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우유배달·낮 카페·밤 호프집, 그렇게 여기까지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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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사회적 기업 꿈꾸는 ‘인클래식’ 정인서 대표
부친 사업 실패로 ‘몰래 공부’ 레슨 한 번 못 받고 음대 진학
소외 아동 음악 봉사하다 “클래식이 사람 바꾼다” 경험
취업 못한 음악가, 경단녀 등 여성 음악가와 새 세상 꿈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면 어떤 일을 하게 될까. 몇몇 유명 음악가는 스타 대우를 받으며 연주회를 열고 음반을 낸다. 일부는 사립이나 국립, 시립 등의 단체에서 설립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자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케스트라가 많지 않아서 단원의 자리를 꿰차기도 쉽지는 않다. 많은 전공자들이 학교 졸업 후에 음악과 관련 없는 직장에 취직하거나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실을 아쉬워하며 클래식 음악 사업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이 있다. 


정인서 대표

다양한 클래식 음악 공연을 기획하고 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인클래식(IN classic) 정인서(30) 대표는 대학교에서 트럼펫으로 음악을 전공한 후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연주자 출신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일하던 중 사회 취약 계층 아이들을 위한 클래식 음악 교육에 선생님으로 참여해보고, 그는 음악을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이후 창업을 하고 작년에만 100회 이상의 공연을 기획했다. 많은 음악인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모르고 있는 게 안타깝다는 그를 만나러 서울 혜화동 인클래식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무실 위치나 환경이 부러울 정도로 쾌적하다.

“인근에 문화 시설이 많고 조용한 곳이에요. 사회연대은행에서 운영하는 공유 오피스에 입주해 있어요. 청년 창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사업에 합격해서 이곳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현재 매달 관리비만 내고 사무실을 이용하고 있어요.” 

-인클래식(IN classic)은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

“다양한 클래식 음악 공연을 기획합니다. 주로 공공기관이나 문화 재단, 학교, 기업 등과 협업을 해서 공연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여성 연주자들로 구성된 ‘인클래식’이라는 이름의 공연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병원 암 병동에서 여는 작은 음악회부터 미디어 아트와 문학을 결합시킨 연주회까지 우리 삶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공연을 해왔어요. 아울러 동화 음악극이나 어린이 뮤지컬 등 직접 참여해서 음악을 통해 교육할 수 있는 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공연팀 ‘인클래식’./정인서씨 제공

-음악을 전공한 연주자 출신이라고.

“성신여대에서 음악을 전공했어요. 트럼펫이 제 악기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은평구립 오케스트라에서 단원으로 활동했어요.” 

-악기를 연주하며 클래식 음악으로 사업까지 하는 걸 보면 여유 있어 보이는데.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아요. 하지만 전 그 반대 경우에요.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집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었어요. 살고 있던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죠. 그 뒤로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 합주단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어요. 음악을 하면서 마음속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거든요. 그때 합주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했었는데 제대로 배우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차마 아버지께 이야기를 못했어요. 그래서 학교에 있는 공용 트럼펫을 빌려 가며 독학을 하기 시작했어요. 30년 넘은 트럼펫이었어요. 대입 실기시험에도 그 공용 트럼펫을 빌려서 시험 봤어요. 돈 주고 레슨 한 번 받지 못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음대 진학에 성공했습니다.” 

-독학으로 연주해서 음대에 들어가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저는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힘들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고3 내내 독학하며 음대 입시 준비를 하다가 입시 한 달을 남겨두니 너무 불안하고 답답했어요. 용기를 내서 금관 악기로 유명하다는 한양대학교 음대 연습실을 무작정 찾아들어갔어요. 음대생들이 무척 황당하게 생각했죠. 그때 한 대학생이 선뜻 가르쳐주겠다고 했어요. 한 달 동안 무료로 훈멜이라는 곡을 가르쳐줬어요. 덕분에 대학교에 합격했죠. 나중에 물어보니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자신의 과거와 비슷해 보여서 도와주고 싶었다고 해요. 지금은 우리 회사에서 그분에게 돈을 주고 편곡을 맡기고 있어요. 사람 인연이 신기한 것 같아요.”


오케스트라 단원 시절./정인서씨 제공

-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려면 학비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

“대학 생활을 제대로 못했어요. 등록금을 제 힘으로 내야 하니까 항상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어요. 새벽에는 우유 배달을 했고 오후에는 호프집, 카페 등에서 일했어요.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죠. 대학교 4학년쯤 되니까 개인 레슨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때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도 많이 찾아왔어요. 독학으로 연습하다 온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레슨비를 받지 않고 가르쳐줬어요. 저도 똑같은 도움을 받았으니까요. 그렇게 3명을 가르쳤는데 모두 대학 진학에 성공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은평 구립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서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오케스트라에서 단원으로 있다가 사업을 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몇 년 전 친구의 요청으로 평창에서 ‘꿈의 오케스트라’에 교사로 참여했어요. ‘꿈의 오케스트라’는 베네수엘라에서 빈민층 아이들을 오케스트라로 치유하는 음악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를 한국으로 가져온 거예요. 한국음악교육진흥원이 주관해서 평창 지역에서 소외된 계층의 아이들을 모아 악기를 지급하고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어요. 일주일에 두 번씩 평창을 오고 가며 교사로 참여했는데 제 마음을 움직였던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1년 내내 구멍 난 운동복을 입고 오는 아이, 부모님이 안 계셔서 배변 교육도 못 받은 아이, 태어나서 햄버거를 처음 먹어 본 아이들이 음악 교육을 통해 변하는 모습을 지켜봤어요. 클래식 음악이 이렇게 쉽게 다가가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클래식 공연과 음악 교육을 직접 기획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고 2018년에 인클래식을 창업하게 됐습니다.”


평창오케스트라 아이들과 정인서 대표(좌), 인클래식의 공연을 보고 즐거워하는 어린이(우)./정인서씨 제공

-연주만 해오다가 사업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공연을 기획하려면 관련 단체에 제안서를 제출하고 공연을 하기까지 각종 서류 작업이 필요해요. 평생 음악을 해오던 사람들에게는 무척 생소한 업무였어요. 여기에 적응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밤새 PPT를 만들고 제안서를 작성하고 꼼꼼히 서류 작업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이후부터는 우리가 찾아다녔어요. 직접 부딪혀보니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주관하는 예술 관련 사업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행정가와 실무자를 연결하는 중간 연결자가 많지 않아서 책정된 문화 예술 관련 예산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곳도 많았어요. 공연을 제안하면 굉장히 호의적으로 받아주셨어요.  관공서나 문화 재단을 상대로 직접 영업을 하면서 조금씩 수익구조를 만들어 나갔어요. 그렇게 작년에만 100회 이상의 공연을 했습니다.”  

-어떤 공연들을 기획했나. 기획한 공연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공감하고 대화하는 공연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한 대기업에서 했던 공연에서는 관객들이 공연 중에 무작위로 뽑을 수 있는 질문 카드를 준비했어요. ‘회사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요?’라는 카드를 어느 직원이 뽑았는데 고백을 하면 사랑을 주제로 하는 곡을 즉흥적으로 연주해 줬어요. ‘과장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카드를 뽑은 직원이 소신 발언을 하면 그에 맞는 음악을 연주해 줬죠. 공연장에 있는 모든 관객들이 즐거워했어요. 직장 내 있는 수직적 관계가 그 순간만큼은 수평관계로 바뀌는 것 같았어요. 음악 공연이 줄 수 있는 작은 변화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는 반 고흐와 모네의 작품을 미디어 아트에 띄워놓고 문학 작가가 그림 위에 쓰인 글을 읽어주면 그것과 관련된 음악을 연주해 주는 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미술과 문학과 음악의 콜라보 공연이었는데, 글을 읽은 후 음악을 듣는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는 걸 봤어요. 다양한 예술 분야를 융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공연팀 ‘인클래식’의 공연 모습./정인서씨 제공

-공연팀 이름도 ‘인클래식’이던데. 연주자들은 어떤 분들인가.

“우리 공연팀 이름도 ‘인클래식’이에요. 총 15명의 연주자들인데 저와 2명의 상주 직원들도 인클래식 연주자입니다. 모두 여성 연주자들로 구성돼있어요. 재능이 있어도 취업을 하지 못하는 청년 여성 음악가들,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 음악가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 팀을 만들었습니다. 공연 기획으로 나오는 수익의 대부분을 연주자들에게 나눠주고 있어요.”

-인클래식을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고 싶다고.

“창업을 해서 사업을 하다 보니 회사를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공연 단체로 남을 것인지, 문화 예술에 일정 부분 공헌하는 팀으로 남을 것인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일부 수익금은 후원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공신력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일부 수익금은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이 되기 위해서 관련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이 되면 국가에서 직원들의 월급이 나와요. 대신 회사 수익의 1/3을 국가에 환원해야 하죠. 그러면 그 돈은 다시 창업자들을 육성하는데 사용됩니다. 현재는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돼서 지원을 받고 있어요. 최종 목표는 사회적 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인클래식 직원들과 회의하는 정인서 대표(좌), 공연을 준비하는 ‘인클래식’ 단원들의 모습(우)./정인서씨 제공

-사업을 하며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요. 연주자로만 살았으면 몰랐을 세상을 알게 된 거죠. 기획서를 작성하고 발표하고 문서를 만들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 공부하는 일을 하다 보면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요. 점점 기획하는 공연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도 느껴지고요. 사실 대학교에서 음악에 대해서는 많이 배웠지만, 이렇게 문화 예술을 사회에 접목시키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어요. 문화 예술을 널리 활용하려면 이런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클래식 음악 공연이 주는 매력이 무엇인가.

“인간에게 공감과 소소한 위로를 줄 수 있어요. 가장 여운이 많이 남는 공연이 하나 있어요. 종합병원 암 센터에 작은 음악회를 하러 다니곤 하는데, 공연 다음날 돌아가신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가족들이 너무 고마워하세요. 돌아가신 환자나 가족이 마지막 순간까지 위로가 됐다고 말이죠. 클래식 음악이 격식 없이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정인서씨 제공

-음악 말고 취미가 무엇인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요. 어렸을 때는 미술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연필로 크로키 하는 걸 즐깁니다. 인물이나 동물의 모습을 자주 그립니다.” 

-꿈이 있다면.

“음악가들이 음악을 활용하는 데 있어서 허브의 역할을 하고 싶어요. 클래식 음악으로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고 싶은 사람, 시니어나 어린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고 싶은 사람, 소외된 계층을 음악으로 치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처음 음악으로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실제로 부딪혀보니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걸 느낍니다.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익이 생겨요. 음악으로 창업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시장이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 CCBB – Contents 친절한 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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