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만 하는데도…대리운전 때보다 더 많이 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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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신부 에스코트, 노경환 더쇼퍼 대표
호텔리어로 입사해 총지배인으로 은퇴
대리운전하다 발견한 사업 아이템으로 창업

“은퇴하면 골프 치고 여행 다니며 살 줄 알았어요.”

노경환 더쇼퍼 대표./jobsN

노경환(70) 더쇼퍼 대표는 시니어 창업가다. 1980년 호텔리어 생활을 시작해 2010년 총지배인으로 은퇴했다. 63살에 계획 없이 회사를 나온 중년의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새벽같이 일어나도 마땅히 할 일도, 갈 곳도 없었다.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시작한 그는 아들의 결혼식에서 사업 아이템을 떠올렸다. 결혼식 날 신랑 신부를 에스코트하는 쇼퍼(Chauffeur·특수 운전기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60대 후반에 창업에 뛰어들어 2019년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인생 제2막을 시작한 노 대표를 만났다.

-호텔리어로 오래 일했다고.

“1980년 앰배서더 호텔 그룹에 입사해 1990년까지 근무했다. 1990년에 일을 그만두고 사업을 하다가 2000년부터 다시 호텔리어 생활을 했다. 2010년 이천 미란다호텔 총지배인으로 퇴직했다.”

-은퇴 후엔 무슨 일을 했나.

“현직일 때는 은퇴하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골프도 마음껏 치고, 와이프와 여행도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딱 며칠만 좋았다. 집에 있는 것도 불편해서 등산을 했다. 다른 친구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산에서 만난 은퇴자는 대부분 본인이 왕년에 얼마나 잘나갔는지 힘자랑할 생각만 했다.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처음에는 봉사활동을 다녔다. 보람은 있었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63살에 은퇴했으니, 연금이 나올 때까지 돈을 벌어야 했다.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이력서도 몇 번 써봤지만, 나이 때문에 항상 거절당했다. 아파트나 건물 경비원 일도 60살이 넘으면 하기 힘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리운전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에게 소개를 부탁해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대리 기사 생활은 어땠나.

“3년간 일하면서 대리 기사의 비애를 자주 느꼈다. 취객을 상대하다 보니 별의별 일이 생겼다. 한 번은 사거리에서 신호등에 노란불이 들어와 차를 세웠다. 그랬더니 손님이 ‘본인 차 아니라고 기름값 안 아끼고 막 쓰면 되느냐’라며 역정을 내더라. 신호대기 중에 기어를 중립에 놨다는 이유로 20대 승객한테 싫은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연료를 아낄 수 있지 않냐고 하니 ‘뭐 이렇게 말이 많으냐’며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상처를 많이 받았다. 차 키를 던지거나 조수석 머리 받침대에 맨발을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승객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다가 하루는 정장을 입고 일을 나갔다. 그랬더니 대리 기사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반말하던 사람들이 존댓말을 썼고, 태도도 정중해졌다. 남에게 대우를 받으려면 나부터 격식을 갖춰야 한다고 느꼈다. 호텔리어 생활을 하며 익힌 감각을 활용했다. 그러던 중 아들이 장가를 갔다. 본인이 차를 운전해서 가더라. 평생 한 번 있는 행사인데, 그날만큼은 주인공이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넌 친구도 없느냐’고 하니 요즘에는 지인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게 민폐라고 하더라. 대리운전하는 동안 은퇴자가 자긍심을 갖고 할 일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딱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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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과정이 궁금하다.

“첫 도전은 2014년이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창업 공모전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2015년 상상우리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참여해 5개월 동안 교육받고 2016년 재도전했다. 그런데 또 불합격이었다. 좌절하지 않고 바로 경기도 성남시 사회적경제 창업 공모 사업에 도전해 뽑혔다. 10개월 동안 창업 교육을 받고 사무실과 사업자금 2000만원을 지원받아 2016년 10월 회사를 세웠다.

첫 1년은 다시 시장조사를 하면서 데이터를 모았다. 인스타그램으로 마케팅을 하니 조금씩 고객이 찾기 시작했다. 아날로그 세대라 처음에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제대로 활용할 줄 몰랐다. 그래서 성남시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SNS 마케팅 전략을 배웠다. 사업하면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대부분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20년 전만 해도 뭐든 배우려면 교육비로 큰 돈을 써야 했다. 이제는 부지런하기만 하면 배우고 싶은 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생겼다. 덕분에 블로그도 만들었고, 이제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도 혼자 한다.”

-반응이 오던가.

“2017년 10월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그 해 11·12월 커플 13쌍을 모셨다. 2018년에는 103쌍이 이용했다. 2019년에는 202쌍으로 두 배 늘었다. 작년 매출은 5600만원이다.  2020년 목표는 원래 500쌍이었다. 자신 있었는데, 느닷없이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고객을 모시고 나면 서비스 평가를 받아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지, 가격 적정선은 어디인지 등을 파악했다. 평균 고객 만족도는 93%다. 결혼식 날 당사자들은 즐겁기도 하지만 떨리고 긴장하는 경우가 많다. 전날 밤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나서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운전 걱정도 덜고, 승객을 편안하게 해주는 쇼퍼가 있으니 만족도가 높다. 이동 중에 긴장한 고객에게 ‘편하게 있으셔도 된다’라는 말만 건네도 차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나중에 ‘그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됐다’라고 말해준 고객도 많다.”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곳도 있지 않나.

“기사가 딸린 웨딩카를 빌려주는 업체는 있다. 하지만 단순히 운전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부는 겨울에 패딩 점퍼를 입고 손님을 맞더라. ‘나는 운전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고객이 필요한 세세한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가벼운 짐 하나가 있어도 쇼퍼가 대신 들어준다. 모자를 쓰고 흰 장갑을 끼고 고객을 찾아간다.

쇼퍼를 뽑을 때도 지원자 이력을 중요하게 본다. 아무에게나 주례를 맡기지는 않지 않나. 쇼퍼도 똑같다. 고객한테 ‘이분은 은퇴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다’라며 프로필부터 공개한다. 기업에서 회장이나 임원을 모시다 온 사람도 있다. 결혼식이 끝나고 만족도 조사를 하고, 받은 의견을 쇼퍼 교육에 반영하기도 한다. 고객은 품격 있는 서비스를 받고, 쇼퍼는 쇼퍼대로 자긍심을 갖고 손님을 모신다. 나 포함 4명으로 시작해 지금은 쇼퍼가 12명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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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무진이 아닌 카니발을 쓰는 이유는.

“스타크래프트 밴이나 벤츠 같은 외제차를 요구하는 손님이 간혹 있다. 3년간 400여 커플을 모셔 보니 카니발이 가장 좋다. 승용차는 탈 때 허리를 숙이고 타야 한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에게 불편하다. 이동 중에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카니발은 차고가 높으니 타고 내릴 때 편하다. 비용을 비교해도 두 배 이상 비싼 외제차보다 국산차가 더 합리적이다.

서비스 이용료는 10시간 기준 33만원을 받는다. 비싼 가격이 아니다. 집에서 예식장까지만 모시는 3시간짜리 프로그램도 운영하는데, 사실 이용 시간이 짧으면 우리에게는 적자다. 그래도 운영하는 이유는 쇼퍼 일자리를 하나라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고객이 서비스에 만족하면 입소문도 나기 때문에 적자를 감수하고 운영한다. 요즘 지인 소개를 통해 연락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 앞으로 부조 대신 더쇼퍼 서비스를 선물로 하는 분이 늘면 좋겠다.”

-앞으로 계획은.

“지금은 혼자 새벽까지 예약을 받고 있다. 언젠가 배턴을 넘겨받을 사람이 필요하다. 아무에게나 맡길 수 없으니 우선 플랫폼화에 집중하려 한다. 예를 들어 고객마다 원하는 쇼퍼나 서비스 이용료가 있을 것 아닌가. 플랫폼을 구축해 놓으면 고객과 쇼퍼가 1대 1로 연결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은 서울에서만 서비스하는데, 플랫폼화하면 전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 2020년 안에 플랫폼 개발을 마칠 예정이다.

쇼퍼 근무 시간을 늘릴 방법도 고민한다. 결혼식이 주말에만 열리다 보니 일주일에 하루 일하거나 일이 없으면 쉴 때도 있다. 주중에는 쉬거나 다른 여가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2021년에는 명품 딜리버리 서비스를 시작하려 한다. 쇼퍼가 흰 장갑을 끼고 고객 문 앞에 찾아가 명품을 배달하는 거다. 이밖에 부모님을 여행시켜드리고 싶을 때 차와 쇼퍼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선보일 계획이다. 내년부터 이런 틈새시장에 진출할 생각이다.”

-인생 2막을 앞둔 직장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은퇴한 사람들이 예전에 누렸던 사회적 혜택을 돌려줄 때라고 본다. 우리 세대가 젊을 때는 머리가 좋거나 의지만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나라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하는 과정에서 혜택을 입은 셈이다. 지금은 인공지능이나 자동화 기술로 나날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겠다고 생각하면 기회가 온다.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또 오래 직장 다니며 생긴 권위 의식을 조금이라도 빨리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꼰대 소리를 듣거나 배척당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글 CCBB 영조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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