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최근 몇년간 급성장…일본에 뒤처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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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미슐랭 3스타 식당 출신 일본인 스시 셰프
한국인과 결혼 “딸은 한국말밖에 못 해요”
서울에 식당 5개, “우리 식당은 부족하다” 비판도

전공은 기계공학과, 11만 유튜버,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셰프··· 나카무라 코우지(43)씨의 이력이다. 코우지 씨는 청담동 스시집 ‘스시코우지’의 오너셰프다. 호주 유학 시절 만난 한국인 아내를 따라 한국에 정착한지 9년이 넘었다. 

기계공학과를 전공했지만 스시의 매력에 빠져 요리를 시작한 지 20년이다. 그는 도쿄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칸다’출신이다. 작년부터 유튜브에 도전해 지금은 11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이기도 하다. 요리사·사업가·유튜버까지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나카무라 코우지 셰프를 만났다.

식당에서 손님들과 대화하는 코우지 셰프./본인 제공

◇ 손님과 소통하는 초밥의 매력

“대학교 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어요. 9살 때부터 트럼펫을 해서 음대를 갈까 고민도 했는데 그만한 실력은 아니었죠. 대학도 남들 따라 기계공학과로 갔고요. 대학 4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초밥집도 아닌 동네 이자카야였습니다. 저는 요리를 못했는데 
사장님이 요리를 하게 했어요. 그때 처음 요리라는 걸 해봤죠.

무엇보다 사장님이 초밥을 만들면서 손님들과 계속 이야기하고, 가끔 술도 함께하며 소통하는 모습이 너무 재밌어 보였어요. 제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죠. 그다음엔 제가 배우고 싶은 초밥 전문점에 일 배우겠다고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는 대학까지 가놓고 뜬금없이 요리사를 하냐고 크게 반대했다고 한다. 반대를 무릅쓰고 열정으로 시작한 요리. 쉽지만은 않았다. 밥 짓기 3년, 밥 쥐기 8년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 초밥 세계에서 유명한 말이다. 

23세에 요리를 시작했다. 세계적인 초밥 명인 오노 지로는 7세 때부터 요리 수습생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남보다 늦게 시작했으니 쉽지 않았다.

“청소부터 시작해서 온갖 잡일만 몇년 합니다. 정해진 자리에서 한 단계씩 마스터하는 거예요.” 불을 다루고 생선을 손질하는 일은 초심자가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특히 요리의 기초라는 재료 고르기·밥 짓기 같은 부분들은 혹독하게 훈련한다. 스승이 다른 일을 주기 전까지는 매일 아침 10시에 쌀 씻는 일만 계속하는 식이다. 그렇게 도쿄의 전통 있는 스시집 ‘이즈미스시’에서 8년 넘게 수련했다.

생선 재료를 보여주는 코우지 셰프./본인 제공

◇일본 요리사는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일본은 요리 배울 때 식당을 먼저 찾아가요. 그 식당에서 10년쯤 수련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저는 학교보다 식당 현장에서 요리를 먼저 배우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요리보다 중요한 요리사의 태도를 배울 수 있으니까요. 훌륭한 초밥 요리사는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손님이 뭘 원하는지, 기분이 어떤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능력은 보통 식당에서 키웁니다.”

한국 학생들은 요리를 시작하기 위해 요리 학교부터 입학하는 경우가 많다. 코우지 셰프는 꼭 학교에 가야 요리를 배울 수 있는 건 아니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학교부터 시작해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요리만 배우고 온 친구들은 초심자의 자세로 시작하기 힘들어요. 다양한 요리를 해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런 친구들을 보고 ‘머리만 커졌다’고 말하곤 해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훌륭한 요리사가 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일본에서 한계 느끼고 해외로

일본이 스시의 본고장이긴 하지만 전국적으로 모든 지방에서 스시 문화가 발달한 건 아니라고 한다. “어디나 그렇지만 성공하는 식당·셰프는 소수입니다. 어차피 스시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으니 해외에서 제 실력을 펼쳐보리라 다짐했어요.” 

해외 활동을 위해 영어부터 배우기로 결심했다. 호주 시드니의 ‘도쿄 스시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났다. 영어를 배우고 호주에서 손꼽히는 시푸드 레스토랑 ‘피시페이스’에서 일했다. 영어를 익히면서 계속 초밥을 연구했다. 자연스레 기회도 찾아왔다.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칸다’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칸다’의 칸다 셰프님이 영어를 할 줄 아는 스시 요리사를 찾고 있었어요. 기회가 찾아온 거죠. ‘칸다’에서 일하면서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아직도 칸다씨를 생각하면 자세를 고쳐앉아요. 정말 무서운 분이거든요. 칸다씨는 ‘누구나 사용하는 요리 재료로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요리를 선보이자’라는 신념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스시를 공부한 코우지 셰프였지만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은 새로웠다. 

“음식의 온도와 질감, 심지어 무게까지 정확하게 측정해요. 이전까지 음식은 특별한 영감과 재능으로 만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음식은 그램(g) 단위까지 측정하는 정확함과 철저한 준비로 맛을 쌓아올리는 거예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수련을 마친 그는 호주 유학길에 만난 아내의 나라 한국에 정착한다. 2012년 63빌딩의 일식당 ‘슈치쿠’에서 조리장을 맡은 그는 ‘일본에서 온 미슐랭 출신 스시 셰프’로 입소문이 났다.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다.

방송에 출연한 코우지 셰프./SBS’생활의달인’ 캡처(좌),MBC’마이리틀텔레비전’ 캡처(우)

한국 초밥의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발전 속도가 놀랍다고 했다. “한국 초밥 수준은 몇년동안 정말 많이 성장했습니다. 일본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아요. 대중의 입맛이 까다로워지고 실력 있는 셰프들이 많이 생겨서 좋아요. 위기의식을 갖고 계속 발전하는 계기가 되니까요. 지금도 인스타그램·유튜브·블로그에 올라오는 손님들의 평가를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식당에서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본인 제공

◇”요리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해요

“가장 큰 재산은 사람입니다. 요리도 사람을 위해 하는 거잖아요. 제 사람들을 잃지 않기 위해 새로운 식당도 열었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게 스승으로서 제 역할입니다.” 

코우지 셰프는 자신이 배웠던 것처럼 후배들을 가르친다. 자리를 만들어주고 가만히 지켜본다. 잘하는 사람들은 어떤 자리든 맡은 자리에서 스스로를 성장시킨다고 한다. 경력이 적은 후배들이 손님 앞에 더 빨리 나설 수 있도록 비교적 낮은 가격대의 스시집을 오픈했다. 지금은 청담동의 ‘스시코우지’를 포함해 5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유튜브에 자신의 식당에서 일하는 후배의 요리를 부족하다 비판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저는 자리를 만들어 준 겁니다. 유튜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니까 후배는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거죠. 18년산 위스키가 만들어지려면 18년 걸려요. 저는 계속 기다립니다. 선배들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요.” 

자신의 식당을 혹평하는 코우지 셰프(좌),초밥뷔페를 리뷰하는 유튜브 영상(우)./유튜브’코우지tv’캡처

◇사업가·유튜버까지···계속되는 도전

2014년 ‘스시코우지’를 열고도 식당 브랜드 2개를 새로 시작했다. 여러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하면서 어떻게 오픈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사업 확장과 동시에 유명 일식 셰프 중 처음으로 유튜브 채널까지 열었다. 처음에는 그저 유튜브로 식당 홍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독자가 1년 만에 11만명까지 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요리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일식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냈다. 유튜브의 영향력을 경험하면서 목표가 생겼다. “유튜브는 초밥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매체예요. 한 점의 초밥이 완성되기까지 과정을 궁금해하는 손님이 많거든요. 유튜버로서 목표는 초밥을 좋아하는 인구를 늘리는 것입니다.”  

최근엔 초밥 뷔페나 평양냉면 리뷰 등 다양한 식당과 요리에 대한 영상을 자주 올린다. “외식할 때 유튜브가 하나의 기준입니다. 코로나19로 외식업계가 많이 어려워요. 제 영상이 코로나19로 힘든 외식업계에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한국어 공부의 필요성도 느꼈다고 한다. “이미 가족들이나 손님들과는 한국말로만 소통합니다. 딸은 한국말밖에 못 해요. 그런데도 유튜브를 시작하니 어려운 한국말이 자꾸 생겨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광어·방어 같은 식재료 이름만 아는 수준이었습니다.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모자라요.”

재료로 쓸 참치를 보러 간 모습./본인 제공

그는 여전히 공부한다. 끊임없이 재료를 보러 다니고, 직원들과 서로 요리에 대한 평가도 나눈다. “30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스시 셰프라고 하면 무뚝뚝한 장인 이미지가 있었어요. 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음식을 주며 이것저것 알려주는 유쾌한 요리사가 되려 합니다. 손님들의 미소가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어요. 앞으로도 계속 초심을 잃지 않을 겁니다.”

글 CCBB 주성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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