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고지서 본 뒤…더는 이렇게 못살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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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근속 사수 해고 목격하고 위기의식 느껴
가족과 떨어져 홀로 강원도 양양에서 선원 생활
3년 뒤 창업, “6차산업으로 어업 키울 거예요”

“40대에 처음으로 국민연금 고지서를 꼼꼼히 읽어봤어요. 은퇴하면 연금만으론 못 살겠더라고요. 먹고 살려면 60대에도 일해야 하는 현실을 깨달았죠.”

김인복(46)씨는 산업용 자동화 장비를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17년 동안 회사에 충성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은퇴 이후의 삶에 관한 걱정이 커졌다. 연금은 턱없이 부족했고, 두 아이는 대학까지 보내야 했다. 노년에도 안정적으로 살기 위해 인생 제2막을 준비했다. 귀어(歸漁·다른 일을 하던 사람이 어촌으로 들어가는 것)를 결심한 그는 2017년 4월 퇴사 후 그해 8월 강원도 양양으로 이주해 선원 생활을 시작했다. 3년 만에 배를 사 올해 7월 말부터 단독 조업에 나선다.

김인복(46)씨./본인 제공

-무역회사에 다니다 어떻게 귀어를 결심했나.

“직장에 다니면 1년에 한 번 국민연금공단에서 안내문을 보낸다. 여태 연금으로 얼마를 냈고, 은퇴하면 매달 얼마를 받는지 나와 있는 종이다. 원래 무심코 넘기다가 40대 들어 처음 제대로 읽어봤다. 그 돈으로 노년에 생계유지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려받을 유산도 없고, 모아둔 재산도 없었다. 2016년 사수였던 22년 차 이사가 회사에서 잘렸다. 내가 60대까지 이 회사에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정신 차리고 부랴부랴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귀어·귀농·자동차 정비소 운영 등을 두고 고민했다. 귀농은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 부담스러웠고, 자동차 정비소 시장은 경쟁이 치열했다. 그중 귀어가 가장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원래 배낚시를 많이 다녔다. 처음에는 낚시꾼을 태워 돈을 버는 낚싯배 사업을 하려 했다. 그런데 정보를 찾아보니 어업 수익이 더 괜찮아 보였다. 어차피 귀어를 결심했다면 굳이 회사에서 60대까지 버틸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2017년 4월 회사를 나왔다.”

-4개월 만에 준비를 마쳤는데.

“주로 어선어업을 공부했다. 어업 방식은 뭐가 있는지, 기대수익은 얼마인지, 어느 바다에서 어떤 물고기가 잡히는지 등 동·서·남 삼면 바다 어업 실태를 조사했다. 해양수산부 산하기관 귀어귀촌지원센터에서 창업 교육도 받았다. 학원에서 용접도 배웠고, 소형선박조종사나 제한무선통신사 등 어업에 필요한 자격증도 땄다. 중간중간 현지답사도 다녔다.”

-강원도 양양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삼면 바다 중 기대수익이 가장 높은 곳이 동해였다. 동해 가운데 의정부에 사는 가족과 가장 가까운 곳이 강원도 양양이라 선택했다.”

-귀어 이후 3년은 선원 생활을 하며 보냈다.

“선원 자리를 구하려고 발로 뛰었다. 강릉 수협 어업인일자리지원센터를 찾아가 배를 소개받았다. 양양 수협에 가서 뱃자리가 필요해 찾아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망어업 배에서 선원 생활을 시작했다. 정치망어업이란 그물 같은 어구를 고기가 지나다니는 수면에 설치하고, 고기가 들어오면 그물을 끌어 올려 잡는 조업 방식이다. 정치망어업은 귀어하는 사람에겐 맞지 않는다. 투자금이 20억~30억원 필요하다. 대신 1년에 2억~3억원 정도 번다. 처음엔 뭘 몰랐고, 일단 배와 바다부터 알아야 해서 일을 시작했다.

낚싯대로 쥐노래미를 잡는 장면./본인 제공

정치망어업을 두어 달 하고 연안통발어업 배를 탔다. 통발어업이란 물고기가 미끼를 먹거나 은신처를 찾게 바구니 모양 통으로 유도해 낚시하는 방식이다. 양양 남애항에서 일하다 2018년 7월 왼쪽 새끼손가락 힘줄이 끊어졌다. 통발어업 할 때는 노를 쥐었다 폈다 하는데, 힘줄에 조금씩 상처가 나다 어느 순간 끊어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배에서 내렸다. 연안통발어업 배를 타면 새벽 3시에 출항해 오전 8시쯤 항구로 돌아와 뒷정리하고 퇴근한다. 정치망어업이나 자망어업(기다란 사각형 그물에 물고기가 걸리게 해 잡는 기법) 배는 같은 시간에 시작해도 오후 4시쯤 일이 끝난다. 퇴근하고 쉬면 잘 시간이었다. 개인 시간이 없었다.

통발어업 배를 탈 때는 일이 끝나면 하루가 온전히 내 시간이었다. 이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겠다 싶어 사고 전부터 손해평가사 시험공부를 했다. 손해평가사는 농작물 재해가 있으면 보험가액이나 손해액을 평가하는 사람이다. 수술한 뒤에는 하루 12시간씩 공부했다. 3개월 만에 시험에 붙었고, 손이 나은 뒤에는 선원 생활과 손해평가사 일을 같이 했다. 그러다 2020년 1월 귀어귀촌창업자금지원 프로그램 대상자로 뽑혀 4월 경남 사천에서 배를 샀다. 창업자금 대출 등 행정 절차가 끝나면 7월 말부터 남애항에서 연안복합어업(무동력 어선이나 10톤 미만 동력 어선으로 낚시하는 것)을 한다.”

-어떤 배인지 궁금하다.

3톤 FRP(Fiber Reinforced Plastic·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 어선을 샀다. 외줄낚시로 대구나 복어·문어·학꽁치 등을 잡는다. 대구가 주요 타깃이다. 배는 4000만원에 샀다. 여기에 어업 허가권을 사는데 추가로 9000만원이 들어갔다. 총량제인 택시 번호판(면허)처럼 총량제라 값이 비싸다. 3년 전까지는 정부에서 대출을 받을 때 어업허가권은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배 구매비만 대출받을 수 있었다. 최근 정책이 바뀌어 허가권까지 대출받을 수 있었다.”

-어촌 기반 없이 귀어하면 텃새에 시달릴 거란 선입견이 있다.

“귀어 준비할 때 인터넷에서 텃새 사례를 봤다. 부담이 있던 건 사실이다. 어느 날 TV를 보는데, 아프리카에 이민 간 가족을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지구 반대편에 가서도 잘 사는데, 말도 잘 통하는 한국에서 왜 그런 걱정을 하나 싶었다. 양양에서는 상식대로 바르게 생활했다. 굳이 주민들에게 잘 보이려 하지도 않았다. 그냥 항구에서 ‘갑바’(어민이 작업할 때 입는 비옷) 입은 사람이 보이면 먼저 인사했다. 경험해보니 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귀어한 뒤 겪은 애로사항으로는 뭐가 있나.

“귀어 초기에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가장 힘들었다. 지금은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제일 힘들다. 새벽 3시에 통발어업을 나가려면 1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일찍 일어나려고 오후 8시 30분에 잠자리에 든다. 수십 년 동안 자정에 자서 6시에 일어났는데, 생활 패턴이 갑자기 달라지니 몸이 적응을 못 한다. 귀어를 준비할 때는 인터넷에 정보가 너무 없어서 힘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귀어할 사람들을 위해 3년째 블로그에 ‘귀어 일기’를 쓰고 있다. 선원 생활, 창업자금 대출 등 귀어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올린다. 블로그를 보고 종종 상담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그러면 직접 만나 조언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경남 사천에서 구입한 3톤 어선을 강원도 양양으로 운반하고 있다./본인 제공

-귀어하면 벌이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선원으로 일할 때는 한 달에 200만~250만원을 벌었다. 회사에서 받던 월급이 반 토막 날 거라는 각오를 하고 귀어했다. 그래서 2~3년치 생활비도 미리 마련해뒀다. 어업은 주5일 근무제 같은 게 없다. 날씨가 안 좋으면 일을 못 한다. 겨울에는 한 달 중 보름만 출항하기도 한다. 반면 파도가 잔잔한 여름에는 30일 중 25일을 일한다. 수입이 일정치 않다는 이야기다.

배를 산다면 조업 방식에 따라 기대수익도 달라진다. 연안통발과 연안복합어업으로 사업계획서를 써봤다. 연안통발이 기대수익이 높았다. 기름값이나 선원 월급 등 직접경비를 빼고 연 8000만원 정도 벌 것으로 예상했다. 대신 적어도 3억원은 투자해야 한다. 연안복합은 투자금이 1억~1억3000만원으로 비교적 적지만, 그만큼 수익도 줄어든다. 경비를 제외하고 연 3500만원 정도를 벌 것으로 보고 있다.”

-귀어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본인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예순 무렵에 은퇴하고 귀어하고 싶다는 분이 있으면 남해로 가라고 조언한다. 동해보다 기대수익은 낮지만, 아기자기하게 살기 좋고 볼거리도 많다. 동해는 젊은 사람에게 권한다. 부지런히 일하거나 투자해서 수익률을 높이고 싶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40대만 해도 한창 돈을 벌어야 할 나이가 아닌가. 서해는 수도권과 가까워 낚싯배를 운영하기 좋다.

수익 예측도 잘해야 한다. 귀어해서 고기를 잡다가 ‘돈이 안 된다’라며 그제야 후회하는 사람도 있다. 특정인 말만 듣고 함부로 뛰어들다 큰코다친다. 어디서 문어잡이로 하루에 5시간 일하고 연 1억원을 번다는 말을 듣고 배를 계약하는 사람도 봤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전국 어민이 다 뛰어들지 않겠나. 치밀하게 공부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대구는 고패질(낚싯줄을 반복적으로 감거나 풀어 물고기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로 잡는다. 조업 방식을 자동화할 생각이다. 외국에서 관련 장비를 파는 업체에 연락해 가격을 확인하고 설명서도 읽어봤다. 올해 중에 사서 써보려 한다. 조업을 자동화하면 노동 강도도 낮아지고, 수익성도 오를 것으로 본다. 또 대구를 잡기만 하는 게 아니라 2차 가공과 인터넷 직거래까지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선 대구를 가공하면 90% 이상 건조한다. 대구를 많이 먹는 북유럽은 훈제 요리로도 먹는다. 왜 한국 사람들은 연어만 훈제해서 먹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수익성이나 입맛에 관한 연구를 해보려 한다. 2~3년은 고기잡이에 집중하고, 안정적인 수익이 나오면 1차 산업인 어업을 2·3차 산업과 연결해 6차 산업으로 키워보고 싶다.”

글 CCBB 영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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