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한민국에 1명뿐인 바로 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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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LP 엔지니어
전국 돌아다니며 기술 전수받아
기타리스트 신중현이 직접 찾아오기도

최근 LP를 찾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작년 LP 판매량은 약 60만장. 3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올해 5월11일 2000장 한정으로 발매한 가수 백예린의 LP 앨범은 출시하자마자 동나 팬들의 추가 제작 요구가 쏟아졌다. 백예린의 LP를 만든 곳은 국내에 하나뿐인 LP 공장을 운영하는 마장뮤직앤픽처스. 이곳의 백희성(48) 이사는 우리나라에 1명뿐인 현역 LP 커팅 엔지니어다. LP 커팅 엔지니어는 알루미늄 원판으로 만든 공디스크에 턴테이블 바늘이 지나갈 홈(소리골)을 새기는 일을 한다. 이렇게 소리골을 새긴 공디스크를 본떠 LP를 만든다.

2019 대중문화예술 제작스태프 대상을 받은 마장뮤직앤픽처스 백희성 기술이사./마장뮤직앤픽처스 제공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마장뮤직앤픽처스에서 LP 커팅 엔지니어 겸 기술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20살부터 항공 정비사 일을 했습니다. 원래 음악을 좋아해서 회사를 다니면서 색소폰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일을 시작해서인지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방황을 좀 했습니다. 일도 그만두고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죠. 당시 녹음 스튜디오에서 일하던 아는 형님이 계셨어요. 그 밑에 들어가서 녹음 엔지니어 일을 배웠습니다. 연주자가 연주하거나 가수가 부른 노래를 녹음하고 믹싱하는 일이죠.”

-LP 엔지니어 일을 시작한 계기는요.

“제가 음악 일을 시작했던 2001년쯤 컴퓨터 장비로 하는 디지털 녹음이 막 유행을 탔어요. 그런데 저희 스튜디오는 테이프에 녹음하는 걸 고집했죠. 회사 대표님이 ‘아날로그 음악의 끝은 LP다’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고 공부했죠. 하면 할수록 LP의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 우리나라 마지막 LP 공장이었던 서라벌레코드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죠.

LP 커팅 작업 중인 백 이사./마장뮤직앤픽처스 제공

LP 제작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LP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디스크에 소리골을 새기는 커팅 머신이 필요합니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이 기계들도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수소문 끝에 옛 ‘유니버셜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커팅 머신을 찾았습니다. 스튜디오 주인이자 우리나라 1세대 녹음 엔지니어 중 한 분인 이청씨에게 커팅 기술도 배웠죠. 이후 전국에 뿔뿔이 흩어진 LP 기술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커팅·녹음·프레스 등 LP 제작 전 과정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2010년 커팅 머신과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인수했어요. 이 스튜디오는 1968년 문을 연 한국 LP 음악의 역사와 같은 곳입니다. 서울 마장동에 있어서 가수들 사이에서 마장스튜디오로 유명했죠.”

-공장은 언제 문을 열었나요.

“스튜디오를 인수하고 공장문을 열기까지 7년이 걸렸어요. 프레스 기계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LP 제작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면, 먼저 스튜디오에서 원판에 소리골을 새기는 커팅 작업을 합니다. 커팅을 끝낸 원판 모양 그대로 금속본(니켈)을 뜨죠. 이후 프레스 기계에 금속본을 끼우고 PVC 뭉치(LP판의 원료) 위로 기계를 찍어누르면 LP 완성본이 나옵니다.

공장에서 LP 제작 작업 중인 백 이사./마장뮤직앤픽처스 제공

2014년 서울 성수동에 공장을 빌리고 외국에서 중고 프레스 기계를 사 왔어요. 그때부터 테스트하는 시간을 가졌죠. LP를 3만장 넘게 찍어보고 전문가들에게 청음 평가도 받았습니다. 프레스 기계도 연구를 거쳐 다시 만들었죠. 이후 2016년 하종욱 대표와 마장뮤직앤픽처스 회사를 세우고 2017년 6월에 LP 공장 문을 열었습니다.”

-LP 제작 전 과정을 혼자 하시나요.

“원판 컷팅은 제가 혼자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프레스 과정 등은 파트를 나눠서 담당 직원들이 하고 있죠. 저는 매일 공장에 출근해서 컷팅 작업을 하고 전체 과정이 잘 돌아가는지 점검·관리합니다.”

-국내 유일의 LP 공장입니다. 해외 공장 대비 장점이 있다면요.

“저희 공장이 문을 열기 전까지 대부분 LP는 미국이나 유럽 공장에 주문해서 만들었습니다. 사실 제작 가격은 해외 공장이 더 저렴합니다. 대량 생산 설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항공 운송료 등을 더하면 저희와 비슷해지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1년 전에 주문해도 안 받아 주는 공장도 있어요. 저희 공장은 2일이면 테스트본이 나옵니다. 정식 주문은 2~3달 정도 걸리는 편이고요. 또 아무래도 해외 공장보다는 저희와 의사소통하기가 더 쉽죠. 그리고 신생 회사다보니 음질이나 품질관리에 많이 신경쓰는 편입니다.”  

올해 5월 발매한 가수 백예린의 LP 앨범./블루바이닐 공식 페이스북 캡처

-그동안 제작한 LP 앨범은 몇 종인가요.

“2017년 13종으로 시작해 2018년 28종, 작년에 35종의 앨범을 만들었습니다. 앨범 1종당 보통 500~1000장 정도 만듭니다. 장수로 따지면 지금까지 10만장쯤 만들었네요. 매년 생산량이 늘어나는 중입니다. 올해 5월 백예린씨 앨범은 2000장 초도 물량이 모두 팔려 1만3000장 추가 주문이 들어왔습니다. 올해 저희 목표 생산량이 10만장 정도입니다.” 

-기억에 남는 앨범이 있다면요.

“작년에 나온 기타리스트 신중현 선생님 앨범입니다. ‘미인’, ‘아름다운 강산’ 등의 노래를 만든 한국 록 음악의 대부이시죠. 선생님이 직접 공장에 오셔서 제 옆에서 커팅하는 과정을 지켜보셨어요.”  

기타리스트 신중현과 그의 LP 앨범./유튜브 채널 ‘CJ ENM’과 ‘yes 24’ 홈페이지 캡처

-수익은요.

“LP 제작으로는 아직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운영하려면 월 판매량이 10만장은 넘어야 합니다. 회사는 공연 기획 등 다른 사업으로 수익을 냅니다. 지금은 프레스 기계로 사본을 찍어낼 때 중간 중간 재료를 넣고 원판을 다음 위치로 옮기는 과정을 사람이 직접 합니다. 이 과정을 자동화하는 기계를 연말까지 완성할 계획입니다. 그러면 생산 속도도 빨라지고 주문도 더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LP만의 매력이 뭘까요.

“LP를 턴테이블에 올리면 카트리지 바늘이 판 표면에 파인 소리골을 지나갑니다. 카트리지는 바늘이 골을 지나갈 때 생기는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장치입니다. 이 전기 신호가 다시 음악 소리로 바뀌는 거죠. 바늘과 카트리지 종류를 바꾸면 소리가 달라집니다. 다양한 종류를 써보면서 취향껏 자신의 소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LP의 매력이죠.” 

-앞으로 목표는요. 후배를 키울 계획은 없나요.

“후배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아직은 저의 수준을 더 높이는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공장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면 그때 차근차근 생각해 보려 합니다. 또 자동화 기계를 완성해서 많은 분들이 좀 더 저렴한 가격에 LP를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글 CCBB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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