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숨겨진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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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충동’ 계기로 유서, 회고록 모은 책 펴내

‘삶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을 펴낸 정재영 작가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글쓰기에 몰두하며 보낸다 / 픽사베이 제공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글만 쓰며 사는 남자가 있다.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를 만큼 대중과 코드를 잘 맞추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신간 인터뷰 요청에도 대면보다는 서면을, 사진은 없이 진행하기를 원했다.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자식을 서울대에 보낸 남성이자 ‘남에게 못할 말은 나에게도 하지 않습니다’, ‘왜 아이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말투를 바꿨더니 아이가 공부를 시작합니다’ 등 이른바 ‘말 3부작’을 펴낸 작가라는 것 정도다. 최근 국내외 유서, 회고담 200여편을 모은 ‘삶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을 펴냈다.

-작가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어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자기 소개를 해달라.

“아주 유명한 소설가 한 분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밖에서 말을 많이 하면 집에 가서 후회하고 고통받는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반가웠습니다. 저 또한 그런 스타일입니다. 말을 하면 후회에 시달립니다. 글도 몇 개월 전에 쓴 것을 보면 낯이 뜨겁고 괴로워요. 결벽증 또는 ‘유리멘탈’입니다. 사회적으로 칩거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합니다. 요약하자면 단순하고 평화로운 은둔형 삶을 지향하는 50대 남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작품을 낸지 1년 4개월 만에 네 번째 작품인 이번 책을 펴냈다. 책을 쓰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 하루 몇 시간 정도 집필하나.

“다른 사람들이 회사에 다니는 이유와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같습니다. 저에게 글쓰기는 생업입니다. 저는 하루 10시간 이상 꼭 쓰고, 읽으려고 합니다. 장시간 노동은 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인들은 하루 8시간 이상 극심한 스트레스를 참으며 일해 생계를 유지합니다. 조직 밖에 있는 저는 그 이상으로 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글쓰기는 제 삶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저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습니다. 카카오톡 등 SNS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물론 그로 인해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놀러가지도 않습니다. 가끔 등산만 합니다. 놀거나 흔들리면 밥을 먹을 수 없으니 바위처럼 굳은 마음으로 글을 쓰려고 무척 노력합니다. 프리랜서는 도인이어야 생존합니다.”

-대학에서 인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공부를 마친 후부터 계속 글쓰기와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한 것인가. 

“일반 사무직으로 회사에 다녔고 영화를 소재로 한 책도 두 권 정도 썼습니다. 해외에서 수입된 뮤지컬이나 비디오 번역도 했고, 영어로 된 책을 한글로 번역한 적도 있어요. 50살쯤 완전한 실직을 경험한 후부터 그토록 꿈꿔왔던 창작에 도전해 2018년부터는 오직 글쓰기만 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번 책을 보면 ‘2년 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다’고 말한 부분이 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나. 

“나 자신이 쓸모 없는 인간처럼 느껴졌어요. 새로운 일을 하긴 해야 하는데, 그게 무엇이건 간에 해낼 자신이 없었어요. 매일 절망하고 두려웠어요. 어느 날 돌아보니 저는 가족에게 해만 끼치는 존재 같더라고요. 사라지고 싶었어요. 한 날은 아침에 벌떡 일어나 정신과를 향해 달려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약이나 상담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면 세상에 우울증 때문에 극단적 상황에 몰릴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저에게 신경안정제보다 훨씬 강력한 치료제는 희망과 위로였습니다. ‘한 푼도 못 벌어도 된다’, ‘괜찮다’고 말해준 가족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때의 경험을 계기로 ‘삶의 끝에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 강 속으로 걸어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 사형 취소로 사형장에서 살아 돌아온 도스토옙스키 등 유명한 사람들의 유서와 사연도 실려 있지만 자신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긴 소녀, 무너진 광산에 갇힌 14살 소년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담겼다. 자료 수집에 어려운 점은 없었나.

“영어권 인문학 사이트, 전자 도서관 등을 통해 정보를 취합하고 각각의 정보들의 아귀를 맞춰가며 쓸 만한 자료를 모았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해 자료를 하나하나 찾아 쌓아가야 하는 점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책 속 사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소재는 무엇인가.

“미국 소녀 에스더 얼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암과 싸우던 이 소녀는 14살일 때 17살의 자신에게 메일을 썼습니다. 3년 후 발송되도록 설정한 것인데, 16살에 숨을 거두고 말아요. 메일은 부모님이 대신 받았죠. 내용을 보면 소녀는 미래의 자신이 건강하길 빌었어요.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도 썼고, 17살쯤이면 남자친구가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도 적어 놨어요.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자 당연한 일들이죠. 먼저 보낸 딸의 메일을 본 부모의 심정도 미어졌을 것 같아요. 어린 소녀의 죽음이 말할 수 없이 안타까웠습니다.”

-프리다 칼로, 마리 퀴리, 가브리엘 샤넬의 사례를 소개하며 ‘삶을 깊이 사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고 썼다. 작가가 생각하는 ‘깊이 사는 삶’이란 무엇인가.

“내 삶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를 잊지 않아야 깊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이 너무 추상적인가요.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요.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한다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시급히 찾게 될 것이고 그것에 집중하겠지요. 그러면 자연히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삶의 끝을 앞두면 모든 불행은 도토리가 된다’는 책 속 표현도 그런 철학에서 나온 것인가.

“글쓰는 사람들은 늘 불안해요. 책을 쓸 수 있을지, 쓴다해도 세상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줄지, 먹고 살 수는 있을 지 등등 걱정이 태산이에요. 저는 너무 괴로울 땐 ‘나는 오늘밤 12시 죽는다’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그러면 온 신경을 집요하게 잡아 끌던 걱정과 두려움이 아주 사소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죽음을 상상하는 순간 모든 불행이 하찮아지는거죠. 행복에 더 집중하게 되고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나온 표현이에요.” 

-앞으로의 계획.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성실하게 쓰고 읽을 계획입니다. 새 책을 펴낼 계획도 있습니다. 한 권은 아직 확정 전이지만 내년 상반기까지 두 권 정도 더 책을 낼 계획입니다.”

글 CCBB 포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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