, 대원방송 제공

– 성우가 되면 어떤 일을 주로 하는가.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에서 일할 때는 외국에서 가져오는 애니메이션을 더빙하는 일을 주로 했어요. 바쁠 때는 방송국에서 일주일에 열 작품 넘게 더빙하기도 해요. 프리랜서가 된 이후로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어요. 예전에는 성우가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한국어로 더빙하는 일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자막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서 외화 더빙의 일은 줄어들었어요. 대신에 게임 산업이 발달하면서 게임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을 맡거나 광고 작업에 참여하기도 해요. A.I 시스템이나 ARS, 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 안내하는 목소리를 녹음하는 일도 많이 들어옵니다. 최근에는 넷플릭스가 인기를 끌면서 넷플릭스의 국어 서비스 때문에 관련 더빙이 많아졌어요. 성우들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 목소리는 타고난 것이라고 하는데, 성우는 어떤 사람들이 하는지 궁금하다.  

“성우를 하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타고난다기보다는 연기력과 성대를 컨트롤할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해요. 물론 좋은 목소리가 기본이 되어야 하지만, 천부적인 목소리보다는 캐릭터에 맞는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기와 표현력이 중요하다 보니 성우 중에는 연기를 전공한 사람도 많습니다.” 

윤아영씨가 목소리를 연기했던 링피트와 한 컷./본인 제공

– 성우라면 개성을 갖기 위해 목소리의 특색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본인의 특징은. 

“저는 애니메이션 방송사 출신임에도 평소에는 소리와 발성이 성우 같지 않게 평범한 편이에요. 오히려 그게 장점이 돼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광고 녹음에 자주 출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목소리 음역대가 중음대라서 다양한 캐릭터의 느낌을 소화하는데 수월한 편이에요. 귀여운 ‘도라에몽’ 목소리를 연기하다가도 섹시한 스타일의 ‘자야’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 목소리를 연기하며 캐릭터에 집중하기 위한 노하우가 있다면. 

“같은 연기라도 영화배우의 연기, TV 드라마의 연기, 연극의 연기가 다 다르듯이 성우의 연기에도 특징이 있어요. 성우는 몸짓이나 표정으로 보여줄 수 없고 오직 목소리로만 캐릭터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표현이 조금 과장될 수도 있고 호흡이나 발성의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장르의 특성 때문에 연기를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들이 더빙을 했을 때 관객들이 실망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실제 연기와는 호흡이 다르니까요. 수년간의 연습을 통해 조금씩 노하우가 쌓입니다.” 

오디오 드라마 녹음 중인 윤아영씨의 모습./오디오코믹스 제공

– 성우로 일하면 수입은 어느 정도인가. 

“대부분의 성우들은 방송국에서 일한 후에 프리랜서로 활동해요. 다양한 작품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이죠.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 활동하는 것에 따라 수입이 천차만별이에요. 저의 경우 비슷한 성우 연차 중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편에 속하는데, 한국타이어 입사 동기였던 제 남편의 연봉보다 두 배 이상 수입이 많아요. 지금은 남편 친구들이 남편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 대기업을 그만두고 뒤늦게 진로를 바꿨다. 지금 본인의 직업에 만족하는지. 

“무엇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사실이 가장 기뻐요. 직장 생활을 하며 돈을 많이 벌더라도 일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다 보니 보람도 있고 일을 할수록 자신감이 생겨요. 어렸을 때 연예인을 꿈꾸면서 혼자 연기도 해보고 누구를 흉내 내고  따라 하는 걸 좋아했어요. 당시에는 성우라는 직업을 몰랐지만, 그 모든 것들이 성우를 향해 준비하고 있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현재 직업이 만족스럽습니다. 회사를 그만둘 때 주변에서 사람이 어떻게 재밌는 일만 하고 살 수 있겠냐고 만류를 많이 했어요. 한 번뿐인 인생 재밌게 살고 싶다는 신념으로 나와서 새로운 직업에 도전했어요. 지금은 일을 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에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녹음 중인 윤아영씨의 모습./본인 제공

– 앞으로 꿈이 있다면. 

“오래도록 성우로서 장수하는 것, 잊혀지지 않는 성우가 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축복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 막 돌이 지난 내 아이가 나중에 커서 ‘우리 엄마가 도라에몽이야~’라고 말하며 자랑스러워한다면 정말 뿌듯하고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뒤처지지 않게 끊임없이 새로운 스타일과 감각을 익히며 노력할 겁니다.” 

글·사진 CCBB 친절한 오기자

img-jobsn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