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유율 95%, 북유럽서 난리난 충남 천안 출신이 만든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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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 공시생 끼니를 책임지던 컵밥이 미국 유타주에서는…
힘든 시절 딛고 해외에서 성공한 사업가들
전쟁 겪고 노르웨이에서 라면 점유율 80% 이상
삼성부터 애플까지 사로잡아 홍콩 증시 상장

우리나라에는 70만8756개(2018년 기준) 영리기업이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더 많고, 더 다양한 기업이 있다. 수많은 기업 중에서 집안이 좋거나 돈이 많아서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아닌 맨땅의 헤딩으로 시작해 해외에서 성공한 ‘세계 속 한국인 사업가’를 알아봤다.

점프샷 (왼쪽부터)송정훈, 김종근, 박지형 공동대표(좌). 유타 컵밥에서 판매 중인 컵밥. / 송정훈 대표 제공, CUPBOP 페이스북 캡처

◇’컵밥(CUPBOP)’ 송정훈 대표

송정호 대표는 미국에서 음식점 ‘CUPBOP(이하 유타 컵밥)’을 운영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표 메뉴는 컵밥이다. 밥 위에 불고기, 닭 불고기, 잡채 등을 올리고 1부터 10단계까지 있는 매운 소스를 올려 판다. 현재 미국 전역에 매장만 20개 넘게 운영하면서 연 매출 100억원 이상을 올리고 있다. 송 대표는 노량진 공시생들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먹던 컵밥을 개발해 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송 대표는 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학창 시절 춤에 빠져 살았고 재능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춤을 추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모님은 미국 유학을 제안했다. 가기 싫었지만 딱 6개월만 다녀오라는 말에 미국 유타주로 떠났다. 한 달 내내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잘 정도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다고 한다. 문득 그런 자신이 한심해 보여 공부를 시작했고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는 사업가의 꿈을 키웠다. 첫 사업은 음식점 제휴 쿠폰 사업이었다. 그러던 중 푸드트럭을 보고 컵밥 장사를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맛본 푸드트럭 음식이 맛이 별로 없었습니다. 이것보다 맛있게 만들면 줄이 더 길겠다고 생각했죠. 바로 푸드트럭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한국 다큐멘터리 노량진 컵밥 편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트럭을 샀죠.”

송 대표, 쿠폰 사업을 함께하던 친구, 10년 넘게 한·일식집을 운영하던 지인 3명이 모여 유타컵밥을 시작했다. 맛은 있었지만 6개월 동안은 매출이 나지 않게 고전했다. 이후 손님을 모으기 위해 즐길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SNS에서 댓글 단 사람을 직접 찾아서 컵밥 파티를 열어주거나 직장으로 찾아가 도시락을 배달했다. 입소문이 퍼져 팬을 확보했고 여기저기서 푸드트럭 요청이 들어왔다. 2015년에는 농구팀 유타 재즈 경기장에서 먼저 입점제안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컵밥으로 우주정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켈리 최 대표(좌), 스시 데일리에서 파는 도시락(우) / jobsN, 스시데일리 인스타그램 캡처

◇’켈리델리’ 켈리 최 대표

켈리 최(Kelly Choi·본명 최금례) 대표는 유럽에서 빠르게 성장 중인 ‘켈리델리’를 운영한다. 켈리델리의 대표 브랜드는 ‘스시 데일리(Sushi daily)’다. 유럽 10개국에 700여개 매장에서 롤과 초밥이 담긴 도시락을 팔아 연 매출 5000억원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고향은 전북 정읍. 학창 시절 서울로 올라와 와이셔츠 공장에서 일하면서 학비를 벌어 생활했다.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던 그는 1988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1995년에는 패션의 중심지인 프랑스로 떠났다. 그러나 ‘최고는 힘들겠다’는 한계를 느꼈다. 광고 회사를 창업하자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9년 동안 회사를 운영했지만 남은 것은 빚 10억원 뿐이었다. 돈이 없어 힘든 시절을 보내던 그가 다시 일어난 계기는 도시락 창업이었다.

경기를 타지 않으면서 창업 비용이 적게 드는 도시락 사업을 생각하고 2년 동안 시장조사와 비법 전수에 매달렸다. 유통·사업에 관한 책은 100권 이상 읽고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에게 요식업 조언을 받고 스시 조리법은 프랑스 대통령이 중요 행사 때마다 찾는다는 야마모토 셰프 밑에서 배웠다. 그 결과 파리 시(市) 창업지원사업에 뽑혀 자본금 3만유로(약 3900만원)을 지원받았고 2010년 8월 프랑스 리옹 까르푸에도 입점했다. 맛은 기본이고 매대에서 직접 도시락을 싸는 모습을 보여주고 도시락도 예쁘게 연출했다. 첫 달에 7만5000유로(약 9700만원) 매출을 올렸고 현재 시장 점유율은 약 50%로 업계 1위다.

◇’미스터리(Mr. Lee)’ 이철호 전 대표

이철호 전 대표는 회사 이름이 라면을 이르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은 ‘미스이철호 전 대표는 노르웨이에 라면 브랜드 ‘미스터리(Mr. Lee)’를 세운 창업주다. 미스터리 라면은 노르웨이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아 노르웨이 라면 시장 점유율 80% 이상으로 한때는 95%까지 차지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회사 이름은 라면을 이르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고 이철호 전 회장의 별명은 ‘노르웨이 라면왕’이다.

1937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이철호 전 대표는 전쟁통에 가족과 헤어져 미군부대에서 잔심부름을 하면서 살았다. 17살 때 폭격을 맞아 온몸에 파편이 박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전쟁 난민으로 노르웨이로 건너가 치료를 받았다. 40여 차례 수술을 거쳐 회복한 그는 평생 다리를 절며 살아야 했지만 호텔 벨 보이, 동물병원 잡역부, 화장실 청소부를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 신체장애보다 배고픔이 더 힘들었다는 이 전 대표는 ‘배가 고파도 식당에서 일하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요리사를 꿈꿨다. 접시닦이부터 시작해 주방장 눈에 띄어 프랑스 요리 유학도 다녀올 수 있었다.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한 그는 직장을 다니다가 1970년대 인삼차 수입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맛봤다.

이후 몇 번의 사업 실패를 겪고 50세 넘은 나이에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1970년 대 초 한국을 방문하고 처음 라면을 맛본 후 노르웨이인들이 좋아하는 소스를 갖고 한국의 유명 라면회사 연구소에 찾아갔다. 연구진과 함께 노르웨이인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덜 맵고 더 기름진 소스를 개발했고 이것이 ‘미스터 리(Mr.Lee)’ 라면의 탄생이었다. 그의 나이 52세 때였다. 이 전 대표는 1989년 노르웨이 식품 제조 회사  ‘Rieber & Søn’에 브랜드를 매각하고 상품 개발에 매달렸다. 2012년 ‘Rieber & Søn’이 노르웨이의 대기업  ‘Orkla’에 편입돼 현재 미스터리는 Orkla 소유다. 이철호 전 대표는 2018년 2월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웰이홀딩스 곽정환 회장 / 조선DB

◇코웰이홀딩스 곽정환 회장

애플에 아이폰 카메라 모듈을 납품해 연 매출 1조원을 올리는 ‘코웰이홀딩스’를 운영하는 곽정환 회장도 국내보다도 해외 시장을 먼저 공략한 사업가다. 홍콩 증시에 상장한 최초의 한국인 CEO기도 하다.

1964년 대구 출신인 곽정환 회장은 1987년 대우에서 ‘상사맨’을 하다가 1992년 홍콩으로 건너갔다. 봉제인형을 만들어 수출했다. 매출 1000억원대 회사로 키웠지만 2001년 카메라 모듈로 사업 방향을 돌렸다. 그는 과거 jobs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만 해도 부수적인 기능이었던 휴대폰 카메라가 대세로 자리 잡을 거라고 보고 시장 초기진입을 노렸다”고 밝혔다. 카메라가 주요 기능으로 떠오르면서 삼성, LG에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2007년 애플로 시선을 돌려 협의를 시작해 2009년부터 공급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계약을 이어오고 있다. 생산 물량의 80%를 납품하고 있다.

2015년 3월에는 한국 기업인 최초로 홍콩 증시에 상장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상장심사 절차, 글로벌 투자자 수요 유치 등을 넘은 것이다. 현재 곽 회장은 한국 인재 양성에도 열성적이다. 생계 걱정없이 창업 준비를 도와주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코웰파트너스’도 운영하고 있다. 

글 CCBB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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