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살에 앞 못보게 된 아이는 이렇게 세계 최초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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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0일 ‘장애인의 날’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부터 국내 최초 농 배우까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분야에서 이름 알린 사람들

“완전히 희망이 없어질 때까지 불가능한 것은 없다. 장애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넘어서야 할 하나의 관문일 뿐이다.”

매년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 그때마다 전직 메이저리그 선수 ‘짐 애보트(Jim Abbott)’가 남긴 말이 회자된다. 짐은 오른손이 다 자라지 않는 ‘조막손’ 장애를 앓고 있었지만 메이저리그의 많은 팀에서 활약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야구장으로 향할 때마다 ‘내 팔을 보지 않았다 내 꿈을 보았다’는 짐 애보트처럼 불편함을 넘어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을 알아봤다.


신순규씨./조선DB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세계 최초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로 유명한 ‘신순규’씨는 미국 대형 투자회사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에서 근무한다. 2012년부터는 비영리단체인 야나(YANA) 미니스트리를 설립해 운영중이다.

신순규씨는 생후 100일 전에 녹내장을, 7살 때는 망막박리를 진단받았다. 22번의 수술을 거쳤지만 결국 시력을 잃었다. 그가 안마사가 되는 걸 원치 않았던 부모님은 신씨와 함께 미국으로 떠났다. 공부에 재능을 보인 그는 하버드 대학에 진학해 심리학을 전공했고 이후 MIT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교수의 꿈을 이루던 중 시각장애인 중에 애널리스트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신씨는 “내가 장애의 벽을 넘는 사례가 돼보고 싶어 교수의 꿈을 접고 증권가로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미국 금융 공인재무분석사(CFA)를 취득했다.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에 입사해 20년 넘게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사람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월가에서 일을 할 수 있냐고 묻는다. 신순규씨는 이 점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말한다. “많은 사람이 시장 루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만 ‘보이지 않는 자’는 그런 루머를 건너뛸 수 있으니 장애가 없는 셈이에요. 그래서 시각장애인에게 애널리스트는 이상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성민 의사 겸 변호사./박성민씨 제공

◇휠체어로도 의사, 변호사 두길 모두 걸을 수 있어

‘박성민’씨는 변호사이자 의사다. 2019년 2월 직업환경의학과 자격을 취득했고 변호사로도 활동 중이다. 그리고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카이스트에 진학했던 박씨는 봉사활동을 하다가 의사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이후 인하대학교 의예과에 재입학했다. 2학년이 끝날 무렵 스키를 타다가 낙상사고를 당했다. 허리가 부러졌고 하반신 마비로 장애 판정을 받았다. 충격을 받긴 했지만 의외로 덤덤했다고 한다. 앉아서 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이었고 최선을 다했다.

2010년 2월 의대를 차석으로 졸업하면서 의사면허를 땄고 동시에 로스쿨에도 합격했다. 그는 “국립재활원에서 중도장애인들이 신체적 고통 외에 법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걸 지켜봤다. 이런 걸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변호사에도 도전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2013년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무너진 멘탈을 어떻게 극복했냐는 jobsN 기자 질문에 박성민씨는 “극복이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내가 장애를 극복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사고가 난 지 15년이 지났지만 가끔 쇼윈도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 ‘아 내가 다쳤구나’,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구나’라고 새삼 깨닫게 되죠. 계단에 막혀 이동하지 못할 때는 아직까지도 좀 안타깝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고 했다.


김예원 변호사./김예원 변호사 제공

◇”억울한 일 당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서···”

‘김예원’ 변호사는 인권 침해를 당해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취약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지원하는 비영리 법률 사무소 ‘장애인권법센터’를 운영 중이다. 수임료는 일체 받지 않는다. 대부분 피해자를 변호한다는 김 변호사는 국내 장애인권 대표 변호사로 알려져 있다.

김예원 변호사는 태어날 때 겪은 의료사고 때문에 시각장애를 얻었다. 겸자분만(집게 등으로 태아의 머리를 집어서 잡아당기는 방법) 과정에서 도구에 눈을 찍혔다. 이 때문에 안구와 주변 신경, 근육조직까지 들어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을 듣고 변호사를 꿈꿨다고 말했다. 

“중학생 때 눈이 왜 이렇게 됐는지 처음 들었어요. 제가 어렸고 경황이 없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해요. 억울했죠. 이런 일을 확실하게 처리할 방법은 ‘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 전문가가 돼서 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죠.”

고등학교 졸업 후 법학과에 진학한 김 변호사는 2009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2012년부터 변호사로 활동했다. 대형 로펌에 있다가 지역뿐 아니라 활동 범위 및 분야에 상관없이 폭넓게 활동하고 싶어 직접 장애인권법센터를 차렸다.


김리후씨(좌). 데뷔 작 사랑은 100℃에서 김리후씨(우)./ 김리후씨 인스타그램, 영화 ‘사랑은 100℃’ 캡처

◇”귀가 들리지 않을 뿐 뭐든 다 할 수 있어”

눈빛, 표정, 몸짓만으로 감동을 전달하는 배우가 있다. 바로 ‘김리후’씨다. 그는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 배우기도 하다. 2010년 김조광수 감독의 단편영화 ‘사랑은 100℃’로 데뷔했고 2014년 단편 영화 ‘미드나잇 썬’에 출연했다.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태어난 김씨는 2000년대부터 배우를 꿈꿨다.

그는 jobs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배우 홍석천과 가수 하리수가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할 때였다. 커밍아웃을 하고 성전환을 한 사람들이 편견을 깨고 방송활동을 했던 것처럼 나도 편견과 차별의 문턱을 넘고 싶었다”고 말했다. 피팅 모델, 홍보 촬영 등을 했다. 그러다 김조광수 감독에게 연락을 받았고 ‘사랑은 100℃’로 데뷔했다. 연기 연습은 혼자 했다. 연기학원에 등록하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지만 청각장애인이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감정 이입 연습을 했다. 농 배우가 많은 일본 드라마도 자주 봤다고 한다.

현재 한국농아방송 수어 뉴스를 진행하고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농인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편견을 바로 잡고 농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게 그 이유다. 김리후씨는 “배우로서 이름을 더 알리고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고 싶다”고 한다. 또 “사람들에게 농인의 문화를 알리고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고 싶다. 농 아동과 청소년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많은 장애인이 나를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CCBB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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